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청소는 존엄하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나는 가끔 환경운동가가 된 계기나 어릴 적 꿈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최근 그 질문을 듣고 떠오른 일화가 있다. 내 친구네 반에서 적성검사를 했는데 농부로 나온 친구 덕에 그 반 모두 자지러졌다고 한다. 바로 그가 전교 1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웃자고 한 소리’에 나도 빵 터졌다. 하지만 지금은 정색한다. 도대체 뭐가 웃겨. 적성은커녕 ‘인 서울’만이 10대의 목표였던 나는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쓰레기 덕후’가 되었다. 운 좋게 일을 하면서 적성을 찾았고 그 결과 이제 하고 싶은 일은 쓰레기 관련 업무다. 쓰레기를 돌보고 매만져 알뜰살뜰 쓸모를 찾는 일, 그리하여 내 남은 인생 쓰레기로 ‘덕업일치’를 이루리.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지난달 서울대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는 2019년 또 다른 청소노동자가 공대 휴게공간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폭염사와 과로사가 쓰레기를 돌보는 일의 종착지라니 미래가 암울했다. 나는 적성검사에 임하는 자세로 서울대가 실시한 청소 업무 필기시험을 풀어보았다. 문항은 서울대 학부동과 대학원동 건물 번호, 영어와 한자를 묻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판에 서울대는 외국인이 물어보는 경우를 대비해 외국어 문항을 냈다고 했다.

미화팀 업무회의를 알리는 문자에는 드레스코드로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혹은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여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건을 알려준 내 친구는 한 번도 학력이나 학벌로 굴욕감을 느껴본 적 없었을 사람들이 굴욕감을 줄 촉만은 최고로 발달했네, 라고 일갈했다. ‘굴욕감 투척 입시’가 있다면 이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할 것이다. 서울대는 드레스코드는 회의 후 바로 퇴근하라는 의미였다고 밝혔다. 서울대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바로 퇴근하고 싶으면 멋진 정장을 입어야 하나 보다.

고인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에서 홀로 100ℓ 쓰레기봉투를 옮겼다. 100ℓ 쓰레기봉투를 채운 쓰레기는 50㎏이 넘기도 한다. 청소노동자가 가장 많이 앓는 질환이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무겁고 커다란 쓰레기를 옮기다 골병이 든다. 그래서 광주 광산구, 부산 해운대구, 경기 남양주·성남시 등에서는 100ℓ 쓰레기봉투는 사용을 금지했고 75ℓ형 쓰레기봉투로 대체했다. 하지만 여전히 100ℓ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 곳이 훨씬 많고 서울대에서도 100ℓ 쓰레기봉투를 나르다 결국 사람이 죽었다.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암살 직전 행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을 전한다.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쓰레기를 관리하는 일은 일상을 돌보는 살림 노동의 맨 밑바닥을 차지한다. 살림과 돌봄이 천시받는 사회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의 가치를 누가 알아줄까.

일상을 지탱하도록 물건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람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나는 쓰레기를 돌보는 일을 하며 존엄하게 늙고 싶다. 서울대를 나온 누구라도 적성에 맞다면 쓰레기 일을 하며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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