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리와인드,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다
n번방 리와인드,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다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추적해 세상에 처음 알렸다. ‘프로젝트 리셋’은 SNS에 불법촬영물 신고 활동을 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공론화에 앞장섰다. 텔레그램 성착취 주요 가해자들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들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방을 신고하고 또 다른 디지털성범죄를 추적한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연대하기도 한다. 지난 11일 불꽃의 활동가 2명과 리셋의 최서희씨(활동명) 등 3명을 만났다.



‘#갓갓의_오프남_집행유예’ ‘n번째_징역_2년6개월’….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들의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지탄하는 해시태그가 등장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가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고, 비슷한 범죄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을 받을까. ‘불꽃’과 ‘리셋’은 따로 활동해왔지만 같은 고민을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제대로 끝내기 위해 손을 잡았다. 한 시민의 제안을 계기로 불꽃과 리셋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정량화된 형태로 시민 의견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할 수 있도록 직접 질문을 작성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과 함께 지난 3일부터 설문조사를 시작해 16일 기준 약 1000명이 참여했다.

디지털성범죄를 밝혀온 ‘추적단 불꽃’과 ‘프로젝트 리셋’ 활동가들을 지난 11일 만났다. 디지털성범죄를 고발하는 데 위협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 석예다 PD

디지털성범죄를 밝혀온 ‘추적단 불꽃’과 ‘프로젝트 리셋’ 활동가들을 지난 11일 만났다. 디지털성범죄를 고발하는 데 위협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 석예다 PD

불꽃과 리셋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볼 수 있는 범죄가 아닌, 사회가 수십년 역사 속에 외면해 온 끔찍한 병폐”라며 “잠깐 관심받는 동안만 수사와 처벌에 나서고, n번방과 박사방 가해자를 단 몇 명으로 축소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면 성착취는 반복될 뿐만 아니라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n번방은 결코 단일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들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n번방은 사회가 방치해온 결과물에 가까우며, 가해자 몇 명 재판에 넘겼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로 클럽 ‘버닝썬’ 사건을 들었다. 불꽃은 “2019년 버닝썬 사건 때도 오프라인에서 일어난 성착취 범죄를 온라인에서 유포하고, 찾고, 소비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들이 다크웹, 텔레그램으로 유입됐음에도 제재나 진단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사건은 약물강간·성폭력·불법촬영 유포 등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온상이었으나, 성범죄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일어난 개인적인 성문제로 여기는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과제들이 남았다고도 했다. 불꽃과 리셋은 성착취 범죄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그루밍 방지법, 아동유인 방지법, 함정수사 허용, 스토킹 방지법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루밍은 n번방을 비롯한 수많은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성착취·학대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드러났다. 스토킹 역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중범죄의 증상으로 나타나지만, 국회와 사법기관 등에서 여성의 두려움을 외면한 채 가볍게만 여긴다고 설명했다.


📌n번방 리와인드, 디지털 성범죄를 되감다
📌[인터뷰 영상]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매번 성범죄가 발생한 이후 대응하기 급급했다”며 “또 다른 n번방을 겪고 싶은 게 아니라면 사전에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함정수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가해자의 처벌에 집중하는 동안 피해자 지원체계는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꽃은 “피해자 입장에서 봤을 때 가해자 형량은 높아졌지만 지원은 중구난방”이라며 “피해자가 매번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몰수한 범죄수익금을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비율을 높이고, 정부가 체계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셋도 “피해 촬영물을 삭제하는 일도 피해자가 일일이 신고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사회는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피해자의 지원 요구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를 뿌리 뽑지 않는 이상 디지털성범죄는 우리 곁에서 항상 일어날 겁니다.” 불꽃과 리셋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두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감시할 예정이다. 리셋은 성범죄 피해자 및 연대자를 위한 ‘챗봇’을 개발하는 등 디지털성범죄 관련 정보 전달 활동에도 주력한다.

불꽃과 리셋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설문조사는 7월 대법원 양형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전달할 계획이다.


김희진 기자 hj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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