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통일론에 대한 착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통일부 폐지’ 주장에 이어, 본인이 ‘평화적 흡수통일론자’라 밝혔다. 그가 제기한 흡수통일이란 남북한 체제 경쟁의 결과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첫째, 흡수통일은 국민 여론 수렴을 거쳐 수립한 정부의 통일 방안과 배치된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 통일 방안은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으로, 역대 정부를 거쳐 현 정부까지 계승되어왔다. 주요 내용은 남북이 상호 체제를 존중하는 가운데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의 3단계로 통일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정부는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토대로 한 평화적·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흡수통일을 배제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는 흡수통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은 제재, 코로나19, 수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나름의 내구성을 가지고 체제를 운영해 나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지금보다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에 더하여 중앙집권적 계획관리 체계마저 제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견뎌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장마당 확산 등으로 경제 시스템이 변화했으며, 단기적 충격에 대처 가능하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첨예한 미·중 경쟁 등을 고려한다면 북한 체제에 대한 인위적 현상변경 추진은 상상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 당시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의 정권교체 및 정권붕괴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고, 중국 역시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를 한반도 정책의 최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다.

셋째, 흡수통일은 남북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흡수통일론의 대두는 북한이 대화와 교류보다는 체제 경쟁, 내부 결속, 핵 능력 고도화 등을 강화하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관계 발전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경우 강압적이고 평화와 배치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확산시켜,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평화적 흡수통일론은 사실상 ‘뜨거운 아이스커피’와 같이 그 자체가 모순이다. 흡수통일은 체제 대결과 경쟁, 체제 붕괴 등이 전제된 것으로,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통일 방식과 양립하기 어렵다. 이준석 대표는 흡수통일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흡수통일을 “전쟁을 불러오는 길”, “체제 대결은 곧 전쟁”으로 비난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1972년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남과 북은 통일을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하였고, 상호 비방과 무력도발을 하지 않으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원칙은 그간 남북 간 대화와 합의의 기본 정신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었고,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한 2018년 판문점선언으로 이어졌다.

흡수통일의 근거로 독일 통일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 통일 과정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적 협의통일’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십년 동안 동서독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교류와 협력의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동서독 주민들이 함께 노력해왔다. 이후 동독 주민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선거로 서독 체제로 편입된 것이며, 서독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지원한 것이다.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정, 장기적인 교류와 신뢰회복 과정을 통해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통일의 과정은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토대로 남북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에 합의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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