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내 채굴 난관’ 사정도 모른 채 1조4500억 ‘깜깜이 투자’

멕시코산타로살리아 | 강병한 기자

멕시코 볼레오 광산 르포

▲“사업 타당성 없는 증표”
당초 ‘갱내 비중 90%’ 보고
실제 6380만t 중 3880만t
약한 지질 ‘개미굴’ 구 광산
한국식 철재빔 채광법
‘배보다 배꼽’ 비용도 논란

지난 4일(현지시간) 멕시코 바하반도 산타로살리아의 볼레오 광산 M303. 볼레오 광산에서 유일하게 갱내 채굴을 진행하는 곳이다.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갱도 입구로 들어섰다. 갱내 초입 천반(天盤) 곳곳에 커다란 볼트가 보였다. ‘록 볼팅(Rock bolting)’이다. 단단한 암석에 볼트를 박아 천반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금속광 갱내 채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록 볼팅은 10m 정도를 걸어가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더 들어서자 갱내 광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철재빔이 빼곡하게 갱내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360m의 갱내 전체가 인공철굴처럼 보였다. 이른바 ‘한국식 천반 지보법’이다. M303 광산 대부분은 철재지보로 갱도 붕락을 방지하고 있었다.

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이곳에 볼레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록 볼팅과 철재지보. 여기에 볼레오의 과거 그늘, 앞으로의 성패 여부가 모두 담겨 있다는 의미였다. 왜 그럴까. 볼레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으로 돌아가자.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한국컨소시엄이 지분 90%를 소유한 멕시코 바하반도의 볼레오 광산에서 지난 1월17일 처음으로 생산된 구리 제련동 20t이 지난 4일 제련공장 앞마당에 쌓여 있다.  멕시코 산타로살리아 | 강병한 기자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한국컨소시엄이 지분 90%를 소유한 멕시코 바하반도의 볼레오 광산에서 지난 1월17일 처음으로 생산된 구리 제련동 20t이 지난 4일 제련공장 앞마당에 쌓여 있다. 멕시코 산타로살리아 | 강병한 기자

■2012~2013년, 잃어버린 2년

2012~2013년의 볼레오는 광물공사에 ‘잊고 싶은 시간’이다.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지속적으로 돈을 쏟아부으면서 투자비가 1조원대를 넘어섰고, 광산 개발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자원외교 실패의 사례라는 부정적 시선도 이 기간에 집중돼 있다.

볼레오 사업의 시작은 단순한 지분투자였다. 광물공사는 2008년 4월 민간기업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볼레오 광산 운영사인 MMB의 지분 30%를 캐나다 바하마이닝으로부터 인수했다. 광물공사 지분은 10%였고, 인수대금은 2530만달러였다. MMB는 주주사 대출과 대주단의 신디케이트론 자금을 바탕으로 2010년 10월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2012년 4월18일 위기가 닥쳤다. MMB 지분 70%를 보유한 바하마이닝이 2억8540만달러의 사업비 증액을 요구하고, 대주단이 추가 자금 인출을 중단해 MMB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직면했다. 대주단과 MMB는 6월19일 권리행사유보협약(Standstill agreement)을 체결한 후 수차례의 연장을 통해 2014년 4월 말까지 협약을 이어갔다.

이때 느닷없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광물공사였다. 광물공사는 당시 증액사업비 전액을 부담하는 등 지속적으로 투자를 벌여 지분을 70%(한국컨소시엄 90%)까지 인수했다.

[눈먼 불도저 ‘MB 자원외교’]‘갱내 채굴 난관’ 사정도 모른 채 1조4500억 ‘깜깜이 투자’

2012년 11월 대주단인 미 수출입은행의 부채 4억1900만달러까지 기업금융으로 전환했다. 광물공사가 위기의 바하마이닝과 MMB, 대주단까지 모두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그사이 광물공사는 1조4500억원을 투자했다. 엉겁결에 해외에서 최초로 광산을 운영하게 되는 ‘덤’도 얻었다.

감사원은 증액 투자 당시 광물공사 볼레오 사업 담당 부서가 기준수익률과 내부수익률을 조작했다고 2014년 6월 밝혔다. 참여연대와 정의당은 지난해 말 광물공사 김신종 전 사장과 고정식 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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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 같은 볼레오, 갱내 채굴 시작부터 난관

2014년 5월 광물공사가 MMB가 발행한 회사채 3400만달러를 보증함으로써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청산했다. 모두들 떠난 자리에서 광물공사는 본격적인 광산 개발을 시작했다. 곧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갱내 채굴을 시도하자 갱도가 자꾸 무너져내렸다. 품위가 높은 광석을 캐기 위해서는 갱내 채굴이 필수적이었다.

1차적으로 볼레오 지반은 퇴적암과 화산암이 결합된 ‘망토(Manto)형’ 광산으로 지질 자체가 약하다. 갱내 광산 이름에 M이 붙은 것도 망토층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볼레오는 1868년 광맥이 발견된 후 150년간 독일, 프랑스, 멕시코 등이 차례로 개발하면서 구 광산(old mine)이 산재해 있다. 광산 곳곳에서는 구 광산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들이 쉽게 발견됐다. 그 주변에는 당시 지보재로 사용됐던 썩은 나뭇조각들이 암석에 박혀 있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여기저기서 구리를 파먹으면서 개미굴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수차례 갱도를 만들어 구리를 채굴한 후 되메운 부분(retaque) 때문에 지반이 더욱 약해져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광물공사가 갱내 채굴을 위해 애초 시도했던 록 볼팅 방식은 실패를 거듭했다. 록 볼팅을 위한 단단한 암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MMB 의뢰로 기술자문을 한 호주 광물컨설팅 업체인 스노든은 2014년 6월 기술보고서에서 “현재 갱내 채광 시스템은 되메워진 부분을 채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현장 실사 기간 중 현장 기술자 역시 안전하고, 생산적이며, 비용이 효율적인 갱내 채광 시스템을 개념화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갱내 채굴의 어려움으로 노천과 갱내 채굴 비중도 다소 조정됐다. 2008년 4월 광물공사 이사회에 보고된 투자안에는 가채광량 중 갱내 채굴 비중이 90%이다. 그러나 이동섭 MMB 처장(광산개발총괄)은 “가채광량(6380만t) 중 2500만t은 노천, 나머지는 갱내 채굴”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갱내 채굴의 난관이 근본적으로 볼레오 사업의 타당성 없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보고 있다. 광산 사정을 모른 채 지분을 90%까지 인수한 ‘깜깜이 투자’라는 비판이다.

■한국형 지보법, 고육책인가 해결책인가

고려아연 출신의 이상범 MMB 사장은 “작년 광산 쪽에서 그사이에 문제가 많았던, 무너지고 했던 것을 한국에 있던 경동탄광 사람들하고 합동으로 한국식 채광법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철재지보를 이용한 천반 지보법을 통해 안전한 갱내 채굴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MMB는 지난해 9월부터 이런 방식으로 갱내 채굴을 하고 있다.

실제로 M303 갱도의 끝자락에서 멕시코 광부들이 푸른빛 구리를 캐고 있었다. 인근의 M312 광산에서도 철재지보를 이용해 두 개의 갱도를 굴진시키며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철재지보법의 비용을 놓고도 논란이 있다. 철재빔 한 세트당 35만원이다. MMB는 당초 미국산 빔, 한국산 빔을 거쳐 현재는 중국산 빔을 사용 중이다. 비용 압박 때문이다. 박용하 MMB 부장(기획·인사)은 “철재지보법이 록 볼팅보다 비용이 20% 절감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록 볼팅보다 철재빔을 사는 데 비용이 더 든다”고 주장했다.

갱내 채굴이 완벽하게 정상화되지 않으면서 볼레오는 노천 채광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노천 채굴은 현재 3군데서 진행되고 있었다. 4일 방문한 OC 3130 노천 광산에서는 구리 광석을 캐는 포클레인 근처에 광물공사 지질직 직원이 위치해 있었다. 휴대용 품위 분석기를 활용해 광석 품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포클레인 기사에게 품위 높은 광석의 위치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볼레오는 ‘잃어버린 2년’과 갱내 채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5일 찾은 제련소 앞마당에는 최근까지 생산된 20t의 구리가 쌓여 있었다. 박용하 부장은 “지난 1월17일 첫 제련동이 나왔을 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MMB 간부들은 이날 생산된 구리로 만든 배지를 모두 가슴에 달고 있다. 이상범 사장은 “볼레오는 경제성이 있다. 상반기에 상업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산 개발과 제련을 본격화하면 총 18억달러(MMB 기준)를 투자한 볼레오 사업의 성패는 곧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진요) 모임은 최근 볼레오를 하베스트(석유공사), 혼리버(가스공사) 사업과 함께 자원외교 3대 의혹 사업으로 선정했다.

<멕시코 산타로살리아 | 강병한 기자silverman@kyunghyang.com>

▲MB 자원외교 특별취재팀 강병한·김형규·유희곤 산업부 기자 심혜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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