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예방법’ 더는 늦출 수 없다

2023년 국민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이었다. 지난 몇년 동안 이처럼 노동시간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현행 1주일 최대 연장근로 한도를 69시간부터 60시간까지 가능토록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의 후폭풍이 거세자 재검토 후 지난 11월 근로시간 개편 방향을 다시 발표했다. 주요 내용으로 현행 ‘52시간 상한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유연 근무 필요성을 언급했다. 바쁠 때 더 일하고 한가할 때 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약 8개월 동안 연구조사와 현장 및 이해당사자 의견을 청취한 결과가 고작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의 예외였다. 제조건설, 운수창고, 보건의료, 연구기술 분야가 꼽힌다. 그런데 이미 정부가 밝힌 업종이나 직종 다수는 과잉노동이나 소진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곳들이다. 더 큰 문제는 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다. 설문조사 표본에서 비정규직은 10.9%에 불과했고, 몇몇 문항은 의도된 답변 도출을 위한 편향성이 심각했다.

무릇 국가는 과로사나 질병 발생 등에 따른 피해와 손실 방지를 위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5일 국회에선 과로사 예방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자리였다. 문제는 공청회에 참석한 경영계 참가자들의 진술들이다. 과로사 예방 취지는 공감하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를 장시간 노동 국가로 보긴 어렵다” “산재 인정 건수 증가는 외국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현행 업무상 재해 기준도 영향을 미친다” “생활비 보전을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려는 근로자들 요구도 존중돼야 한다”와 같은 의견들을 쏟아냈다.

서로 다른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노동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매우 첨예하다. 그러나 주장의 근거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우리는 연간 노동시간이 190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752시간)와 유럽연합(EU·1571시간) 회원국들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한다. 특히 48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은 17.5%로 EU(7.3%)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2016년 장시간 노출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지적한 보고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55시간 이상 노출 인구 비율이 8.1∼9.2%로 멕시코, 콜롬비아, 튀르키예 다음으로 높다.

실제로 최근 5년 동안 뇌·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업무상 재해 인정 사망은 2503명이나 된다. 한 해 평균 500명가량인데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과로 사망이 더 많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불안정노동자와 같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로사방지법은 아마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물론 택배기사나 물류운송, 경비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늦었지만 과로사 방지와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은 이제라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국회 발의된 과로사예방법은 2014년 일본에서 제정된 법률을 참고한 것 같다. 법안의 취지는 일터에서의 노동자 생명·안전과 건강을 위한 예방과 지원에 목적을 두고 있다. 기업 규제 내용은 단 하나도 없다. 기본계획 수립과 평가 및 연구조사와 교육 및 홍보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 지원 등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이 대부분이다. 이미 우리는 2010년과 2015년 두 차례 노사정 3자가 OECD 평균 수준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한 바 있다.

1995년 프랑스 국회는 노동시간 위원회를 설치하고, 향후 20년간 20% 이상의 단축 권고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고용유지나 일자리 창출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빠지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 규제나 야간노동 및 적정한 휴식 등 담은 EU의 노동시간 규정과 지침(1993)도 우리 사회가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노동자 건강 및 안전조치가 법률 채택 목표였지 생산성 향상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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