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야구가 용산보다 낫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기계적 공정에 대한 강조와
국정철학의 부재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되는 모양새다

그래도 대화 없이 밀어붙이는
용산보다는 야구가 나아 보인다

야구가 개막했다. 개막을 앞두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류현진이 돌아왔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화행을 택했다. 더 나중에 ‘은퇴 투어’처럼 오기보다는 아직 잘 던질 수 있을 때, 그래서 한화의 성적에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한화 팬들이 들떴다.

메이저리그 개막전도 서울에서 열렸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SNS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사랑’을 드러냈다. 국내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스포츠 스타다. ‘7억달러 사나이’ 오타니는 물론이고 연봉이 수천만달러인 선수들이 한국 야구장에서 뛰었다. 그걸 보러 많은 유력인과 스타들이 야구장을 찾았다. 수십만원짜리 표가 동났다. 개막을 앞두고 야구 분위기가 잔뜩 달아올랐다.

2024시즌 KBO리그는 ‘혁명적 변화’로 시작된다. 류현진의 복귀,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따른 ‘분위기’가 아니라 야구라는 종목의 ‘근본’이 바뀌는 시스템적 변화다.

한국야구는 올해부터 ‘기계 심판’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메이저리그도 주저하던 일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야구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공의 궤적을 파악해 스트라이크, 볼을 판정하고 이를 주심의 ‘이어폰’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기술적 문제는 IT 강국답게 싹 해결했다. 기계의 판정과 주심의 선언 사이 ‘시차’를 없앴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범 적용 때 고민하던 부분인데, 한국야구는 뚝딱 고쳤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입 이유는 ‘판정의 공정성 강화’다. 아무리 잘 훈련된 심판이라 하더라도 실수가 나올 수 있고, 혹시 모를 ‘심리적 편향’까지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사람이 판정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균형’에 쏠리는 경우가 생긴다. 3볼-0스트라이크라면, 스트라이크존이 다소 넓어지고, 0볼-2스트라이크라면 존이 좁아진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이미 승부가 기울었다면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는 편향도 발생한다.

이제 기계 판정이니까 편향은 사라진다. 수도권팀의 한 코치는 “패전처리 투수가 올라왔을 때 경기가 한없이 늘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미 승부가 기운 경기더라도 ‘기계적 공정’이 적용된다. ‘공정’이 중요하므로 쏟아지는 볼넷도 감수해야 한다. 혹시 모를 배려는 불공정이다.

그나마 공정은 의미 있는 구호라 쳐도, 스트라이크존의 기계적 구성은 ‘철학 부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ABS는 스트라이크존의 상하 기준을 선수 신장의 56.35%, 27.64%로 규정했다. 좌우는 홈플레이트 크기보다 2㎝씩 늘렸다. 공정과 중립을 위해 타자들 타격폼의 개별 특성은 무시됐다. ‘스트라이크’의 어학적 뜻은 ‘때리다’이다. 그러니까 실제 뜻은 ‘정해진 구역 안에 들어온 공’이라기보다는 ‘(야구방망이로)때릴 수 있는 공’이라고 보는 게 맞다. ABS를 통해 만들어진 ‘존’은 네 곳 모서리가 모두 스트라이크인데, 그 코스는 타자가 ‘스트라이크’하기 꽤나 어렵다. 사람이 판정할 때는 좀처럼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지 않는 영역이다. 지금 기술이라면 존 모양을 타원으로 바꾸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기계적 공정에 대한 강조와, (국정)철학의 부재는 2024년의 ‘시대정신’이 되는 모양새다. 야구도 시대정신을 따라가는 걸까.

메이저리그 개막전은 큰 화제를 모았지만 한국야구는 들러리였다. 한국야구가 시설 개선을 요구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메이저리그가 필요하다니까 24억원을 들여 고척스카이돔을 싹 바꿨다. 라커 룸을 미리 내주는 바람에 LG와 키움은 물론 대표팀도 복도에 짐을 풀었다. 선수들은 제대로 된 밥 대신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미국 지상주의’도 묘하게 닮았다.

그래도 야구는 용산보다 낫다. 메이저리그를 따라 서둘러 피치클록(투구시간 제한제도)을 도입하려다 실제 경기에 나서는 감독과 선수들로부터 준비 부족을 지적받았다. 허구연 KBO 총재는 부랴부랴 각 구장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팬 퍼스트를 이유로 강하게 몰아붙이려던 태도에서 물러났다. 시즌 중 도입 방침을 철회하고 충분한 준비 뒤 내년 시즌 도입을 결정했다.

별다른 근거 없이 ‘2000명은 돼야지’라는 식으로 못 박아두고 대화 없이 밀어붙이는 용산보다는 야구가 나아보인다. 2024년 봄, 야구가 개막했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이용균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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