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억해주세요”···이태원 참사 49일 추모제 모인 시민들 “기억하겠습니다”

박하얀 기자    윤기은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사 49일을 맞은 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열린 시민추모제에서 참사 당시 첫 112 신고 시간인 오후 6시 34분에 맞춰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사 49일을 맞은 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열린 시민추모제에서 참사 당시 첫 112 신고 시간인 오후 6시 34분에 맞춰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누군가의 딸, 아들, 어머니, 형제, 배우자였던 그들이 48일 전 세상을 떠난 바로 그곳에서 그들의 이름 석 자가 들려왔다. 뒤이어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49일째인 16일 저녁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모인 시민들은 희생자들의 이름 앞에 일일이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뜨거운 목소리로 정부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6시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도로에서 시민추모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희생자의 친인척 등 유가족 300명가량을 포함해 연인원 8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이날 시민추모제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인천·부산·대구 등 전국 13개 지역에서 열렸다. 미국 서부·동부, 유럽 등 해외에서도 온라인 추모회가 개최된다. 지난 14일 녹사평역 3번 출구 인근 이태원광장에 차려진 ‘합동 분향소’에도 하루종일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5시쯤 합동 분향소에서 참배와 헌화를 하고, 오후 5시45분쯤 추모제 무대가 설치된 이태원역 방향으로 행진했다. 오후 6시부터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이 각각의 종교의식을 거행하며 추모제가 시작됐다. 참사 당일 최초로 ‘압사’ 위험 신고가 112에 접수된 시각인 오후 6시34분에는 시민들 모두 불빛을 끄고 묵념했다. 당시 신고 음성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참석자들은 이어 “대통령은 사과하라” “진실을 규명하라” “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유가족들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 등이 담긴 추모 영상도 최초로 상영됐다. 영상에는 가족들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시민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49일 째인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49일 째인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오스트리아 국적의 한국계 희생자 고 김인홍씨의 어머니 A씨는 영상 편지에서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어를 더 잘해서 자신있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엄마의 권유에 어학당에 갔습니다. 이 엄마의 잘못인가요. 이태원을 친구들이랑 간 게 아들 잘못인가요. 묻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어떻게 대한민국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까”라며 “아직도 내 아들이 어디서 죽었는지를 모른다. 정부가 말한 오후 10시15분 압사 추정 시간에 죽은 것밖에 모른다. 화가 나 미치겠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에 계신 유가족 여러분 나와달라”며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고 조한나씨의 어머니 이애란씨는 “우리 딸이 잊혀질까봐 엄마가 용기를 냈다”고 입을 뗐다. 이씨는 “네가 에베레스트 산에 간다고 했으면 말렸겠지만, 주말에 이웃 동네에서 친구를 만나 재밌게 놀다오겠다고 한 것이지 않느냐”며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 김지현씨의 어머니 김채선씨는 “바쁘게 살다가 잠시나마 일상을 멈추고 놀러 나간 너인데, 누가 감히 159명에게 ‘놀러갔다가 사고난 것’이라 비난하며 잔인하게 2차 가해할 수 있을까”라며 “도를 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말, ‘정쟁으로 몰아가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가 치밀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참사 당일 경찰에 최초로 위험 상황을 신고한 이태원 주민 B씨는 대독된 글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국가를 의심없이 믿었지만, 참사 당일 국가의 안전 경비는 없었다”며 “지난 49일 동안 이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는 매일 화가 끓어오를 때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를 주문처럼 되뇌었다”고 했다.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우리가 애타게 유가족들을 찾아 헤맬 때도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고 지금도 연락처를 주고 있지 않다.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는 49일이 되어가는데도 뭐 하나 또렷한 게 없는 것이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악성 댓글의 가해보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비상식적인 발언들이 우리 유가족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다”고 했다.

김종기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유가족이 나서기 전에 당연히 국가가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고 정권 유지에 급급한 모습이 세월호 참사 때나 이태원 참사 때나 어찌 그리 똑같은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게 나라인가”라고 지적했다.

188개 단체가 참여한 시민대책회의 대표자들은 이날 공동호소문을 발표하고 국가 책임 인정과 대통령의 공식 사과, 피해자 참여가 보장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공식 요구했다. 이태원 참사 기억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공간,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 대책, 2차 가해 방지 대책 등을 마련할 것도 함께 촉구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추모제 이후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미신고 행진이다. 행진을 중단하라. 채증하겠다”는 내용의 경고 방송을 내보내며 대통령실에서 6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막아섰다. 한동안 대치 상황이 이어졌으나 유가족 대표들이 6대 요구사항이 담긴 서한을 대통령실에 전달하면서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에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이승을 떠나는 참사 희생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 위령제(49재)가 열렸다. 위령제에는 유가족 15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는 30일 오후 6시 이태원에서 2차 시민추모제를 연다. 2차 추모제에서는 유가족들의 6대 요구사항을 재차 밝히고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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