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듯말듯 '간보는' 윤석열, 대선 앞둔 유권자들 생각은

구교형·오경민·김은성·박은하·이호준·허진무·백경열·윤희일·이삭 기자
할듯말듯 '간보는' 윤석열, 대선 앞둔 유권자들 생각은

잠행 중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대선 출마나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말을 아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를 두고 유권자들의 생각은 회의론과 불가피론으로 엇갈렸다. 회의론에 선 시민들은 윤 전 총장이 정치인으로서 자기 철학을 보여주지 않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시민들의 검증을 회피하려는 낡은 문법에 기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가피론자들은 윤 전 총장 지지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광범위해 특정 정당에 치우쳐 있지 않고, 이렇다할 기반 없이 기성정당에 섣불리 들어갔다가 상처만 날 수 있어 신중한 것이라고 두둔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대구에 사는 남성 정모씨(43)는 15일 “결단력도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인데 유불리를 따지느라 빨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현 정부와 날을 세우면서 대선 후보로 떠오를 때만 해도 기대감을 갖고 응원했지만 점점 그 마음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20대 여성 A씨는 “정치인이라면 정치인다운 언행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가 무슨 신념이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희생을 감수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중앙부처 공무원인 남성 B씨도 “진심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생각이 있다면 본인 철학과 노선을 진솔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윤 전 총장의 최근 행보가 ‘간보기’에 가깝다고 했다.

대선을 9개월도 채 남겨놓지 상황에서 검증을 회피하려는 이러한 행보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전에 사는 남성 백운교씨(59)는 “스스로 ‘나는 70% 정도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 색깔과 행보를 분명히 하고 대통령으로서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한다면 계획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에 사는 남성 이모씨(39)는 “일궈놓은 업적도 없는데다 가족 문제까지 이슈가 되면 대권 주자가 되기 힘들 것이다. 안철수(국민의당 대표)와 함께하는 것 등 제3세력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지난 대선에서 반짝 관심을 받았던 반기문(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몸담았던 법조계에서는 그의 신중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변호사인 남성 C씨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수사로) 박살내고 보수를 궤멸시켰는데 그 당에 바로 들어간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게 뻔하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인 남성 D씨도 “적폐 수사를 하며 보수 우파를 적으로 만들었고, 조국 수사 이후로는 진보 좌파도 적으로 만들었다. 본인으로서는 정치적 입지를 떠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현직 검찰총장으로 일하다가 ‘타의’에 의해 대선 후보로 호출됐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보다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중앙부처 남성 주무관 E씨는 “윤 전 총장은 정치에 비자발적으로 나서게 된 케이스여서 간보기가 필요하다”며 “박근혜·문재인 두 정부에서 탄압받아 당적이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주목받은 인물로 썩은 정치판에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 양 진영의 구악들 놀음에 순식간에 공중분해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직 부장검사인 남성 F씨는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대뜸 선거에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게 오히려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본다. 간보기라고 흠집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행보가 대권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는 ‘공무원 출신 정치인’의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해석도 있었다. 변호사인 남성 G씨는 “현재 여론조사 스코어상 윤 전 총장이 누구와 붙어도 이기는 것으로 나오는데 뭐하러 섣불리 움직이겠느냐. 원래 1위는 마이크 앞에 서면 지지율 깎이는 일만 남는다. 보신주의를 지향하는 공무원 출신 정치인의 전형적 모습이라 본다”고 말했다. 직장인 남성 한모씨(31)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안달나게 만들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만들고, 간보기를 그렇게 해도 지지율이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영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윤 전 총장에게 과도하게 많은 관심을 갖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검증 보도가 빈약한 상황이 윤 전 총장의 ‘간보기’ 기간을 늘려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인 여성 고모씨(30)는 “윤 전 총장이 직접 대선판에 뛰어들지 않았는데도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해주는 언론을 등에 업고 ‘이미지 메이킹’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윤 전 총장이 대선을 앞두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혹은 예나 지금이나 공정의 아이콘이라는 식의 보도만 나올 뿐 그와 가족들이 권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도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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