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 양생] 공자님의 잠옷

얼마 전 <논어>를 공부한 친구들의 에세이 발표가 있었다. 그중 한 친구의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유는 주제가 인(仁)도 효(孝)도 군자(君子)도 아닌, 공자님의 잠옷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는 집에서 일상복 차림으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다가 밤에는 그 옷을 입은 채 그냥 잔다고 했다. 심지어 술을 마시거나 너무 피곤한 날엔 퇴근 후 씻지도 않고 소파에 쓰러져 잠들어버린단다. 당연히 다음날 아침이 어수선해지면서 연초에 세운 그 어떤 ‘아침 루틴’도 공염불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논어>의 “공자님은 주무실 때 반드시 잠옷을 입으셨다”는 문장에서 벼락 맞은 듯, “아, 이게 군자의 도이고 양생의 기술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공자님의 잠옷 이야기는 <논어>의 ‘향당’ 편에 나온다. 거기에는 공자님의 일상에 대한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이 미주알고주알 나열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다홍색과 주황색으로는 평상복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더울 때는 얇은 베옷을 입었는데 반드시 속옷을 갖추어 입었다거나, 제철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꼭 어울리는 소스와 함께 드셨다거나, 검은 옷엔 검은색의 염소 가죽옷, 흰 옷엔 흰색의 사슴 가죽옷을 ‘깔맞춤’하여 입었다거나 하는 내용이다.

<논어>의 매력은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특정한 그릇이 아니다)” 혹은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같은, 짧지만 강렬한 감응이 있는 아포리즘에 있는데 그런 것이 없는 공자님의 시시콜콜은 솔직히 지루했다. ‘향당’ 편의 공자님은 성인이라기보다는 그냥 까탈스러운 노인네처럼 보인다.

그런데 친구는 다시 읽게 된 <논어>에서 공자님이 잠옷을 입고 주무셨다거나 시체처럼 널브러져 주무시지는 않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민했던 동양고전의 그 도(道)가 거창한 이념이나 명분 같은 게 아니라 일상의 동선을 단순하게 구성하고, 에너지를 정밀하게 분배하는 것과 같은 기본기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니 달려왔을 뿐, 그저 닥치는 대로 정신없이 살고 있다는 통렬하고 씁쓸한 깨달음! 공자가 지천명이라고 칭했던 나이 오십에 친구는 제대로 ‘현타’를 맞았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서 <황제내경>에서는 양생의 기본기가 춘하추동, 혹은 음양과 같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일상을 구성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하루의 양생과 관련하여 자시, 오시, 묘시, 유시의 네 개의 매듭을 제대로 겪는 게 중요하다. 오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자시는 겨울과도 같아서 음기가 극에 이르면서 양기가 출현하는 시점인데, 이때는 숙면을 통해 기운을 감추고 보존해야 한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수면도 일종의 수련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오시 역시 음양이 교대하는 시기인데, 이때도 짧은 낮잠을 자는 게 좋다. 오전 5시에서 7시까지의 묘시와 오후 5시에서 7시까지의 유시는 하루의 봄, 가을과 같은 시점인데, 체력 단련은 이때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린 이런 계절의 차서(次序), 시간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피로사회>의 한병철도 오늘날의 위기는 시간의 위기, 즉 방향과 리듬을 상실한, 가볍고 휘발되는 원자적 시간성의 도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 세상은 온통 불야성(不夜城)이고 우리는 아무 때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한 불면의 밤”을 보낸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의 대안으로 시간의 향기를 되찾을 것을 제안하는데, “오직 종결의 시간적 형식들만이 나쁜 무한성에 맞서서 지속을, 즉 의미 있는 충만한 시간을 창출한다. 잠, 숙면 역시 결국은 종결의 형식일 것이다”(한병철, <시간의 향기>)

그날 우리는 때아닌 잠옷 논쟁에 휩싸였다. “나 잠옷 없는데, 꼭 잠옷이 필요해?”, “잠옷은 아니더라도 잘 때 입는 옷은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집에서 입는 옷 입고 자면 왜 안 되는데?” “아니, 요리하고 청소하던 옷을 입고 잔다는 게 말이 되나?” 한바탕 유쾌한 소동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공동체 장터에서 잠옷 ‘아나바다’를 하자는 것으로 급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잠옷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때를 알고 철을 제대로 겪는 것. 그렇게 연륜이 쌓이면서 지혜롭게 늙어가는 일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들도 아가양도 명석이도”(<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회 대사) 모두 자는 밤엔, 우리도 만사를 제치고 달게 잠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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