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정답을 못 찾았어요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양생] 다이어트, 정답을 못 찾았어요

“또 단식이야? 배 안 고파?” 후배에게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매년 일삼아 단식하더니 이제 매일 하는 간헐적 단식에 돌입했다고 해서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살을 빼기 위한 단식이라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후배는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뚱뚱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몸무게를 잡아두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분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긴 뚱뚱함이 천형처럼 여겨지는 지금 세상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이 문제를 탐구해보기로 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일단 난 두 가지 사실에 좀 놀랐다. 하나는 많은 엄마가 딸의 식욕을 통제하고 운동을 강요하면서 자식의 몸매를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또 하나는 이번에 우리와 함께 공부한 열여섯 영주(가명)가 전해준 학교 풍경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가 전파하는 “마르고 탄탄하며 동시에 굴곡이 있는” 몸매를 선망하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싸’의 필수조건인 마른 몸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점심도 굶어가면서 다이어트를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해 끝없이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은 기아에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굶으면 굶을수록 세포들은 더 축적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이어트는 살찌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왜, 살은 다시 찌는가>)이라는 역설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영주처럼 조금이라도 통통한 몸을 가진 친구들은 금방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고, 곧바로 자기혐오에 빠진다고 했다.

자기 몸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해

우리가 함께 읽은 록산 게이의 <헝거>는 바로 이 문제, 뚱뚱한 몸이 직면하는 모욕과 수치심, 자기혐오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아이티계 미국인인 그는 열두 살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고통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는 음식에서 값싼 위로를 찾았으며, 더 안전해지기 위해 자기 몸을 불렸다. 이제 그는 키 192㎝에 몸무게 262㎏의 거구가 되었다. 그러자 그의 몸은 공적으로 전시된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사람들은 그가 운동기구에 올라갈 때마다 불안해하면서 힐끔거린다. 의학적 담론 속에서 그는 초고도비만이라는 통계와 수치로 축소된다. 노골적 낄낄거림과 은밀한 경멸이 어디서나 그에게 퍼부어졌다.

그러나 그 책은 록산 게이가 살을 빼고 자기혐오에서 벗어난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는 뻔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몸은 어떤 맥락 속에 있기 때문에 날씬한 사람의 “너는 뚱뚱하지 않아. 있는 그대로 너의 몸을 사랑해”라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빈정상하는’ 일일 수 있고, 반대로 뚱뚱한 사람의 “나는 외모에 큰 관심이 없어”라는 말도 모욕에 대한 분노를 감추기 위한 완고함의 표현일 수 있다. 록산 게이는 정치적 올바름보다 더 필요한 것은 각자의 맥락,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이라도 자기 몸에 켜켜이 쌓여있는 사연과 감정을 드러내는 용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록산 게이를 따라 우리도 자기 몸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5㎝만 늘려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던 내밀한 욕망, 성적 대상이 되는 게 싫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심받고 싶다는 모순된 감정, 에브리데이 다이어트를 통해 비쩍 마른 몸을 유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몸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에 괴롭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그러나 몸에 갇혀 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몸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도 우리 안에는 있었다. 열여섯 영주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로 남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해낸 작은 경험을 들었다.

답 못 찾아도 작은 사실 확인에 만족

한때는 먹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껴 좋아하던 요리도 딱 끊었지만 작은 성취들이 쌓이고 글쓰기나 요리처럼 자기에게 즐거운 일들을 다시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난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라거나 ‘뚱뚱하면 뭐 어때?’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후배는 몸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진 책이나 사람들을 가까이했던 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난 이런 미시적인 이야기들이 좋았다.

한 달간의 집중탐구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찾진 못했다. 다만 우리는 모두 자기 몸과 관련하여 매우 모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다이어트는 생각보다 복잡한 세계라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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