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플레이션, 지구적 시스템의 혼돈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코비드플레이션, 지구적 시스템의 혼돈

코로나 사태와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연속선에 있으며, 이는 더 증폭돼 지구적 시스템을 ‘혼돈의 이행기’로 몰아가는 계기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20세기의 양차대전 사이에 나타났던 가공할 만한 지옥을 훨씬 더 큰 규모로 되풀이하는 시대의 초입에 서 있는 것일까
나는 지난 정권 때의 관습적 대책이나 경제학 교과서의 해법만으론 대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제언할 따름이다

얼마 전 어느 작은 식당 주인의 푸념을 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겨우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면서 희망을 가지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물가 상승이라는 새로운 사태가 펼쳐진다고. 코로나19는 본인의 각고의 노력과 혁신, 악착같은 위생조치 등이라도 발동하여 대응할 수 있었지만 물가상승 같은 사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거의 포기 상태인 그분의 축 처진 어깨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마음을 읽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2019년의 세상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해도에도 나오지 않는 바다로 배가 나가는 느낌이다. 이 무력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짚어볼 수도 없는 깊은 변화가 오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럴 때 ‘이것이 해결책이다’라고 외치는 약장수, 부적장수에게 속지 않고 또 ‘모두 다 망했다’라는 비관론에 속지 않는 방법은, 벌어지는 일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정리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갖추는 것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코로나19 사태와 지금의 물가 상승을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물가 상승 사태는 코로나19로 시작된 지구적 시스템 전체의 혼돈 사태 초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코비드플레이션’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2014년에 작고한 경제학자 피터 포가니는 세계 전체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지구적 시스템’이라는 단일의 틀로 이해하자고 제안하였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이란 그냥 남발되는 수사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의 열역학 법칙들이 관철되는 의미의 ‘시스템’이다. 지구 전체의 인간과 그들의 경제 활동과 그 배경이 되는 자연환경은 이미 19세기부터 분명한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지구와 그 문명의 속성상 사실상 ‘고립된’ 시스템이므로, 열역학 법칙의 작동에 따라 ‘평형의 정상 상태 - 혼돈의 이행기 - 평형의 정상 상태’라는 주기를 반복하게 되어있다는 주장이다. 1830년대 이후 자유방임 이념에 따라 첫 번째의 지구적 시스템이 형성되었지만, 그 생산과 소비의 양이 폭증함에 따라 그리고 그 자연적 한계의 팽창에 따라(1890년대에 이루어진 전 지구적 ‘제국주의’를 기억하라) 시스템의 평형 상태가 깨어지게 되고, 이에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에서 1945년의 2차 세계대전 종식까지의 혼돈의 이행기가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그 뒤 새로운 평형의 정상 상태로 나타난 현재의 지구적 시스템은 영원할 수 있을까? 포가니는 현재의 지구적 시스템은 무한한 경제성장과 자본 축적을 조직원리로 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자원 고갈, 오염, 인구 등등의 문제를 낳으며 2013년과 2030년 사이 어느 시점에서 다시 혼돈의 이행기로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1971년에 출간된 그 유명한 <성장의 한계>와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지금은 ‘되먹임’ 두 번째 고리 중간

2020년으로 되돌아가보자. 그해 4월 한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나는 막 터진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적 시스템 전체를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이후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의 한 장으로 출간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자체가 지구적 시스템의 지나친 팽창으로 인해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이로 인해 생태위기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이미 갈등일로에 있었던 미·중관계를 크게 악화시키며 지정학적 질서를 바꾸어 놓을 것이며, 생산의 지구화를 교란시킬 것이며, 경제의 금융화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2년을 지나면서 현재의 지구적 시스템을 받치고 있는 이 핵심적인 제도들이 크게 흔들렸고, 이것이 지금의 물가상승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더 좋지 않은 것은 이 여러 차원에서 야기된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고 착종되면서 복합적인 문제들로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되먹임(feedback)’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원인과 결과가 단선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고 그래서 그렇게 해서 더 커진 원인이 더 커진 결과를 낳고… 등등의 순환고리를 만들면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증폭시키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시스템 이론에서는 특히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되먹임’ 현상에 주목한다. ‘되먹임’이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커지면서 전체를 와해시키는 원심력으로 작동하는 사태이다.

이제 작년부터 지금까지 지구적 시스템에서 벌어졌던 일을 돌이켜보자. 코로나19 사태로 우선 첫째, 지구적 가치 사슬망이 교란되고 재조정되고 있으며 둘째,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국제 정치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결과로 가장 둔하면서 또 위기 시에는 가장 민감한 에너지, 식량,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 질서의 교란은 다시 올해 초 러시아 푸틴의 도발에 의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애초의 원인이었던 가치 사슬망의 교란과 국제 정치 질서의 혼란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즉, 첫 번째 되먹임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기후위기 악화 땐 세 번째 고리 직면

2022년 6월 현재, 우리는 여기에서 두 번째 되먹임 고리가 형성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물가 인상은 이제 더 이상 우발적·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장기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자 미국 연준이 지난 30년간의 금리 인하 기조를 역전하여 고금리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는 전 지구적 자산시장 전반의 위기를 낳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적 안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세계 전체의 모든 행위자들이 부채의 늪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고금리와 이에 따른 자금의 이동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가? 이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혹은 극심한 각국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나아가 국제적인 갈등 상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첫 번째 되먹임 고리의 원인으로 다시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두 번째 고리의 중간에 와 있다고 보인다.

참으로 두려운 세 번째 고리가 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2050년의 ‘넷제로’, 즉 순탄소 배출량의 소멸을 이루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을 필두로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인 일사불란한 협조가 필수 불가결이다. 그래서 기후위기를 막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악의 악몽은 그 일사불란한 에너지 전환 과정이 강대국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의 논리와 뒤섞인 것이었던 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 상황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벌써 미국, 영국, 프랑스 국내에서는 앙등하는 에너지 가격과 그로 인한 생활 물가의 상승으로 심상치 않은 사회적·정치적 불안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석유 등 화석연료의 생산 및 소비가 급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악화일로에 있는 기후위기가 가속화된다면, 이는 다시 우선 국지적으로 극심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두 번째 순환 고리를 매개로 전체적인 되먹임 고리를 강화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와 현재의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연속선에 있으며, 이는 더 크게 증폭되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지구적 시스템을 피터 포가니가 말하는 ‘혼돈의 이행기’로 몰아가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포가니는 이렇게 경고한다. 지구적 시스템의 크기와 무게로 볼 때, 19세기의 첫 번째 시스템과 21세기 초의 두 번째 시스템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따라서 그 혼돈의 이행기에 나타날 혼란과 폭력과 비참 또한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20세기의 양차대전 사이에 나타났던 가공할 만한 지옥을 훨씬 더 큰 규모로 되풀이하는 시대의 초입에 서있는 것일까?

파멸을 예언할 생각도 없으며, 섣부른 대책을 ‘부적’처럼 내걸 수도 없다. 지금의 상황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현상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연관되어 지구적 시스템의 위기라는 훨씬 더 큰 그림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라는 시각으로 보자고 제언할 따름이다. 지난 정권 때에 했던 관습적 대책만으로 또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해법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제언할 따름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국제칼폴라니 연구협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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