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어도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 양생] 더 이상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어도

얼마 전 회전근개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간 이유는 아침 필사를 계속하던 어느 날부터 등살이 심하게 바르더니 어깨를 거쳐 팔꿈치, 손목까지 저렸기 때문이다. 사실 몇 달 전부터는 티셔츠를 입고 벗을 때마다 오른쪽 어깨와 연결된 팔뚝 윗부분에 ‘찌르르’ 통증이 왔다. 원인을 물었더니 의사의 짧은 답, “퇴행이에요”. 그러면서 팔이 저리는 건 어깨가 아니라 목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내친김에 목 엑스레이도 찍었다. 이번엔 퇴행성 목디스크란다. 노화된 디스크 찌꺼기가 옆으로 삐져나와 신경을 누르고 있어 통증이 심한 것이라고 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몇 년 전부터 모든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서 임플란트와 잇몸치료를 번갈아 받고 있다. 세월호 3주기 때 3주간 매일 108배를 하다가 무릎이 손상되었다. 작년에는 무지외반증이 생겼고 골감소증 진단도 받았다. 요즘처럼 병원을 자주 간 적이 없고 지금처럼 퇴행이라는 말을 집중적으로 들은 적도 없다. 이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의 모든 곳이 삐걱댄다.

내 소식을 접한 후배 한 명이 “선배, 혹시 야구하세요?”라고 놀려대며 슬며시 최신판의 스트레칭 책을 건넨다. 늙어가는 내 몸을 응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깊어가는 팔자주름에 이어 M자 탈모가 발견되었을 때도 받지 않았던 타격을 이번엔 좀 받았다. 무지근하게 혹은 쿡쿡 쑤시듯 진행되는 이 방사통이 절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좌절감이 생겼고 살림과 공부, 육아와 부양을 오가며 쉬지 않고 몸을 ‘막’ 써버린 내가 좀 불쌍해졌다.

철학자 장 아메리에 따르면 우아하게 늙어가는 사람은 없다. 가끔 연예인의 노화 필터 댓글에 달리는 “늙어도 여전히 예쁘네요” 같은 노년은 없다. 배와 엉덩이가 늘어지고 눈이 처지고 주름이 깊어지며 무엇보다 온몸이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은 몸이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만든다. 한때 우리와 세계를 매개해주던 몸은 이제 “오히려 무거운 숨결, 아프기만 한 다리, 염증으로 시달리는 관절로 세계와 공간을 우리에게 막아버리는 장애물이다. 이렇게 해서 몸은 감옥이 된다.”(<늙어감에 대하여>)

올해 여든여섯인 어머니를 보면 몸이 감옥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이 된다. 황반변성으로 눈이 잘 안 보이고, 보청기를 껴도 다른 사람의 말이 잘 안 들리게 되자 어머니의 세계는 축소되었다. 몇 년 전 낙상으로 허리뼈가 심하게 부러진 이후에는 자가 보행조차 불가능하다. 요즘 어머니는 종일 거실 소파에 앉아 ‘뽁뽁이’(포장 에어캡)만 누르고 계신다. 손가락 움직임이 뇌 건강에 좋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야~ 아야!’라면서 내지르는 어머니의 낮고 짧은 비명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엄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야” 같은 위로의 말을 해보지만 어머니에게 가서 닿진 않는다.

어깨가 고장 난 직후 난 우리 공동체 안에 모종의 사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십견이 생긴 친구 셋과 유방암 수술 후 재활하는 친구 한 명, 이렇게 넷이 ‘어깨 오케이’라는 자조 모임을 만들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 모임에 가입했다. ‘어깨 오케이’라는 이름보다는 ‘어깨동무’가 더 낫지 않겠냐고 제안했더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어깨동무가 안 돼요. 팔이 거기까지 안 올라간다니까요.” 아뿔싸! 이제 우린 어깨동무가 안 되는구나. 하긴 나도 작년에 <스우파>(스트릿우먼파이터) 덕질을 하면서 ‘왁킹’(주로 팔을 회전하면서 추는 춤)에 매료되어 그걸 한번 배워볼까 생각했는데 이젠 완전히 물 건너갔다.

의사는 결국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어깨를 ‘잘’ 쓰라고 했다. 너무 안 써도 근육이 굳어버리고 너무 막 쓰면 쉬 닳아버린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어깨 ‘중용’의 길이 내 앞에 놓여 있다. 메시지가 울린다. “오늘은 아파트 팔돌리기 운동기구에서 10분 운동했음.” 친구의 명랑한 전언이다. 한 친구는 아예 공동체 안에 도르래 어깨 운동기구를 설치해놓고 오가는 틈틈이 도르래를 돌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나도 스포츠 밴드를 집어 들고 어깨운동을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어깨동무를 하지 못해도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쓸쓸한 채 다정한 연대도 가능할 수 있다. 취약한 몸들의 따뜻한 연대를 상상한다. 처서가 지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