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드디어 내게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차례가 돌아왔다.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맞는 편이 훨씬 더 이점이 많다고 판단했고, 되도록 빠른 날짜를 골라서 병원에 다녀왔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지인들은 대체로 기회가 된다면 빨리 맞고 싶다면서도 내심 이런저런 우려들을 갖고 있었다. 백신을 맞은 주변 사람 중에는 이미 질병관리청이 주목하고 있는 통증이나 발열, 호흡곤란, 피로감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정출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월경기간이 전에 없이 길게 지속되고 있다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출혈이 시작되었다는 경험담이 때때로 들려온다. 당연하게도 이는 갑자기 피가 나와 불편하다 정도의 곤란함이 아니다. 몸의 루틴이 깨졌는데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심리적인 탓인지, 다른 병증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없음이 가장 큰 문제다.

접종 후 3일이 지나 이상반응 여부를 묻는 질병관리청의 문자를 받았지만 이곳에도 부정출혈과 관련한 문항은 없었다. 자궁에서 꼬박꼬박 피가 나오든 혹은 예측 불가능하게 피가 나오든 인류의 반이 겪는 이 건강 문제에 대해 사회는 너무 관심이 없다. 인구절벽을 이야기하고 고령화사회를 걱정할 때나 가임기 지도와 같은 이상한 방식으로 자궁에 대해 관심을 가질 뿐, 보편적인 여성의 건강 문제로 들어서면 매정하리만큼 관심 밖으로 밀어낸다. 어떤 이는 부정출혈을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민청원을 하고 미국의 학자는 동료와 함께 직접 14만건의 사례를 모아 보고서를 만들었다. 여성의 건강, 특히 성과 재생산 이슈는 늘 여성들이 호소하고 증명하고 요구해야 수만 번의 무시 끝에 마지못해 다뤄진다.

2017년 일회용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된다는 여성들의 문제제기 이후, 안전성 문제는 생리대 시장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경험담을 털어놓은 이들은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유난 떠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가,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케모포비아 환자가 되었다가, 기업을 방해하는 선동꾼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일회용 생리대가 안전하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생리 관련 증상과 외음부 증상은 일회용 생리대 사용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환경부의 예비조사 결과가 상반되는 가운데, 여성들은 더 나아간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그저 후속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더 비싼 신제품을 구입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 몸이 증거’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등장 덕분에 일회용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협의체를 만들고 제조공정을 개선한 것처럼 여성들의 제보 덕에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월경이상과 백신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번 계기를 통해 통증이나 호흡곤란뿐만 아니라 여성의 월경주기 역시 중요한 건강지표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월경 문제는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여성의 몸과 건강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에 없이 급하게 진행되는 신약 개발 과정을 보면서 과학계가 표준으로 삼은 몸이 과연 누구의 것이었는지 여성들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떠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내 몸이 있고, 증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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