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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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핀 라이트는 무대 위 오직 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추는 조명을 뜻합니다. 핀 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이 열기를 즐기며, 또 감내하며 자신의 걸음을 만들어가고 있을 이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연재글 ‘핀 라이트’를 시작하는 문구입니다. 연예인 중에서도 여자를 향한 우리 그리고 사회의 시선은 ‘가혹하다’고 할 만큼 엄격하고 차가울 때가 많습니다. 경향신문 문화부 김지혜 기자와 심윤지 기자, 토요판팀 이유진 기자는 이들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지 고민하다 2년 전 ‘핀 라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2019년 가수 아이유를 시작으로 최근 홍진경까지 여자 가수와 여자 배우, 여자 방송인에 대한 세 사람의 글에서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던 여자 연예인의 목소리,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핀 라이트’는 여성혐오가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다른 시선들로 바라본다. 경향신문 문화부 심윤지 기자, 김지혜 기자, 토요판팀 이유진 기자(왼쪽부터)는 ‘여성 연예인을 향한 사회의 가혹한 시선을 조금 더 너그럽게 만들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 기획을 시작했다. 사진 | 채용민 PD

‘핀 라이트’는 여성혐오가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다른 시선들로 바라본다. 경향신문 문화부 심윤지 기자, 김지혜 기자, 토요판팀 이유진 기자(왼쪽부터)는 ‘여성 연예인을 향한 사회의 가혹한 시선을 조금 더 너그럽게 만들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 기획을 시작했다. 사진 | 채용민 PD

여성혐오가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여자 기자들에게 다른 여성에 대해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은 어떤 작업일까요. 플랫팀이 물어봤습니다.

“이런 기사, 살아있을 때 써주지….”
잊을 수 없는 댓글이 있었다



플랫팀 = 여자 연예인에 대해 연재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해요.

김지혜 = 좋은 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어요. 2019년 10월14일. 사랑하는 설리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제가 부고 기사를 칼럼 형식으로 썼어요. ‘설리,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늘 기행을 일삼는 인물처럼 취급돼 사회적 편견에 끈질기게 맞선 투쟁가로서의 모습이 제대로 부각 안 됐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면모를 전하고 싶었어요. 기사가 나가고 댓글을 보는데 마음에 너무 박히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런 기사 살아있을 때 써주지 뭐 했냐, 이 기레기야.’ 원래 악플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데, 이 댓글은 너무 마음에 남았어요. 설리씨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기사를 쓰지 못했다는 후회가 많이 남았어요. 앞으로는 여성 연예인들의 ‘성취’를 조명하자는 이야기를 이유진 기자님과 나누다가 기획으로 진전됐습니다.

이유진 = 설리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살아있을 때 쓰지 못했다’는 부분이 저에게도 크게 다가왔고요. 여성 연예인에게 안 좋은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사람의 재능을 칭찬하고 추억하기 시작해요. 이분들이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 나가고 있을 때 기록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설리 기사’ 1년치 분석해 보니…악플과 중계식 보도 ‘가학의 악순환’

김지혜 = 그래서 주인공을 여성 연예인으로 한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그동안 남겨온 발자국을 수집해서 서사를 부여하기도 해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했던 인터뷰, 방송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을 모아서 일대기를 정리하며 이뤄낸 것들을 재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핀라이트’ 필진들이 재조명한 여성 연예인들, 이들 외에도 전효성, 이지혜, 씨엘 등 여성 연예인의 인터뷰와 그들이 했던 말들을 모아서 일대기를 정리해 왔다.

‘핀라이트’ 필진들이 재조명한 여성 연예인들, 이들 외에도 전효성, 이지혜, 씨엘 등 여성 연예인의 인터뷰와 그들이 했던 말들을 모아서 일대기를 정리해 왔다.

플랫팀 =첫 번째 주인공은 가수 아이유였어요.

김지혜 = ‘핀라이트’ 기획을 구상하던 때 아이유씨가 컴백을 했어요.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 자료 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보다 보니 정작 마감을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취재하면서 저조차 아이유씨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면목을 몰랐구나’ 싶었고요. 첫 회를 쓰고 나서 ‘핀라이트’의 주인공 선정 기준이 명확해졌던 것 같아요. 오해와 편견, 차별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여자 연예인들을 조명하는 것으로요.

이유진 =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잖아요. 주관이 뚜렷한 여성 연예인들은 편견 때문에 아픔을 겪은 경우가 많아요. 활동 중단을 경험하거나 실력이 저평가되기도 해요.

여성 연예인의 활동사를 보면
이들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보인다



심윤지 =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가 나왔을 때 엄정화씨를 주인공으로 정했어요. 지금까지 연예계 활동을 되짚어 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핀라이트’에 나중에 합류했는데 좋은 포맷의 기획이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여성 연예인들에겐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아요. 최근 가수 현아씨의 컴백 기자간담회가 비대면으로 열렸는데 기획사에서 까다롭고 민감한 질문은 사전 통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 ‘남자친구 반응은 어때요’ ‘프로듀싱을 싸이씨가 했는데 어땠나요’와 같은 질문이 대부분이었어요. 결국 현아씨가 “이거 던이 쇼케이스에요?”라며 본인에 대한 질문을 해달라고 했어요.

플랫팀 =‘핀라이트’에는 주인공에 대한 굉장히 많은 기록이 담겨있어요. 어떤 자료들을 찾아보나요?

김지혜 = 닥치는대로 다 봅니다. 과거 인터뷰 기사는 전부 찾는데 예능에서도 인터뷰 형식으로 발언한 건 웬만하면 다시 다 보려고 노력해요. 노래를 직접 만드는 경우는 가사에 가치관, 생각이 많이 담겨있어서 노래를 하나하나 들으며 가사도 확인해요 워낙 방대해서 다 듣지는 못할 때도 있는데 팬들이 좋은 인터뷰를 정리해 놓은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경향신문 문화부 김지혜 기자, 그가 쓴 ‘설리,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 부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 여성 연예인들의 ‘성취’를 조명하는 핀라이트  기획으로 진전됐다. 사진 | 채용민 PD

경향신문 문화부 김지혜 기자, 그가 쓴 ‘설리,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 부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 여성 연예인들의 ‘성취’를 조명하는 핀라이트 기획으로 진전됐다. 사진 | 채용민 PD

이유진 = 주인공을 둘러싸고 논란됐던 사건들이 어떻게 시작돼서 어떻게 끝났는지 추적하는 조사를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떠들썩하게 보도되고 비난도 쏟아졌지만 나중에 보면 오해였던 사건, 사고들이 많더라고요. 정작 이런 결과는 기사로 나오지도 않아요.

심윤지 = 유튜브 콘텐츠를 많이 참고해요. 엄정화씨를 쓸 때는 위인전을 쓰는 느낌도 들었어요. 1990년부터 무대와 다큐 등을 다 찾아보다가 정말 애정이 커졌어요(웃음).

김지혜 = 아카이브가 잘 돼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연예인도 많아요. 김숙씨를 예로 들면 ‘가모장숙’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후에는 양질의 기사가 많지만 옛날에는 연관 기사가 ‘게임 폐인’이나 시덥지 않은 농담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이유진 = 저도 한예슬씨를 주인공으로 핀라이트를 쓸 때 많이 느꼈어요. 드라마 촬영 도중 외국으로 출국해서 논란이 됐던 사건은 모두 기억날 거예요. 당시 ‘마녀사냥’ 수준의 과격한 비난 기사들을 보면서 ‘나에 대해 이런 말들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는데 정말 끔찍할 정도였어요. 한참 뒤에야 촬영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고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배우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사실을 발표하면서 한예슬씨에 대한 ‘무책임하다’는 주장은 오해였다고 반박했어요. 하지만 이 내용은 별로 기사화되지 않았죠. 출국 당시 ‘결혼설’과 같은 가십만 무성하다가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진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거죠. 이 사건으로 활동을 2~3년이나 쉬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취재하면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김지혜 = 핀라이트를 쓸 때 주제를 미리 잡지 않아요. 방대하게 자료 조사부터 하는데 찾아보면 볼수록 주인공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눈에 들어와요. 전도연씨를 주인공으로 쓸 때는 ‘겸손을 거절하는 여자 연예인’으로 주제를 잡았어요. 취재하다 보니 사회가 배우 전도연에게 겸손을 강요해 왔더라고요. 드라마 <굿와이프>에 출연했을 때 ‘출연료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기사가 정말 많았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었던 후배 남자 배우들의 출연료가 전도연씨보다 훨씬 고액이었어요. 그런데도 무조건 전도연씨를 비판하는 기사가 너무 많았던 것을 보면서 느낀 분노로 글을 쓸 연료를 제 안에 채웠던 것 같습니다.

성취는 사라지고 논란과 비난,
아니면 남편과 남친 얘기만 남았다



플랫팀 = 박미선씨의 경우 30년 치 활동을 전부 조사해서 취재한 것이잖아요. 엄청난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이유진 = 가장 지난했던 작업이 ‘이봉원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는 것이었어요. 남편과 관련한 가십성 기사가 너무 많았어요. 30년간 박미선이라는 이름보다 ‘사고뭉치 남편의 아내’로 호명돼 왔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미선씨는 아주 예전부터 ‘할 말’을 꾸준히 해오셨더라고요. 자신이 겪는 부당함에 대해서도 늘 얘기를 해왔어요. 우리가 몰랐던 것이죠. 오랜 기간 출연했던 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널이 전부 남자 출연진으로 교체돼 갑자기 하차한 일이 있었어요.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 달라서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지만, 당시 하차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불만을 말씀하셨더라고요. 박미선씨는 언제나 자기 몫을 다하고 소신과 철학대로 살았는데 너무 몰랐던 거죠.

플랫팀 = 가수들의 이야기를 쓸 때는 앨범을 다 듣고 기사를 준비하나요?

김지혜 = 열심히 들어요. 평소에 여성 아티스트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핀라이트 주인공들은 음악 안에 자기 색깔과 가치관을 녹이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분들 이야기에 음악을 뺄 수 없죠. 특히 아이유씨는 아이돌로 시작해서 점차 아티스트로 변하는 과정이 본인의 시간을 다 채우고 있어요. 힌트가 가사에 다 숨어있어요. ‘스물셋’이라는 노래를 비롯해서 항상 나이를 넣어두거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가듯 실마리를 찾아 노래에 채워진 서사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 치열했던 20대에 건네는 아이유의 화려한 인사… 5집 ‘라일락’


플랫팀 = 2020년 ‘KBS 연예대상’에서 김숙씨의 대상은 여성 연예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경사였던 것 같아요.

김지혜 = 사실 그때 시상식을 기대 없이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어요. 대상에 이름이 불리니 김숙씨도 엄청 놀랐었는데 저도 놀랐습니다(웃음). 놀라면서 ‘왜 이제서야?’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죠.

이유진 = 연말 시상식을 보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시상식 장면이 한국 연예계의 축소판 같잖아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 연예인들이 대다수고, 여성 연예인은 테이블마다 한두 명씩 드문드문 앉아 있어요. 여성 연예인에겐 참석은 물론 수상 기회도 많지 않아요. 김숙씨의 경우엔 2019년 MBC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때 “25년 만에 시상식에 왔다”고 했거든요. 장도연씨도 같은 시상식에서 데뷔 15년 만에 상을 받았고요.

2019년에 박나래씨와 이영자씨 등 여성 연예인들이 큰 상을 많이 받아 기분이 좋긴 했지만 시상식 자체가 유쾌하지 않아서 취재 목적이 아니면 챙겨보지 않아요. 김숙씨가 대상을 받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여서 TV를 끄고 자려고 누웠는데 SNS에 ‘가모장숙’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벌떡 일어나 페이스북에 “올해 KBS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썼죠. 바로 동료 여성 기자가 ‘좋아요’를 눌러 주더라고요.(웃음)

플랫팀 = 원래 가지고 있던 팬심을 글로 풀어낸 연재도 있었나요.(웃음)

이유진 = 팬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저는 웬만하면 다 좋아해요(웃음). 잘 되면 흐뭇하고요. ‘핀라이트’에서 조명한 분들은 다 원래 좋아했던 분들이에요.

김지혜 = 저는 웬만하면 다 팬이 아니었어요.(웃음) 지금 대중문화 담당 기자로 살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예인에게 관심이 많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핀라이트’를 준비하다가 팬이 돼요. 안 될 수가 없더라고요. 핀라이트 전효성씨 편이 그런 측면에서 정말 마음에 남아요. 전에는 전효성씨 음악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는데 기사를 쓰려고 듣다보니 노래가 너무 좋은 거예요! 한동안 전효성씨 노래만 들었어요. 여러분, 진짜 노래가 좋으니까 꼭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대 초반 케이팝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웃음).

우리에겐 여자 선배들의
인생 서사가 필요하다



심윤지 = ‘핀라이트’ 주인공들이 연예계의 공고하고 구조적인 모순을 뚫고 살아남은 분들이잖아요. 아티스트로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인생의 선배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핀라이트 김완선씨 편을 보고 정말 팬이 됐어요. 자신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는지 묻는 질문에 “어떻게 기억되든 상관없어요. 기억 안 해도 돼요”라고 했는데 절대 꾸며낼 수는 답변이잖아요. ‘삶에 통달하신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경향신문 토요판팀 이유진 기자.  그는 2030여성에게도 4050 여성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완선씨의 ‘핀라이트는’ 읽는 분들에게 40~50대 여성 롤모델을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사진 | 채용민 PD

경향신문 토요판팀 이유진 기자. 그는 2030여성에게도 4050 여성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완선씨의 ‘핀라이트는’ 읽는 분들에게 40~50대 여성 롤모델을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사진 | 채용민 PD

이유진 = 김완선씨 ‘핀라이트’를 쓰면서 그 부분을 전하고 싶었는데 알아봐 주시니 너무 좋네요. 여성 연예인을 섭외하면서 느낀 것이 지금 2030 여성들에게 4050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부분이에요. 언론에서 이 연령대의 여성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잘 다뤄주지 않아요. 김완선씨가 한 토크쇼에서 비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발언이 인상적이었어요. 남성 패널들이 ‘혼자 사는 것 힘들지 않냐’ ‘결혼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몰아가는데 굉장히 꿋꿋하게 ‘나는 내 소신이 있어서 비혼을 한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고 이 분은 꼭 만나야겠다며 섭외를 했습니다. 인터뷰 끝나고 같이 식사했는데 정말 털털하시더라고요. 음악에 대한 열정도 굉장히 커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핀라이트’를 읽는 분들에게 40~50대 여성 롤모델을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혐오와 차별에 민감한 이들의 글쓰기



플랫팀 = ‘신문’이라는 매체에 실리는 기사 중에 문화와 관련된 글은 정치부, 사회부에서 쓰는 글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루기는 하지만 영화나 소설, 드라마 속에서 현실과 얽혀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기자보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감수성도 필요하고요.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혐오를 찾아내고 차별과 편견을 걸러내는 작업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유진 = 말씀하신 대로 혐오와 차별 편견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한 글쓰기인 것 같아요. 공교롭게 저와 김지혜 기자가 모두 사건, 사고를 다루는 사회부 사건팀을 거치고 문화를 맡았는데 두 영역이 의외로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화부에 오자마자 버닝썬 사건이 터졌고 그때 많은 기사를 쓰면서 느낀 점이 사회부에서 혐오나 차별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것이 중요한 훈련이 됐다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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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 혐오와 차별, 편견을 짚어내는 작업은 문화의 영역에서 글을 쓸 때 더 많이 필요해요. 파급력도 더 크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혐오와 차별을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같은 문제의식도 문화를 통해 지적하면 반향이 더 큰 경향이 있거든요.

경향신문 문화부 심윤지 기자. 복잡하고 미묘한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써도, 그 주제가  ‘문화’이기 때문에 가볍게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 | 채용민 PD

경향신문 문화부 심윤지 기자. 복잡하고 미묘한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써도, 그 주제가 ‘문화’이기 때문에 가볍게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 | 채용민 PD

심윤지 = 혐오나 차별은 복잡하고 미묘한 맥락 속에서 일어나죠. 그래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는 쓰기가 아주 까다로워요. 하지만 ‘문화’를 다루기 때문에 가벼운 이야기나 덜 중요한 기사, 혹은 쓰기 쉬운 글이라고 판단하는 편견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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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 연예계를 다루는 매체가 워낙 많아서 공들여 취재한 기사가 묻혀버리기도 하고, 정치나 사회 이슈가 터지면 뒤로 밀리기도 하죠. 그래서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느낌도 들어요. 하지만 ‘핀라이트’ 연재를 많이 읽어주고, 감상도 나눠주는 독자님들 덕분에 계속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심윤지 = ‘핀라이트’를 쓰다 보면 주인공의 풍부한 서사를 페미니즘 관점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어요. 아티스트 중에는 ‘여성 연예인’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도 많거든요. 직간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분들이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젠더’ 정체성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더라고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능력과 성취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가장 공평하지만 연예계도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김지혜 = 저도 그 고민이 정말 커요. 주인공이 ‘여성’으로서 받는 억압을 인지하고 돌파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고 ‘찬사’를 보낸 것인데 정작 당사자는 남성 팬층이 두터우니까 이런 ‘호명’이 앞길을 막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거든요. 여자 연예인 인터뷰를 하면서 소속사 관계자로부터 “방금 ‘여성 인권’이라고 했던 말은 싣지 말아 주세요”라는 부탁도 들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요. ‘핀라이트’를 쓰면서 주인공의 커리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눈에 보이는 훌륭한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심윤지 = 글을 쓸 때 제 자신을 자꾸 검열하게 돼요. 저는 문화부에서 가요에 대한 글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영역이 정말 넓잖아요. 록, 포크, 인디음악…. 다 살펴야 하는데 자꾸 여성들의 활동만 보이는 거예요. 스스로 ‘관심사가 너무 치우쳐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론은 ‘나의 관심을 부정하지 말자’입니다. 나의 감을 믿고, 옆에 있는 김지혜 기자, 이유진 기자와 같은 동료를 믿어 보자고도 생각해요.

서로에게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



플랫팀 = 여자 연예인은 외모로 찬양받거나 태도 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핀라이트’처럼 인물의 커리어 중심으로 여자 연예인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콘텐츠가 흔치 않아요. 여성 기자들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기울어진 저울에 균형추를 조금이라도 더하는 작업이 아닐까요. ‘핀라이트’를 쓸 때 어디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받나요?

‘핀 라이트’를 써온 세 명의 기자는 밀레니얼 여성과, 회사의 여성 동료들, 익명의 여성들이 트위터와 커뮤니티 등에 내놓는 정제되지 않는 말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는다. 사진 | 채용민 PD

‘핀 라이트’를 써온 세 명의 기자는 밀레니얼 여성과, 회사의 여성 동료들, 익명의 여성들이 트위터와 커뮤니티 등에 내놓는 정제되지 않는 말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는다. 사진 | 채용민 PD

심윤지 = 요즘 좋은 창작물을 내놓는 분들을 보면 거의 밀레니얼 여성이더라고요. <문명특급> 밍키님, 재재님도 그렇고요. 케이팝을 듣고 자란 세대, 대중문화를 흡수하며 자란 세대가 이끄는 케이팝의 변화도 흥미롭게 봅니다. 특히 원더걸스 멤버들을 응원하고 있어요. 10대부터 20대까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정말 열심히 수행하면서 살아온 분들이죠. 제 또래 여성이 연예계에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선미씨는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달리는 사이>에서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다고 고백했고, 예은씨와 현아씨도 우울증 이야기를 꺼내놓고 하죠. 또 음악으로 표현도 합니다. 여자 아이돌이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말을 이제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소비의 대상이었던 시기를 거쳐서 고통을 극복하고 자기를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되고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이유진 = 저는 회사의 여성 동료들이요. 부끄럽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함께 일한 김지혜 기자가 제일 큰 영감을 줬어요. TV 속 여성뿐 아니라 주변 또래 여성들을 보면 없던 힘도 생기는 그런 게 있어요.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기자를 하다 보면 반면교사는 많고 롤모델은 잘 없어요. 이럴 때 서로 ‘티키타카’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옆자리 동료 기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수다 떨며 나온 아이디어를 같이 현실로 만들어 가는 거죠. ‘핀라이트’ 형식은 김지혜 기자가 쓴 설리씨 부고가 시초였던 셈이고, 사회부 사건팀 동료들이 혐오와 차별에 대한 기사를 꾸준히 써준 덕분에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김지혜 = 이유진 기자가 모든 추진을 해줬고 저는 가만히 따라가는 역할로 맞장구만 친 건데요(웃음).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남몰래 항상 감사드리는 분들이 있어요. 기사에서만 쓰는 표현으론 ‘누리꾼’이라고 하죠(웃음). 인터넷에서 활동하시는 익명의 여성분들요. 저는 이 분들에게 항상 영감을 빚지고 있습니다. 트위터, 커뮤니티, 유튜브에 익명으로 내놓으시는 날 것,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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