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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팀이 새로운 시선과 시도로 완성된 콘텐츠를 ‘플랫pick’으로 추천합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담은 영상과 서적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pick’은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김소이의 두 번째 연출작 <마이 에그즈>입니다.



“나중에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건강한 난자를 하루빨리 얼리는 게 좋겠네요.” (의사)

“저 아이 낳을 생각 없는데요.” (수진)

뭐지 이 상황…? 산부인과 의사는 황당한 표정이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으러온 이 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단편영화 <마이에그즈>는 비혼여성 수진의 ‘난자 냉동 퍼포먼스’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단편영화 <마이에그즈>는 비혼여성 수진의 ‘난자 냉동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반지하살롱 제공

단편영화 <마이에그즈>는 비혼여성 수진의 ‘난자 냉동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반지하살롱 제공

<마이 에그즈>는 배우 겸 감독 김소이의 두번째 연출작이다. 의사와의 대화도, 그의 황당한 표정도 김소이의 실제 경험에서 따왔다. 그는 이 영화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지난 4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난자 냉동’이라는 소재를 다룬 이유를 묻자 어머니 이야기부터 꺼냈다.

“20대 후반부터 한동안은 ‘선을 보라’고 하시더니, 3년 전쯤부터는 ‘난자를 얼려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한 달에 한 번씩 그 말을 듣다보니까 호기심이 생겨서 산부인과에 가봤어요.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 사이에 저 혼자 앉아 있는데 ‘영화 같은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 한 번은 이야기로 써먹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으러온 이 여성. 산부인과 의사는 황당한 표정이다. 반지하살롱 제공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으러온 이 여성. 산부인과 의사는 황당한 표정이다. 반지하살롱 제공

수진은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지만, 경제적으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자 냉동을 하라’는 엄마의 성화를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다.

“저처럼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 난자 냉동 시술을 받을 때의 감정은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을 했어요. 누군가에겐 절실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아예 필요 없는 선택일 수도 있잖아요. 양쪽 다 여성이 할 수 있는 동등한 선택일 뿐인데, 아이 낳으라고만 몰아가는 현실을 비틀어보고 싶었어요.”

자신과 같이 비혼인줄 알았던 ‘아마존 다니는 소연이’가 난자를 냉동했다는 소식은 수진의 마음을 흔든다. 반지하살롱 제공

자신과 같이 비혼인줄 알았던 ‘아마존 다니는 소연이’가 난자를 냉동했다는 소식은 수진의 마음을 흔든다. 반지하살롱 제공

영화는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의 양자택일을 거부한다. 그렇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현실 속 여성들의 선택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출산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 행위’라고 말하던 수진은 ‘난소 나이가 많아 임신이 힘들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불안해한다. 자신과 같은 비혼인줄 알았던 ‘아마존 다니는 소연이’가 난자를 냉동했다는 소식도 수진의 마음을 흔든다.

“지금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지만 5년 후, 10년 후엔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죠. 수진에게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인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어요. 여성들에게 많은 선택지를 열어두고 싶었어요. 난자와 대화를 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넣은 것도, 수진의 출산 여부를 ‘열린 결말’로 남겨둔 것도 그래서였어요.”

똑똑하고, 유능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최근의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수진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타박에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래도 ‘나는 내 이야기 하며 사는 게 좋다’며 울면서도 제 할 말을 하고 만다. 반지하살롱 제공

똑똑하고, 유능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최근의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수진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타박에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래도 ‘나는 내 이야기 하며 사는 게 좋다’며 울면서도 제 할 말을 하고 만다. 반지하살롱 제공

수진은 최근 유행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과도 결을 달리한다. 똑똑하고, 유능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수진은 “독립영화인지 독립운동인지 하며 돌아다닌다”는 엄마의 타박에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래도 “나는 내 이야기 하며 사는 게 좋다”며 울면서도 제 할 말을 하고 만다.

“이 영화는 수진의 성장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냥 다시금 자신을 인정하는 이야기죠. 수진은 엄마가 준 명품백보다 천쪼가리같은 에코백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자신을 온전히 인정받지는 못해요. 사회의 시선과 싸워나가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들에 흔들리며 좌절하기도 하죠. 수진처럼 저도 스스로를 인정하는 게 힘들고 오래 걸렸어요.”

1999년 1세대 걸그룹 ‘티티마’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김소이는 그 뒤로도 한동안 스스로를 미워하는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만은 잃지 않았다. 40대에 접어든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빈티지옷을 좋아하는 수진의 모습은 여러모로 김소이 본인과 겹친다. 하지만 김소이는 “절대 나의 경험담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한다.

상업영화나 드라마에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는 있지만, 김소이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장 뜨겁다고 말한다. 반지하살롱 제공

상업영화나 드라마에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는 있지만, 김소이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장 뜨겁다고 말한다. 반지하살롱 제공

“‘김소이가 난자 냉동했구나’라고 읽히지 않길 바라요.(웃음) 수진이란 캐릭터를 구상할 때도 최대한 창작자로서의 저를 배제하고 싶었어요. 만드는 사람이 겹쳐지면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요. 수진의 이야기는 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요.”

상업영화나 드라마에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는 있지만, 그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장 뜨겁다고 말한다. 몇년 전에는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여학생들 작품에도 출연했다. 학생들에게 먼저 프로필을 보냈고 정식으로 오디션도 봤다고 한다. 다른 여성 창작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나중에 함께 촬영했던 감독이 장문의 e메일을 보내왔어요. 결혼 후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영화 현장에서 잠깐 떠나있지만 다음에 장편영화 같이 찍자고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어쩌면 그게 현실일지 몰라요. 모두가 여성주의를 외치고 비혼을 결심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여성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다는 자체가 정말 용기있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마이에그즈>는 단편영화 발전을 위해 배우들에게 연출 기회를 주는 ‘반지하살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총 27분 분량으로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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