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스팩이 보이나요?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몇 해 전 나는 혼자 로마 여행 중 바티칸 박물관 가이드투어에 참여했다. 여러 조각상 앞에서 설명을 이어가던 가이드는 똑같아 보이는 수많은 조각상들 중 신상(神像)과 인간상(人間像)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자, 신이 난 가이드는 이마와 콧등이 그대로 연결되어 있으면 신상인데, 인간 조각상은 이마와 콧등 사이 움푹 파인 홈이 있노라고 알려줬다. 신상을 가만히 보니, 영화에 나오는 아바타처럼 이마에서 콧등이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유와 성찰]당신의 식스팩이 보이나요?

조각상을 살피던 내 옆의 젊은 남녀가 작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신과 인간 모두 식스팩이 있네. 근데, 자기 배는 왜 그래?” 민망해진 남성은 불룩한 자신의 배를 원망하듯 손으로 두들겼다. 불쑥 나는 여성에게 물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두 남녀는 째려보듯 나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왜 인간도 신처럼 팔등신에다 모두 식스팩이 있을까요?” 커플은 내 답변을 듣기도 전에 이동하겠다는 가이드의 말을 따라 무리 사이로 사라졌다. 순간 무안해진 나는 그새를 못 참고 삐져나온 직업 근성을 후딱 챙겨 무리의 맨 끝에 숨었다.

실제로 로마인들이 모두 식스팩을 갖고 살았을까? 당시 조각가들은 인간을 조각할 때 눈에 보이는 대로만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마다 숨겨져 있는 본질적 자아, 소위 ‘이데아’를 상상하며 조각했던 것이다. 당연히 몸매는 모두 팔등신 근육질에다가 식스팩은 기본이다. 조각가들의 이데아 이해는 바른 것일까? 그렇다면 평생 식스팩 꿈조차 꿀 수 없는 ‘배-둘레-햄’ 아재들은 도저히 이데아에 도달하지 못하는 걸까?

플라톤이 비유를 통해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동굴 밖에 진짜 이데아가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는 꼭 그것이 신의 모습처럼 완벽에 가까운 인간상을 의미하진 않았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 동굴 밖 이데아는 죽음 너머 세상에 있지 않다. 이는 내가 딴 사람처럼 살지 않고 나 자신답게 살아낼 때 언제나 경험한다. 남만 따라 살다보면 결코 만날 수 없다. 동굴 밖 세상을 경험한 철학자들이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와 이데아의 그림자만 보고 사는 이들을 동굴 밖 자신을 찾도록 ‘이끌고 나가는’(educare) 게 교육(education)이다. 하지만 부모가 남들 따라 학원 보내고, 자녀 스펙까지 만들어주겠다고 설치면, 안타깝게도 자녀는 동굴 밖 이데아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누구나 완벽한 최고를 꿈꾼다. 이런 꿈은 반드시 깨진다. 가끔 방송인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몰아치기 운동과 다이어트로 식스팩 몸을 만들어 후딱 화보를 찍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다시 ‘자신다운’ 몸매로 돌아가기 일쑤다. 문제는 이제 완벽과는 거리가 먼 ‘자신다움’을 어떻게 인정하고 사느냐다.

9년 전 나는 연구년을 얻어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아내는 한국에 있어야 할 형편이어서, 나 혼자 두 자녀를 데리고 갔다. 내 목표는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들을 굶기지 않는 것과 내가 직접 하는 밥의 맛이 변변치 않을 틈을 타서 생애 최초로 다이어트를 성공해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생애 최고 과체중이었고, 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을 비롯, 각종 성인병 약을 달고 사는 저질 몸 상태였다.

아파트 내 헬스장에서 자신을 ‘헬스코치’라고 소개한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는 옆에서 욕설을 해가며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보통 사람들은 운동을 할 때 자신의 몸과 싸우는 것처럼 한다고 혀를 끌끌찼다.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맨 먼저라는 것이다. 무리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정말 자신에게 맞는 운동량을 정하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내 바쁜 일상을 듣더니, 평생 헬스장에 가지 말고 집에서만 운동하라고 권했다. 일어나자마자 15분 스트레칭, 자기 전 15분 복근운동이면 평생 운동이 가능하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실천해 나갔다. 왠지 배에 식스팩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내가 틈만 나면 배를 까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고 부담스러워했다. 아빠의 식스팩이 보이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주름이라고, 딸은 그림자라며 즉시 팩트 체크를 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식스팩이 내겐 분명히 보였다. 늘 저주받은 부분이라 여겼던 복부를 향해 처음으로 애정을 느끼고 난 이후에 생긴 변화다. 매일 배를 까보는 내 복부 사랑은 지속되었다. 연구년을 마치고 난 후 놀랍게도 5년간 복용했던 혈압약을 끊을 정도로 난 정상적인 몸 상태로 변해 있었다. 남의 눈엔 어찌되었든 생전 처음 내 신체를 사랑하게 된 결과 아닐까. 명절 때 더욱 불룩해진 당신의 배, 신체의 중심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남의 눈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동굴 밖 이데아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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