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플랫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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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flat)의 뜻은 다채롭습니다. 평평하거나, 딱 떨어지고 반듯하며, 균질한 사물을 꾸미는 데 붙이기도 하지만 반음 낮고, 단조로운 상태도 표현합니다. 플랫이 수식하는 단어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추석을 맞아 ‘플랫’의 창간기획 [언니들의 플랫한 생활] 시리즈를 다시 꺼내 봅니다.



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han.kr

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han.kr

언니들의 플랫한 생활. 1화



누구와 살 것인가.
같이 사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을까.

여섯 명의 여성이 유럽으로 떠나기로 한 건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파트의 같은 동 혹은 옆 동에 살며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인 서로의 존재를 응원해왔고, 앞으로도 각자의 삶을 지지해줄 사람들. 전주에서 ‘비혼들의 비행’(비비)이란 이름의 공동체로 따로 또 같이 18년을 살아온 이들이 새삼스럽게 함께 사는 방식을 고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독립이 중요한 때가 있었어요. 1인 가구로 18년이 흘렀고, 저는 50대로 접어들었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정체성보다 여성 노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짙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큰언니 김난이씨는 “비혼의 삶에 대해 20년간 고민”했고, 이제 “비혼 그 후엔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전주여성의전화에서 서른 전후에 만난 언니와 동생들은 ‘나답게 살고 싶다’는 교집합을 발견했다. 2003년 ‘비비’를 만들고 3년 뒤 자신들의 정체성을 ‘비혼 여성들의 공동체’라고 선언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선택지보다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결혼 대신 독립을 했고, 1인 가구로 홀로서기를 한 뒤에는 느슨하게 연대하며 서로의 비빌 언덕이 돼주었다. 같은 공공임대아파트로 하나둘 이사하면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곁을 지키는 현실의 이웃으로 살았다. 더 많은 비혼 여성들과 연대할 방법을 찾아 생활공동체인 ‘비비’는 10년 전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을 만들어 50여명의 여성들과 함께 있다. 모여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혹은 부모의 돌봄, 주거 독립을 공부한다. 서로 요가도 가르치고 배운다. 나다운 삶을 위한 페미니즘도 연구한다.

생활공동체 ‘비혼들의 비행’이 더 많은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만든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에서 지난해 말 총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모여 있다. 비비 제공

생활공동체 ‘비혼들의 비행’이 더 많은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만든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에서 지난해 말 총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모여 있다. 비비 제공

“인생의 기로에서 결정했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살고자 하는 대로 선택해왔죠.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함께 사는 문제를 늘 이야기해요. 젊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힘은 빨리 빠지고, 서로 도와야 하는 시간도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20대에 ‘비비’의 멤버로 언니들을 만나 이제 40대가 된 박선영씨는 5년 전 수술하고 치료를 받으며 회복의 과정을 겪고 있다.

“단단한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개인의 삶은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죠. 아프면서 그 시스템이 철저하게 깨지는 경험을 했어요.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하는 경험. 그러다보니 노년의 공간을 다른 사람보다 일찍 떠올렸고 언니, 동생들과 (노후를) 고민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시기가 맞춰졌어요.”

그래서 2019년 11월. 20년 가까운 시간을 공유한 이들은 또다시 같이 사는 법을 찾아 런던과 파리로 향했다. ‘비혼 그 후’를 그려보려고 향한 유럽의 목적지는 프랑스 ‘바바야가의 집’과 영국 ‘뉴 그라운드’. 노년을 맞은, 또는 곧 맞게 될 여성들이 사는 공동체 주택들로 독립적인 1인 가구들이 상호 의존하는 주거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누구와 몇 명이서 어떤 규칙을 지키며 사는지, 집을 지은 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국가와 지역사회는 어떻게 설득했는지 물어보려고 비행기를 탔다. 상상에만 그치지 않고 주택을 완성한 원동력이, 여성 노인들의 연대가 궁금했다.

노년을 함께 살기 위해 준비 중인 여섯 명의 비혼 여성들이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의 노인 여성 공동체 주택 ‘뉴 그라운드’ 거주자들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비비 제공

노년을 함께 살기 위해 준비 중인 여섯 명의 비혼 여성들이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의 노인 여성 공동체 주택 ‘뉴 그라운드’ 거주자들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비비 제공

2003년 프랑스에서는 폭염으로 노인 2만명이 사망했다. 혼자 살다 사각지대에 놓이게 돼 죽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사회적인 문제 제기가 시작됐다. 여성 운동가였던 테레즈 클레흐가 아이디어를 냈다.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닌 시민의 역할을 유지하는 노인으로 사는 것을 해결책으로, 공동 주거 공간을 제안했다. 특히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살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성들보다 훨씬 적은 연금으로 도시에서 살아간다. 파리의 ‘바바야가의 집’은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오래 살지만 수입은 적은 여성들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클레흐의 고민에서 나왔다.

클레흐는 오랜 기간 자신이 어머니를 돌봤고, 어머니 스스로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됐다는 것에 힘들어 하며 돌아가셨던 기억을 바탕으로 ‘바바야가의 집’을 구상했다고 한다. 한국도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6년 이상 길다. 70대 이상 여성의 1인 가구 비중은 27.6%(통계청, 2017년)나 된다.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버는 비율이 남성들보다 낮은 현재 노년층 여성들은 빈곤에 쉽게 노출된다. 클레흐가 인식하고 있었던 당시 프랑스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그가 공동 주거를 제안한 지 10년이 흐른 2013년 입주가 시작된 ‘바바야가의 집’은 35㎡(10~11평)짜리 주택 25채로 이뤄져 있다. 월세는 시세의 절반 수준인 1인당 200~400유로(약 24만~48만원). 정부와 지자체 예산 200만유로가 투입된 이 공동체 주택은 시민단체나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65세 이상 저소득층 여성만 입주 자격을 갖는 사회임대주택이다. 입주자들은 요양원이나 병원에 들어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춰 ‘쓸모 있고 행복한 노인이 되자’는 가치를 공유한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온전한 시민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한 공동주거다.

“그들은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권을 가진 개인으로 보고 있었어요. 노령의 삶은 아픈 모습을 상상하기 쉽죠. 하지만 노화라는 것은 힘이 약해질 뿐이지 자신의 생활은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는 상태인 것이죠.”(김난이) “은연중에 노년은 아직 나와 먼 얘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언니들,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요. ‘어떤 식으로 준비할 수 있을지 그려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며 (유럽에) 가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막내인 최유정씨가 이제 마흔둘이 된 ‘비비’는 노년을 준비 중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원하는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돌보고 싶다.


“원래부터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돌봄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된 것 같아요. 기득권이 아니었던 경험도 많아서 눈치를 보고, 살피는 능력도 있죠. 힘이 드는 일을 대신해준다고 돌봄이 아니에요. 살피는 것이죠. 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놔두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돌봄이죠.”(김난이)

프랑스 몽트뢰유의 ‘여성의 집’에 걸려있는 여성운동가 테레즈 클레흐의 사진. 이 곳은 파리의 여성 공동체 주거 ‘바바야가의 집’을 구상한 테레즈가 설립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폭력과 성매매에 노출된 여성들을 돕는다.비비 제공

프랑스 몽트뢰유의 ‘여성의 집’에 걸려있는 여성운동가 테레즈 클레흐의 사진. 이 곳은 파리의 여성 공동체 주거 ‘바바야가의 집’을 구상한 테레즈가 설립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폭력과 성매매에 노출된 여성들을 돕는다.비비 제공

“한국은 나이든 여성들이 혼자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나요?”

런던으로 건너간 ‘비비’의 여성들이 받은 질문이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비혼의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전제가 담긴 ‘미혼’ 대신 결혼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를 정당하게 설명하려고 선택한 단어인 ‘비혼’. 영국에서도 비슷한 뜻의 신조어, ‘셀프 파트너(Self Partnered)’라는 말이 생겨났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확고한 한국에서 그 상태로 나이가 든 여성들의 삶은 허용되는가. ‘비비’의 생활 터전인 전라북도는 이미 65세 이상 여성 노인 1인 가구 비중이 22%다. “허용됐다기보다 그냥 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질문을 던진 사람은 노년 여성을 위한 공동주택 커뮤니티 ‘나이 든 여성들의 코하우징(Older Women’s Co-Housing·OWCH)’을 설립한 마리아 브랜튼이었다. 그는 형평성이 떨어진 공공 주거 정책을 대신해 사회적 임대주거지가 필요한 여성 노인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실행 과정은 ‘바바야가의 집’과 차이가 있었다.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OWCH’의 가치를 공감한 하노버 주택협회가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투입해 집을 지었다. 완성된 주택들은 ‘OWCH’가 사들인 뒤 입주자들에게 팔았다. 25개의 독립형 아파트 중 17채는 방 1개부터 3개까지 평형에 따라 20만~40만파운드(약 3억~6억원). 이를 구입한 이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돼 함께 살고 있다. 임대 가구인 여덟 집은 1주일 집세가 140파운드(약 22만원)다.

브랜튼을 비롯한 6명의 여성이 공동주거 아이디어를 냈던 것이 1998년. 18년이 지난 2016년에야 ‘뉴 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주택이 완성됐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돌보고 지원한다’는 ‘OWCH’의 정책에 동의한 50세 이상 여성이 입주 자격을 갖는다.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 후 혼자 살거나, 비혼이거나, 혹은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사는 여성. 중요한 것은 모두가 여성이고 다른 여성들과 같이 살기로 했다는 점이다. ‘비비’가 비혼 그 후를 생각하며 또다시 같이 살기로 한 것처럼.

서른 전후 처음 만나 18년을 함께 해온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비비) 여성들은 이제 노년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도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지난해 11월 유럽으로 떠났다. 비비 제공

서른 전후 처음 만나 18년을 함께 해온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비비) 여성들은 이제 노년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도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지난해 11월 유럽으로 떠났다. 비비 제공

공유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각자 소모임의 주최자가 돼 다양한 활동을 주도한다. 25가구, 26명이 입주한 ‘뉴 그라운드’에는 동아리만 27개가 있다. 요양시설처럼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 혜택을 누리기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주거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충분히 갖는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저 남의 이야기만 듣고 졸다가 돌아갈 수 없는 자리다.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 여성들의 공동체가 된 ‘비비’는 50대부터 아흔 살의 여성이 함께 거주하는 ‘뉴 그라운드’에서 이상과 현실을 봤다고 했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해도 사생활에 간섭하면 안돼요. 그렇다고 소외감을 주어서도 안되죠. 방해하지도, 소외시키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 얼마나 어렵겠어요(웃음). N극과 S극의 가운데 지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박선영) ‘뉴 그라운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100가지가 넘는다. 주차장, 텃밭, 세탁실…. 공유하는 모든 공간의 룰을 토론으로 정하는 것이 공동체의 주거다. 독립적인 1인 가구로 사는 ‘비비’에는 정해진 공동체 규칙은 없다. 의견을 모아 결정할 일이 생기면 모두가 찬성하는 것만 진행한다.

영국 런던의 노인 여성 공동체 주택 ‘뉴 그라운드’의 우편함(위 사진)과 프랑스 몽트뢰유의 ‘여성의 집’에 마련된 공용 생리대. 비비 제공

영국 런던의 노인 여성 공동체 주택 ‘뉴 그라운드’의 우편함(위 사진)과 프랑스 몽트뢰유의 ‘여성의 집’에 마련된 공용 생리대. 비비 제공

“집단의 목표를 향해서 왔다기보다는 개인의 삶을 응원했고 과제가 생기면 해결했어요. 하지만 주거 공동체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각자 살림이 있는 여럿이 모이면 다른 규칙이 필요하겠죠.”(김난이)

파리와 런던에서 만난 여성들은 ‘비비’에 해답보다 고민을 더 많이 남겼다. 정부나 지자체 주도로 지어진 사회주택 ‘바바야가의 집’은 비용의 부담을 공공과 나눌 수 있지만 운영의 자율성이 낮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 여성들을 위한 주거지원 정책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청년들의 주거복지가 ‘5평 주택’의 형태가 됐듯이, 주택의 크기도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혼자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아파트에서 살아온 ‘비비’의 구성원들은 지금보다 삶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 자가로 거주하는 ‘뉴 그라운드’의 주거공동체 모델은 ‘비비’가 지향하고 있는 독립된 가구가 상호 의존하는 생활을 충분히 실현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금 부담이 너무 크다.

“공동체 주택에 입주하지 못해도 여성주의 가치로 주거지를 만드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번에 가서 실제로 그런 여성들을 봤고요. 독립적인 노년의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이라 가능했겠죠. 내가 아닌 다른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주거에 대해 상상해봤습니다.” 이미정씨는 앞으로 구상할 여성 주거 공동체에 자신은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집을 함께 만든 이들과 ‘친구로서 노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서른 전후 처음 만나 18년을 함께 해온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비비) 여성들은 이제 노년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도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지난해 11월 파리로 떠난 이들이 몽트뢰유 ‘여성의 집’의 로즐린 대표(왼쪽 세번째)와 노인 여성들의 주거 공동체 ‘바바야가의 집’에서 살고 있는 플로라(왼쪽 네번째)를 만났다. 비비 제공

서른 전후 처음 만나 18년을 함께 해온 전주의 ‘비혼들의 비행’(비비) 여성들은 이제 노년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도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지난해 11월 파리로 떠난 이들이 몽트뢰유 ‘여성의 집’의 로즐린 대표(왼쪽 세번째)와 노인 여성들의 주거 공동체 ‘바바야가의 집’에서 살고 있는 플로라(왼쪽 네번째)를 만났다. 비비 제공

“저도 그냥 1인 가구였다면 고립감과 두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웃에게 벽을 치고 소통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동네에 ‘비비’라고 하는 긴밀한 이웃이 있으니 오히려 주민들과 사사롭게 인사하고, 편하게 말도 걸 수 있죠. 보호막이나 돼주는 사람이 있으니 혼자 산다는 걸 밝혀도 두렵지 않은 여유가 생겼죠. 혼자였다면 저를 지키기 위한 고민도 많았을 거예요. 독립된 삶은 누리면서 가족처럼, 또 더 느슨한 형태로 같이 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들. 이 마음때문에 동네를 떠나거나,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며 살 수 있었어요.”

비혼을 선택했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 여성 주거공동체를 고민하며 준비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여자들끼리 살기로 한 것도 그냥 저의 삶의 문제였어요. 언니들이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답을 하며 따라가니 여기까지 왔고요. 우리 모임에 그런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노년에도 같이 살고 싶은 건 즐겁기 위해서잖아요. 그래서 여성 노인주거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고요.”(박선영)

독립을 선택했던 여성들이 나이 들어서 같이 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답은 결국 나답게 살기 위한 삶,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김보미 기자 bomi83@khan.kr

“노년의 정체성이 짙어질 때, 비혼 여성들은 또 같이 살기로 했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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