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천재지변이라 속수무책?…“도시 치수 재설계해야”

김보미·김원진·강은 기자

폭우 잦을 가능성…과거 경험에 기대선 위험

<b>뚜껑 사라진 강남지역 배수구 ‘소용돌이’</b> 서울에 내린 폭우로 다수의 차량이 침수된 9일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뚜껑이 없어진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연합뉴스

뚜껑 사라진 강남지역 배수구 ‘소용돌이’ 서울에 내린 폭우로 다수의 차량이 침수된 9일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뚜껑이 없어진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연합뉴스

침수 피해 심했던 서울 자치구들 “방재 능력 넘는 비 와”
전문가들 “재해 복구보다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책 필요”

이틀간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 도심 곳곳이 침수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면서 도시의 치수·방재 대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0년 혹은 20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집중호우는 ‘예기치 못한’ 강우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일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빈도 예측’보다 재해 예방에 방점을 둔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서울청사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 결과를 보면 지난 8일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일강수량은 453㎜에 달했다. 최고 시간당 강수량은 136.5㎜에 이르는 등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됐다.

서울시와 자치구 등은 9일 이번 집중호우에 대해 “대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전날 침수된 강남역 일대에 대해 “시간당 95㎜(30년 빈도)의 강수량에 대응하는 방재시설을 확보 중이었다”며 “시간당 116㎜가 내려 감당하기 어려운, 150년 빈도의 천재지변 성격”이라고 밝혔다.

침수구역이 많았던 서초구 관계자도 “서울은 폭우까지 견디도록 방재 성능을 높이고 있으나 이를 한참 뛰어넘어서 비가 왔다”며 “대응 기준을 다시 만들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9월 광화문 침수와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뒤 서울시는 시간당 80~90㎜ 수준의 강수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심 치수 기준을 높여왔다. 10여년 전 시간당 75㎜(10년 빈도) 강수량에 대비했던 하수 관거, 펌프 시설 등의 배수와 통수 용량을 높이고 관악구 서울대 인근에 빗물저류조도 새로 만들었다.

양천구 신월동에는 신월빗물저류시설도 설치해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후 강서구 화곡동과 신월동 거주지 침수 피해를 줄이는 효과를 봤다”며 “저류시설은 유입부를 확보하고 지역민 보상 등의 문제가 있어 신설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문제는 기후위기로 이미 10여년 만에 대비해야 할 목표치가 크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장마나 태풍과 같은 계절적 요인에 기인하지 않은 집중호우도 잦아지고 있다. 과거 녹지를 확보해 물이 흡수되지 못하는 불투수층을 없애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최근 강수는 이런 수준으로 대응할 수 없는 ‘재해’로 악화됐다. 김이형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강남 침수는 주차장, 도로로 땅이 덮여 배수가 안 되는, 불투수 면적이 넓은 것이 원인”이라며 “(강남과 같은) 저지대는 대심도 터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재가 복구보다 예방을 위한 선제적 종합 대책이 돼야 할 시점이라고 봤다. 재난을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위기 대응에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8일 침수된 동작역은 지하에 차수벽을 만들고 현충원 쪽 물길을 돌리고 하면 치수할 수 있었다”며 “물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과 설계가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불투수 포장이 많아질수록 빗물은 하수구로 몰려 부담은 커진다. 서울 도심에 대심도 하수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2010년과 2011년 폭우 때도 있었으나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비에 대비해 설치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조원철 교수는 “대심도 배수터널을 신월뿐 아니라 강남사거리, 대치동 등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의 경우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이 지난 6월 완공돼 시간당 95㎜의 강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확보됐지만 이번 폭우는 막아내지 못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