인플레이션, 임금인가 이윤인가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인플레이션, 임금인가 이윤인가

이번 인플레이션은 노동 측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측의 이윤 확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실증적인 분석 없이 진부한 사변적인 논리만 되풀이하거나 어느 한쪽의 계급적 입장에 서는 이념적 편견도 이젠 용납되어선 안 된다
따져보지도 않고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 주범”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또 그런 행동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인플레이션이 걱정거리로 부상하자 아니나 다를까 임금 인상 자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여러 경제신문에서 학자, 언론인 가릴 것 없이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심지어 추경호 경제부총리 또한 한 달 전 그러한 발언을 하였다. 일반인들 중에도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시장조사기관인 IPSOS는 지난 6월 주요 산업국가들의 국민을 대상으로 임금 인상 요구가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고 믿는 이들의 비율을 조사하여 순위를 발표하였거니와, 여기에서 한국은 67%의 숫자를 기록하여 인도(70%), 남아프리카공화국(70%)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 수치는 전 세계 평균인 45%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며, 잘 발달된 자본주의 선진국이라 할 일본(25%), 독일(33%), 프랑스(37%) 등은 그 평균보다 한참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악화의 주범은 임금 인상”이라는 생각은 당연한 상식이 아니며, “글로벌 스탠더드”는 더더욱 아니라는 말인가?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개연성일 뿐 필연성을 가진 명제는 아니며, 노동에만 적용되는 명제도 아니다. 인플레를 예상한 노동자들이 실질임금 저하를 막기 위해 명목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또 이것이 관철된다면 이들이 예상했던 인플레는 그대로 현실이 되므로 이에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임금격차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조직적인 힘이나 법률·제도적 뒷받침으로 잘 보호된 안정적인 고임금 정규직은 임금 인상을 계속적으로 얻어낼 수 있지만, 그런 처지에 있지 못한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임금의 정체 심지어 하락까지 겪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오게 되면 기업들은 이 틈을 타서 가격을 한껏 올려 자기들의 이윤을 불리려고 든다. 여기에서 무자비한 이윤격차의 확대가 벌어진다. 독점 및 각종 사회적 권력 등을 갖추고 이를 배경으로 강한 가격 결정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은 인플레가 심해질수록 더욱 높은 속도로 가격을 밀어올린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로 인해 인플레의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이에 이윤 확대와 인플레이션 사이에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격 결정력이 떨어지는 중소규모의 힘없는 기업들은 노동자들처럼 수동적으로 대처하기에 급급할 뿐이며, 심지어 가격을 내려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렇게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는 거울의 역상처럼 자본의 이윤 확대가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로 고스란히 바뀔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논리적으로는 똑같은 개연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어느 쪽일까? 이는 현실에서의 권력관계로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노동 측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측의 이윤 확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혐의가 짙어진다.

호주연구소, ‘이윤이 주범’ 확인

1970년대는 노동조합의 힘이 아주 강하고 단순한 산업구조로 인해 노동의 동질성도 컸던 시대였고, 단체협상을 통해 전반적인 임금 인상을 지속적으로 얻어내기도 쉬었다. 그래서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임금 인상이 주도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후 반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노동과 자본의 힘 관계는 결정적으로 역전되었다. 임금의 결정은 오롯이 노동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노동시장 개혁’이 진행되었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노동의 동질성은 깨어지고 임금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노조는 조직률 저하와 법·제도 변화로 무력화된 상태이다. 1970년대와 같은 대규모의 장기적인 노사쟁의와 파업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반면 자본의 권력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엄청나게 강해졌다. 기업의 이윤 추구야말로 최대의 사회공헌이라고 찬양되며 또 이를 가능케 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야말로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나침반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자유기업’의 정신 아래에 기업이 스스로 마음껏 가격과 이윤을 정하는 것은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될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굳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70년대 이야기를 무슨 경제법칙이나 되는 양 읊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 언어도단일 뿐이다. 오늘날 상품 가격의 결정에 있어서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노동의 임금 인상 요구인가 기업과 자본의 이윤 확대의 추구인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후자의 개연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혐의를 확인해주는 주목할 만한 연구가 최근 발표되었다. 호주의 유수한 민간 싱크탱크인 호주연구소(Australia Institute)가 호주에서 현재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은 임금 인상이 아닌 기업 이윤 확대로 인해 빚어진 사태임을 밝혀낸 것이다. 호주연구소는 호주 국민계정에 나타난 소득의 흐름을 분석하여 2019, 2020, 2021 회계연도 기간 동안 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에 기여한 바가 없으며, 2022 회계연도에 나타난 물가 상승에서도 그 기여분은 15%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반면 같은 자료와 방법을 통해 분석한 결과 자본의 이윤 확대로 인해 나타난 물가 상승의 기여분은 무려 60%에 달한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연구소의 수석경제학자 리처드 데니스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임금이 아닌 기업의 이윤 주도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힘 있는 기업들이 압도적인 이익을 취하고 있는 불평등한 상황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동일한 현상이 유럽에서 또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한 유럽중앙은행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그 심각성을 부각하였다.

각료들 기업 두둔하며 노동자 압박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임금 인상과 이윤 확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원인이 노동의 임금과 자본의 이윤 어느 쪽에 더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지시하고 주도해야 할 정부의 경제 수반인 추경호 부총리는 자본 측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발언으로 무수한 노동자들에게 불안과 고통을 안기고 말았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쟁의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물리력을 동반하여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까지 관철되는 사태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삼는 자본에는 임금이라는 것이 수단이요, 비용일 뿐이다. 그리고 17세기 말 윌리엄 페티가 정치경제학을 시작한 이후로 “자본가의 회계장부를 국민 경제 전체의 회계장부와 혼동하는”(슘페터) 편향은 현대 경제학까지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커져왔다. 그래서 이제는 정부의 경제 각료들 또한 임금을 생산 비용으로 보는 시각에 깊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뜩이나 식량, 원자재, 에너지 등의 비용 요소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벌어지는 상황이니 임금이라는 비용 요소라도 묶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의 장부를 떠나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임금이나 이윤이나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비용이라는 점에서 아무 차이가 없다. 나아가 사회 성원 전체의 ‘좋은 삶’을 목표로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비용’은 곧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의 ‘소득’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여기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경제학의 해묵은 공리주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다수에게 돌아가는 적은 소득과 소수에게 돌아가는 큰 소득 사이에 어느 쪽을 우선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옳은지도 분명하다. 큰 권력을 가진 대기업이 초과 이윤을 따먹지 못한다고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계선상에 있는 무수한 기업들은 이 상태로는 파산이 머지않다. 고액 연봉자들에게는 물가 상승이 피곤함과 불편함으로 끝나겠지만, 무수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위협당하면 곧바로 빈곤선으로 떨어지거나 아예 기아선상을 헤매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무수한 이들에게 또 사회 전체에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기는 두려운 상황이다. 실증적인 분석 없이 진부한 사변적 논리만 되풀이하는 게으름은 용납될 수 없다. 또 노동으로든 자본으로든 어느 한쪽의 계급적 입장에 서는 이념적 편견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민주정부의 각료들이라면, 학문적 양심을 가진 학자들이라면 그래야 한다. 따져보지도 않았고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행동을 이제 더 이상 용납해서도 안 된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국제칼폴라니 연구협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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