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 과학은 뭘까

이정호 산업부 차장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전 세계인들은 흐린 화질로 전해지는 텔레비전 속 한 장면에 이목을 집중한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월면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인류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달 착륙을 하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대중 연설부터 실제 실행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미국이 ‘일’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폴로 계획 덕분이었다. 국가 자원을 하나로 묶은 아폴로 계획이 우직하게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달 착륙은 훨씬 이후의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야 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됐다. 그렇게 미국은 그때도 지금도, 유일하게 사람을 달에 보낸 국가가 됐다. 케네디 대통령에게 과학은 냉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에 과학은 무엇일까. 이번 정부는 과학기술 강국 실현을 취임 초부터 천명해 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우주기술 등을 집중 육성하고, 다른 나라가 추격할 수 없는 수준의 초격차 기술을 다수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정부는 정책 곳곳에 ‘과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코로나19 방역과 경호, 저출생 대응 등에서 ‘과학적 접근’을 유독 부각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움직이는 모습은 과학적이지 않다. 한국 과학정책을 종합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라는 조직이 있다. 의장이 대통령이다. 회의 때마다 대통령이 자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어렵다. 자문회의에서 다루는 의제들 대부분이 화급을 다투는 일은 아니어서다. 다만 국가의 중장기적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긴 하다.

이 때문에 자문회의의 위상은 아직도 대통령이 몇 번이나 회의에 참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와야 자문회의 소속 각 부처 장관들이 오고, 그래야 자문회의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갈 수 있다. 낡은 구조다. 과학을 다루는 국가 기구가 ‘관료주의’에 휩싸인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이런 의사결정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에는 과학을 다루는 수석비서관도 없다. 경제수석 아래 6개 비서관 중 한 명이 과학을 맡고 있다. 전임 정부 때에는 차관급 과학기술보좌관이 있었다. 다양한 국정과제를 챙기는 대통령실 경제수석에게 과학은 6가지 일거리 중 하나뿐일 가능성이 크다. 과학을 그토록 중시하는 이번 정부와는 결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정부에 과학은 ‘수사(修辭)’가 된 건 아닌지 우려된다. ‘과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합리성’이나 ‘논리 정연함’의 이미지를 전임 정부와의 차이점을 주장하거나 정책의 외양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하는 일이 잦다. 과학 발전을 돕는 조직부터 과학의 관점에서 정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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