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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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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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퇴근 후, 만나요] 동물의 숲 과몰입 중, ‘무임승차’ 이웃들과 살아가는 기쁨



‘살까 말까, 살까 말까?’ 1년을 고민했다. 필요한 물건이면 고민하느니 사는 게 낫다는 여유있는 소비기준을 가졌음에도 구매를 할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 쓸모도 없는데 가지고 싶어. 하지만 단지 가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사기엔 너무 비싸다! 게임 하나 플레이하는데 30만 원!

동물의 숲 과몰입 중, '무임승차' 이웃들과 살아가는 기쁨[플랫]

닌텐도 스위치 품귀현상까지 일으켰던 ‘동물의 숲 대란’을 견뎌내고 올해 봄, 스위치와 동물의 숲을 샀다. 당근마켓이라는 합의점을 찾았다는 고백은 반만 진실이다. 솔직히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살까 말까 할 땐 사자’병이 도졌다. 결과적으로 10년 만에 다시 동물의 숲 유저가 되어 퇴근 후 피곤해진 몸을 추스르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동숲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미칠 듯 재밌지는 않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된다. 귀여운 동물들의 다정함이 그저 좋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된 이들의 분기적 다정함은 정말이지… 최고다. 무엇보다도 이 무해한 세상 속에는 불편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없다.

이미 정보 과잉인 시대,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곳에서 어영부영 일한 지 8년째. 늘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논란의 귀퉁이의 근처에 서 있다. 고백하자면 뉴스를 제목으로 볼 때가 더 많지만 심약한 나에겐 이마저도 피곤이다. 해결되어야 할 일들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는 새롭게 생기고, 해답은 대체로 느릴 때가 많은 날들, 물론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이런 긍정적인 사고마저도 벅차게 피곤할 때가 있다. 이곳은 현실이니까. 그렇게 피곤할 때, 잘 만들어진 장난감 같은 세계를 구경하고 싶을 때 동숲을 켠다.

오랜만에 접속했더니 반겨주는 동물 친구들

오랜만에 접속했더니 반겨주는 동물 친구들

내 마음의 도피처인 금귤섬에 사는 동물 친구들은 모두 친절하다. 나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정하다. 동물들은 자신들끼리 궁합이 맞아 유독 친한 친구들도 있지만 서로 말다툼을 할 때도 있다. 가끔 친구에게 잘못을 저지른 동물이 직접 선물을 주지 못하고 내게 부탁을 할 때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이제는 게임을 꺼야 하는 시간에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부탁은 잘만 거절하면서 프로그래밍이 된 객체의 부탁은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동물들은 고유의 특성에 따라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하고,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무 밑에 앉아있거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는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며 벤치에 앉아있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다니며 때론 고민도 하고 낚시도 하고 곤충도 잡는다. 한마디로 노상 할 일 없이 섬에 눌러앉아 있다.

모든 동물친구들을 좋아하지만 먹보 속성을 가진 팬타는 애착친구다. 할일 없이 벤치에 앉아 볕을 쬐는 팬타와 나.

모든 동물친구들을 좋아하지만 먹보 속성을 가진 팬타는 애착친구다. 할일 없이 벤치에 앉아 볕을 쬐는 팬타와 나.

사실 10마리나 되는 동물들은 섬 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을 회관을 세울 돈도 낚시하고 땅 파서 내가 벌었고, 박물관도 내 돈 주고 내가 세웠다. 이 섬에선 박물관에 전시물을 기부하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다. 동물들은 10만 벨(동숲의 화폐 단위) 이상이 들어가는 마을의 공공사업에 고작 10벨을 기부하는 문제적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조별 과제로 치면 11명 중 10명이 무임승차 중인 망한 조지만, 무임승차 중인 이들은 사랑스럽다. 이 세계에선 현실과 같은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10마리 모두가 놀기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섬에서 돈을 모으기 위해 과일을 따고, 땅을 파고, 물고기와 곤충을 잡아 기어코 그득그득 박물관을 채우는 내가 이상한 종일지도 모른다.

이 평화로운 세계에서 홀로 노동을 하고 돈을 모으는 이종(異種)으로써 여전히 퇴근 후에 동숲을 하고 있다. 요즘은 접속하지 않는 동숲 친구들을 떠올리며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 섬의 동물들이 보낸 선물이 내 우편함에 쌓여있듯이, 누군가의 우편함에 내가 보낸 디지털적 온기가 남아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이 디지털 세계의 다정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동물들은 귀엽다.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 귀여우면 무죄!


금귤섬의 알로하

뉴콘텐츠팀 기자. 동물친구들이 너무 귀여워서 비상인 E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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