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의 f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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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거대 공룡들의 각축전으로 비유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작지만 제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약진하는 OTT가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여성영화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다. 기존의 영화 유통시장에서 소외됐던 여성영화를 발굴해 적극적으로 알려온 퍼플레이는 지난해 3월 OTT 업계 최초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일지 퍼플레이 대표(35)는 “여성영화를 호명하지 않으면 더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은 호명해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말하며 여성영화 전문 플랫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퍼플레이는 2019년 12월 오픈해 지금까지 약 300여편의 여성영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중 90%는 퍼플레이 독점 상영이다. 조 대표는 “저희는 여성 감독의 연출작, 여성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 여성의 이슈를 다루거나 젠더 이분법을 뛰어넘는 영화를 여성영화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F등급(여성이 작품에 얼마나 주체적으로 개입했는지를 가리키는 지표), 벡델 테스트(영화의 성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를 통과한 작품 등 성평등과 다양성 지수가 높은 영화를 선별해 소개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퍼플레이는 성평등한 가치를 알리기 위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양성평등문화지원상을 수상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등 성평등 가치를 담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OTT) ‘퍼플레이’ 조일지 대표. 김영민 기자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등 성평등 가치를 담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OTT) ‘퍼플레이’ 조일지 대표. 김영민 기자

퍼플레이는 여성영화를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조 대표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됐다. 여성영화제에서 재미있게 본 작품을 주변에 추천해도 영화를 볼 곳이 없었던 경험이 쌓이면서 여성영화 전문 플랫폼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그는 한국퀴어영화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2016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던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퍼플레이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외주용역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 내용을 알아야해서 6개월간 앱개발 과정을 들으며 공부했어요. 생계가 가능한 정도의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는 다들 투잡을 뛰며 고생했죠.”

퍼플레이는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콘텐츠 스트리밍 수익의 70%를 창작자에게 돌려주고 있다. 팍팍한 여성 영화인들의 삶을 알기에 수익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고, 생계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아직까지는 (액수가)많지 않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그는 상업영화에 비해 인지도나 대중성이 떨어지는 여성영화를 서비스하며 홍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했다. “저희도 유명하지 않은데 영화도 인지도나 대중성에서 부족한 점들이 있다보니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조 대표는 낯선 장르의 여성영화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감독과 배우를 알리기 위해 온라인 매거진 ‘퍼줌’과 정기 뉴스레터 ‘퍼플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퍼플레이 웹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극장은 여성영화는 물론 성평등과 다양성을 다루는 영화를 선보인다. 지금까지 한국퀴어영화제, 카라동물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등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열리지 못한 영화제를 온라인에서 함께 개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웹진 <결>과 함께 박수남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묵>의 특별 무료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최근에는 이주영 배우가 출연한 <어떤 알고리즘>을 독점으로 서비스하고 있다”며 “임순례 감독이나 김보라 감독 등 성공한 여성 감독들의 초기 작품도 퍼플레이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영 3년차인 퍼플레이는 10대부터 40대까지 약 3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여성은 55%, 남성은 45%를 차지한다. 조 대표는 “여성영화는 여자만 본다는 편견을 날려버릴만큼 다양한 분들이 찾는다”며 “여성영화라고 하면 막연히 무겁고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편하게 보실 수 있는 영화들도 많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사회적 기업이 되는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사회적 기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코스닥에 상장할 정도로 성장해 더 큰 영향력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며 “더 많은 분들이 성평등 콘텐츠를 즐길 때까지 관련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메타버스를 활용해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페스티벌 전문 OTT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가상의 공간에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영화제를 둘러보고 공동 책장이나 여성기업 제품 부스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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