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의 finterview
이진주의 finterview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외모에 대한 편견은 비단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표면에 자국이 있는 파프리카나 곧게 자라지 못한 가지는 대형마트로 가지 못해 못난이 농산물로 분류된다. 못난이 농산물은 마땅한 판매처를 찾기 힘들어 헐값에 ‘즙’ 재료가 되거나 폐기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못생겼다는 이유 만으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구해 농가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는 친환경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못난이 농산물 구독 서비스를 내놓은 어글리어스 대표 최현주씨(32)를 지난 21일 전화로 만났다.

어글리어스는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혹은 격주로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을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친환경 농산물 80여종 중 수확 시기에 따라 랜덤으로 7~9종을 고객에게 배달한다. 최씨는 “친환경 농산물을 기르는 농가에서 모양이나 중량, 크기가 시장 기준에 미달돼 판로가 막힌 농산물을 판매한다”며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돼도 과잉생산 등으로 판로가 막힌 농산물도 취급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는 “상처가 있는 가지. 모양이 특이한 당근 등은 생김새만 낯설 뿐 맛이나 선도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가령 뿌리 채소인 당근은 자라면서 돌부리에 걸려 다리가 두 개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글리어스 제공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는 “상처가 있는 가지. 모양이 특이한 당근 등은 생김새만 낯설 뿐 맛이나 선도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가령 뿌리 채소인 당근은 자라면서 돌부리에 걸려 다리가 두 개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글리어스 제공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전시 기획일을 하다가 2016년 예술가가 만든 제품 등을 판매하는 플랫폼 ‘13PLACE’을 창업했다. 정부로부터 소셜벤처 인증까지 받았지만 운영이 여의치 않아 2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다. 이후 IT 기획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해외에서 ‘푸드 리퍼브’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최씨는 “푸드 리퍼브는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외관을 지녔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구매해 활용하는 움직임”이라며 “기사에 실린 다리가 2개 달린 당근 사진을 보며 엄마와 오일장에서 항상 구부러진 가지를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학 진학 전까지 경상남도 하동에서 나고 자랐다. 학교 가는 길에는 늘 논밭이 있었고 같은반 친구들 중 80%는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다. 그는 “어릴 때는 다양한 모양의 농산물을 볼 수 있었는데 마트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농산물만 있다는 사실에 문제를 자각하게 됐다”고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서 하루 발생한 생활 폐기물 5만8000t 가운데 약 28%인 1만6000t이 음식물 쓰레기다. 이 중 65%가 농산물의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크기나 상처 등으로 판매되지 못하거나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버려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씨는 “농산물이 얼마나 예쁘고 완벽한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시장 구조가 불필요한 낭비를 만든다”며 “농부의 소득을 저하시키고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이러한 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사업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들을 소량씩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기구독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못난이 농산물이 된 사연, 생산지, 보관방법과 조리법 등을 적은 종이를 함께 보낸다. 어글리어스 제공

최씨는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들을 소량씩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기구독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못난이 농산물이 된 사연, 생산지, 보관방법과 조리법 등을 적은 종이를 함께 보낸다. 어글리어스 제공

최씨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약 3000여 곳의 친환경 농가에 전화를 돌리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농가를 직접 찾아갔다. 못난이 농산물만 판매하겠다는 그를 경계하는 농민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농부가 산다’며 고맙게 여기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최씨는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들을 소량씩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기구독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못난이 농산물이 된 사연, 생산지, 보관방법과 조리법 등을 적은 종이를 함께 보낸다.

어글리어스는 사업 시작 1년 만인 현재 회원 가입자가 1만명에 달한다. 중간 유통 과정 없이 농산물을 배송하다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을 탔다. 지난 16일부터는 생김새는 조금 투박하지만 잘 익은 과일로 구성한 과일박스도 출시했다.

최씨는 “자라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나 색상이 조금씩 다를 뿐 못난이 농산물도 맛이나 선도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며 “앞으로는 연령대나 취향 별로 좀 더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일반 식당 등으로 판로를 넓히고 싶다”고 밝혔다.


이진주 기자 jinju@khan.kr

TOP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