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조기는 평소에 먹는다. 그런데 나는 민어가 아무래도 조기만 못한 것으로 안다.” “가을 보리밥, 고추장, 집장이 내 입에 맞는가 보다.” “송이, 생전복, 새끼꿩고기, 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렇다면 입맛이 아주 늙은 것도 아니다.” 이상은 조선왕 영조가 각각 40세, 64세, 74세에 자신의 식성에 대해 한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 보인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보리밥과 고추장에 조기(굴비)라. 보리밥, 고추장, 조기로 한 벌을 이루는 그 맛은 평민의 맛 아닌가.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출신이 미천했고, 모자는 아버지 숙종의 눈밖에 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영조는 18세부터 28세까지는 궁 밖에서 지내야 했다. 또한 비린내 나는 생선, 생선알, 새우알, 젓갈, 게젓이 싫다고도 했다. 궁 밖에서 살 때에는 나박김치를 좋아했고, 봄 아욱과 미나리, 여름 토란이 입에 맞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집착한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맛난 음식이 다 모인 데가 궁이다.

영조는 궁에서 송이, 전복, 어린 꿩의 고기, 우유 넣어 끓인 타락죽(駝酪粥)에 눈뜬다. 생강, 귤피, 삼, 계피로 달인 차도 즐기게 됐다. 그러면서도 절제를 알았다. 원래 수라상 올리기는 하루 다섯 차례가 기본이지만 영조는 죽을 포함한 세 차례로 끼니를 줄였고, 배를 다 채우지도 않았다. 이 때문일까? 영조는 조선 역사상 가장 장수하며 가장 오래 재위를 누린 왕으로 남았다.

그 뒤를 이은 영조의 손자 정조는, 청년기까지 할아버지를 닮아 비린 것은 싫어했고 먹는 양도 많지 않았다. 그저 무는 참 좋아했다. 술과 담배에서 절제를 몰랐을 뿐이다. 그런데 정치를 위한 음식, 음식의 정치에서 몹시 영리했다. 숙직하는 신하에게 별안간 야식을 내리는가 하면, 노모가 있는 신하에게는 회식하며 나온 음식을 싸 들려 보내는 식이었다. 숙직의 야식이며 내 늙은 어머니의 별미를 챙기는 군주에게 깜빡 넘어가지 않을 소장 관료가 있을까?

그 음식만 해도 열구자탕, 꿀소 박은 대추떡, 설탕과 기름장에 조린 전복, 모양 잡아 분을 낸 곶감, 어포, 육포 등등이었다. 이들의 먼 조상 세종의 식성마저 그의 아버지 태종이 <조선왕조실록>에 남긴 말 “주상은 고기가 아니고서는 수라상을 받지 못한다(主上非肉不能進膳)”, “주상은 타고나기를 고기 없이 밥을 못 먹는다(主上性不能素膳)” 등으로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 현장의 음식에 대한 정보는 알 길이 없다. 매체에 비친 대선 후보의 어묵꼬치, 순대, 떡볶이, 인절미, 꽈배기만이 정치의 음식이라고? 대선 후보쯤 되는 이들, 이들의 핵심 관계자는 무얼 먹으며 결속을 다지고 권력을 나눌까? 이들이 힘 있는 언론 종사자를 구워삶을 때는 어떤 음식이 소용될까?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여기서도 진공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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