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 대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회장이자 JP모건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br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홈페이지 캡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회장이자 JP모건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홈페이지 캡처

얼마 전, 창업해 회사를 꾸린 지인이 주주 간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회사에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죠”라는 흔해 빠진 내 조언에 “회사에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할 때 회사란 뭘까요?”라고 그는 되물었다. 기관의 성격이 서로 다른 주주들 모두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같은 말 아래 제각각의 이해관계를 펼쳐놓는데, 모든 말이 나름의 일리가 있어 보이니 하는 말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주섬주섬 에둘러 내놓은 내 대답은 이랬다. “20년이나 30년쯤 주식을 팔 수 없는 주주가 내릴 법한 결정이 회사를 위해 좋은 결정일 거예요.”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주식회사의 존재 이유

금융업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던 시절, 재무제표는 세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정연한 중립적 질서처럼 보였다. 기업의 모든 활동은 재무제표의 어떤 항목을 올리고 내리느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듯했다. 손익계산서의 맨 아랫줄인 순이익을 늘리는 활동은 좋은 것, 줄이는 활동은 나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매출을 첫줄로 시작하여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인 당기순이익으로 끝맺는 손익계산서에 어떤 동기나 사상이 숨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재무제표의 질서가 관장하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회사의 궁극적 의사결정권을 주주에게 주는 이유는 주주가 손익계산서의 맨 밑줄의 것만을 가져갈 수 있는 존재이며, 모든 비용을 제한, 즉 책임을 다한 후에 주주 것이 남는다는 철학이자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에서 주주는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기도 하다. 더구나 상장기업의 주주라면, 직원이나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 거래관계의 파트너보다 손쉽게 기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단기적 거래의 대상이 되는 상장기업의 주주란 얼굴 있는 실체의 사람이 아니라 ‘단기적 이익 최적화’라는 이념이 인격화된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그 가상의 존재에 복무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순전한 재무적 성과조차 장기적으로 담보하기 어렵다. 긴 기간의 재무적 성과는 비즈니스가 기회와 리스크를 다루는 본질적 경쟁력에서 오며, 이는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 더 나아가 지구환경 자체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직원은, 사업의 파트너들은, 고객은, 그리고 지역사회와 지구환경은 주주만큼 쉽게 떠날 수 없으므로 재무제표의 주기를 초월해 책임을 진다.

8월19일 미국 유수의 기업 CEO들이 참여하는 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새로이 발표했다. 라운드테이블은 성명서에서 “기업의 목적에 목적을 새롭게 정의한다”고 선언하며 “단지 주주들을 위한 눈앞의 이윤 창출만 추구하지 않고 직원과 고객,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IT 공룡의 CEO, 보잉의 데니스 뮐렌버그, 코카콜라의 제임스 퀸시,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바라와 같은 전통적 산업 리더의 CEO,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시티그룹의 마이클 콜바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과 같은 거대 금융그룹 CEO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기업 CEO 181명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45년이 넘은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의 회합으로, 건강한 공공정책을 통한 경제 번성을 목표로 한다고 천명하는 로비그룹이자 이익집단이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멤버들이 이끄는 기업들을 모두 합하면, 총 1500만명을 고용하고 합계 7조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단체의 무게감에 걸맞게 미국의 모든 주요 매체가 이 성명서에 주목했고, 국내에도 여러 매체가 관련 기사를 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뒤집는 듯 보이는 성명서가 미국에서, 그것도 거의 모든 주요 기업 CEO들이 몸담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냉소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소식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명서는 모든 기업이 근본적으로 헌신해야 할 이해관계자를 거명한다. 첫째로 고객, 둘째로 종업원, 셋째는 공급업체, 넷째는 지역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주를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주주를 언급하면서 함께 짝을 이루는 단어가 ‘장기적’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명서가 언급하는 마지막 기업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기업이 투자하고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게 하는 자본을 제공하는 주주들을 위한 ‘장기적’ 가치를 창출한다.” 주주의 이익에 헌신한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얼굴의 주주인가는 그 헌신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다. 충분히 긴 기간 동안 기업의 운명과 함께하는 주주라면, 그 주주의 이익은 고객과 종업원, 공급업체, 지역사회의 가치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석 달짜리 주주와 20년짜리 주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명서의 첫 문장이 자유시장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인은 모든 사람이 성실한 노동과 창의성을 통해 성공하고, 의미와 존엄을 누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경제를 누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자유시장 시스템이 좋은 일자리, 강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혁신, 건강한 환경과 모두를 위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지만,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주요 대기업 CEO들로 이뤄진 이익단체다. 이들이 천명하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새로이 모든 이해관계자와 ‘장기적’ 주주 가치를 향한다면 자유시장 시스템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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