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름으로 튀겨야 하나?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튀김을 하려면 먼저 식재료를 손질하고, 튀김옷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속이 깊은 용기에 기름을 담고 고온으로 가열한 후, 튀김옷을 입힌 식재료를 투입합니다. 과정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렇게 만든 튀김을 한입 베어 물면 그간의 노고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뒷정리입니다. 특히 남은 기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항상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제품이 있습니다. ‘에어프라이어’인데요, 공기를 이용하는 튀김기란 뜻이지만, 사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그리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튀김은 식재료가 푹 담길 정도로 충분한 양의 기름을 이용해 고온에서 조리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어프라이어는 기름이 아니라 공기를 사용하니, 정의상으론 튀김기는 아닌 것이죠.

하지만 그 기본 원리가 튀김기와 비슷하며, 결과물 또한 기름을 사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튀김기의 일종으로 점차 인정받는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에어프라이어는 2010년 베를린 국제가전제품박람회에서 필립스사가 자신들의 신제품에 붙인 이름입니다. 새로운 튀김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죠.

튀김에 기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름의 풍미를 더하기 위함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름의 높은 끓는점입니다.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기름은 보통 200도 이상에서 끓습니다. 따라서 물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에서 조리가 가능하죠. 그리고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요리는 맛과 향이 더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온의 열을 골고루 전달할 수만 있다면, 꼭 기름에 튀기지 않더라도 맛있는 요리는 얼마든 가능합니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기입니다. 공기는 기름처럼, 아니 기름보다 더 빠르게 가열되며 별 무리 없이 200도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빨리 가열되는 만큼 빨리 식기에, 공기를 아주 빠르게 순환시키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에어프라이어는 위쪽에 전기 열선이 달렸습니다. 아래쪽에 열선을 두면 조리 중 떨어지는 기름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있어서입니다. 열선에서 가열된 뜨거운 공기는 그 위에 달린 팬을 통해 용기 안에서 강제 순환되며 음식을 조리합니다.

그런데 이 제품의 기원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군장교 출신으로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윌리엄 맥슨은 1944년 해군 비행사들을 위한 급속냉동 간편식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이를 해동할 수 있는 일명 ‘맥슨 회오리바람 오븐’도 발명했습니다. 한 번에 6인분을, 게다가 일반 오븐의 절반 수준인 15분 만에 조리를 끝낼 수 있어 큰 성공을 거뒀죠.

이 오븐의 핵심은 내부에 장착된 팬에 있습니다. 팬이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면서 빠르게 음식을 해동시키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팬이 달린 오븐이 단계적인 개량을 통해 현재와 같은 에어프라이어로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이 에어프라이어가 튀김기로서 더 확고히 자리잡는다면, 어쩌면 튀김의 정의에서 기름이 빠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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