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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후보가 5·16장학회 ‘강탈’ 쟁점화하자 매각 추진”

정환보 기자

김지태씨 유족들, 진정서 공개… 매각 비밀회동 비판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고지에 나선 1971년 대선 와중에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를 은밀하게 처분키로 했다는 사실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 설립자인 김지태씨(1982년 작고)가 5·16장학회에 보낸 진정서를 보면 강탈당한 장학회를 되돌려 받으려는 집요한 애착을 알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장학회를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씨는 “사회의 공기인 언론 사업체를 상품처럼 팔아서는 안된다”며 “만약 경영이 곤란하다면 창업자의 책임감에서 본인이 인수하여 경영개선을 하겠다”면서 인수 의지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장학회 매각을 추진한 것은 대선 중에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5·16장학회 강탈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고 김지태씨가 1971년 작성한 진정서.

고 김지태씨가 1971년 작성한 진정서.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같은 해 4월20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5·16장학회의 해명성 광고에는 이 같은 다급한 상황이 담겨 있다. 장학회는 광고를 통해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본회에 대한 정치발언을 해명한다”면서 “본회의 소유형태는 민법상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누구의 사유물도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의 유족들은 15일 “당시 박 정권의 장학회 매각 시도는 강탈 논란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막대한 대선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씨 유족들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장학회 매각 시도가 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후보와 무관하다고 하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냐”며 “71년 매각 시도를 보면 본래부터 장학사업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 명백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학회를 임의로 처분하려던 시도는 1963년 대선 때도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2005년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사건’ 보고서에는 “김지태씨는 63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군사정부가 헌납 사건이 쟁점화될 것을 우려해 제의한 ‘5·16장학회’ 이사직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부산일보·MBC·부산MBC를 5·16장학회에서 분리 운영하되 자신이 주식의 51%를 보유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서울신문을 불하해 주도록 요구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김씨 유족인 김영철씨(60·5남)는 “당시에 60%니 51%니 하는 지분 얘기가 대선 과정에서 오가다 선거가 끝나니 그 말이 아예 사라졌다. 그게 박 대통령 스타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오고 있는 부산일보와 MBC 지분을 정수장학회가 매각한다느니 하는 얘기는 정치적 당근책일 뿐”이라면서 “표 얻으려고 던져놓고 보는 얘기는 이미 수십년 전에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가 했던 방식 그대로다”고 말했다.

김지태씨는 사망하기 전까지 장학회와 부산일보, MBC를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고 한다.

김영철씨는 “79년 10월27일 아침 일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울 반포동에 살았던 김영철씨는 아침 6시 TV에서 ‘박정희 대통령 유고’라는 소식을 보자마자 부랴부랴 서울 청운동의 부친 댁을 찾았다. 그는 “아침에 쫓아가보니 아버지는 이미 (원 소유주 증빙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계시더라.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강도가 죽었으니 이제 우리가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김지태씨에게 여러 특혜성 사업을 주겠다며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도 전했다.

김영철씨는 “강제로 빼앗은 남의 재산을 제3자에게 또다시 팔려는 시도가 41년 전이나 오늘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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