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고영직 문학평론가

윤동주, 장준하, 함석헌, 이광수, 안창호. 다섯 사람 모두 20세기 현대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분들이다. 그런데 위의 다섯 사람이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 사람의 삶과 사상은 어떠했을까. 평안도 용강 출신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안병욱 선생(1920~2013)은 위 다섯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사건이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한다. ‘스승복’이 많은 삶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느 가을날, 강원도 양구군 인문학박물관 안병욱관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라는 화두를 얻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누구나 누군가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다. 나 또한 그랬다. 10대 시절 민족주의자 성향이 강했던 나는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과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말과 글에 영향을 받았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대여, 왜 자신이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라는 도산 선생의 말은 아직껏 내 가슴 한편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겉멋’이 든 10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달까.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면 장준하의 <돌베개>, 김준엽의 <장정>을 ‘무협지 보듯’ 탐독했다. 두 사람이 일본군영을 탈출해 마침내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무협지보다 더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10대 시절 방황은 멈출 줄 몰랐다. 셋째형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10대 시절의 기억을 어둡게 수놓았다. 그때 접한 ‘스승’이 중국 작가 루쉰 선생이었다. 한문학자 이가원이 번역한 루쉰 소설을 접하며 책읽기가 강렬한 경험이 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알았다. ‘정신승리법’으로 유명한 소설 <아Q정전>과 <광인일기> 같은 루쉰의 문장은 무너진 내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채찍질과도 같았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로 끝나는 <광인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남았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문장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읽혔다. 루쉰의 문장을 읽으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나 스승을 찾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참스승을 만나는 사건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라고 한 것도 참스승 찾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이 아니었을까. 이태 전에 작고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1947~2020)은 내 인생에서 만난 참스승이었다. 생태위기를 경고하고, 철저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선생의 말과 글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었다. 하지만 선생의 진면목은 ‘유머 감각’이다. 어쩌면 선생의 삶과 사상은 비관주의적 낙관주의자로서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선생 덕분에 나는 ‘엄근진’(엄격·근엄·진지를 뜻하는 신조어)에서 벗어나, 조금은 남들을 웃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하지만 갈수록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역행보살’들이 넘쳐나는 것만 같다. 부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이 강하다. 소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2011)에서 ‘지금 이 나라에는 희망만이 없습니다’라고 일갈한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외침이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리더가 되기 전에 먼저 리더(reader)가 되어 참스승을 만났으면 한다. 책 속에는 길이 없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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