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을 책임지는 금속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휴에 일손이 모자란다며 긴급 지원요청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처가의 ‘돈카츠’ 매장에 도착해보니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고, 홀과 주방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돈카츠’를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손님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그런 것처럼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존재, 바로 스테인리스 스틸이란 금속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튀김기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 있습니다. 옆에 놓인 커다란 오븐도 그렇고, 제가 기대고 있는 싱크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천장에 설치된 환풍기 또한 자신이 스테인리스 스틸임을 자랑하는 상표가 떡하니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칼, 압력솥, 수저, 국자, 냄비 등 주방의 거의 모든 것이 이 은색의 광택 나는 금속제품입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 스틸은 왜 이처럼 주방에서 널리 쓰이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금속의 가장 큰 단점인 녹스는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벼우면서도 내열성 또한 우수하니 물과 열을 피할 수 없는 주방에는 최적의 소재입니다. 그밖에도 위생이 중요한 의료용으로도 널리 사용되는데, 우리 몸과 접촉하는 모든 곳에 이 금속이 있다고 말해질 정도입니다.

녹이란 금속이 공기나 물속에 포함된 산소와 접촉하면서 생성되는 일종의 산화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철에서 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금속의 경우도 녹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리의 경우도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표면이 점차 녹색으로 변합니다. 국회의사당의 돔형 지붕,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처음에는 구리 고유의 검붉은 색이었으나, 점차 산화에 의해 녹이 슬면서 청록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금은 녹이 슬지 않습니다. 산소와 반응하지 않아서인데요. 그렇다면 스테인리스 스틸도 이런 원리로 녹을 방지하는 걸까요?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훨씬 더 빠르게 산화를 일으키는 것이죠. 스테인리스 스틸은 철과 크롬의 합금으로 만들어집니다. 철도 산소와 반응하지만 크롬은 훨씬 더 잘 반응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아주 얇고 투명한 크롬의 산화막이 표면에 형성됩니다. 그러면 이 산화막이 산소를 차단해 안쪽 금속은 더는 산화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1912년 영국 브라운퍼스연구소의 해리 브리얼리는 철과 다른 금속들을 합금해 대포의 포신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버려진 쇳조각들 가운데 녹슬지 않은 조각을 발견했는데, 그 조각이 바로 철과 크롬의 합금이었습니다. 스테인리스는 ‘얼룩(stain)’, 즉 녹이 ‘적다(less)’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주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인 STS304의 경우 크롬 함유량이 18~20%이고, 고가의 니켈도 10% 정도 포함됩니다. 니켈을 혼합하면 녹에 대한 저항성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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