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당원, 맞을 준비 돼 있나요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만 16세, 고등학교 1학년 나이 때부터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8세로 낮춘 공직선거법이 지난해 말 개정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정당 활동이 가능한 나이를 낮춘 것은 10대 시절부터 거침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대적 변화, 20·30대 지도자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세계적 추세를 볼 때 당연한 일이다. 청소년은 철없고 미성숙하다는 일부의 우려는 편견일 뿐이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단호하고 격정적인 연설을 들어보라.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을 주도했을 때 나이도 17세였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 기기를 끼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게 많아 세상을 알아가는 속도도 빠르다. ‘민주주의의 장’이라 불리는 정당 활동은 청소년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교육·노동·인권·기후위기 등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도적으로 표출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의 30대 총리들을 보면 청소년 시절 정당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적지 않다. 39세에 뉴질랜드 총리직에 오른 저신다 아던은 17세에 노동당에 입당해 청년 당원 활동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30대 총리와 정당 대표, 장관이 수두룩한 핀란드는 모든 정당에서 15세부터 가입이 가능한 청년조직을 운영한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논리보다 나이와 선수, 목소리 크기가 좌우하는 기성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16세 연령 하향은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고 청소년 사회 참여의 진일보한 의미를 가져온 조치”라는 청소년단체의 입장에 공감한다.

이 같은 제도 변화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가능해진 지금, 한국 정치와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정당정치를 통해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어떤 룰을 지켜야 할지를 교육할 준비가 돼 있느냐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여의도를 봐도, 선거판을 봐도, 학교 안에서도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게 없다.

양극단으로 갈라져 진영 싸움에 매몰되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에서 청소년들이 이성적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당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이 주도하는 편가르기는 이미 ‘표심’이란 미명하에 이대남(20대 남성)과 나머지를 갈라놓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맥락도, 논리도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약을 일곱 글자로 적어낸 뒤,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달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투로 말하는 대선 후보는 어떤가.

내용에 대한 찬반 여부를 차치하고, 토론과 논쟁을 거부하는 비민주적 소통 방식 자체가 절망적이다. 정당 간 이념적 차이가 적고 각 당의 이름을 가려놓고 보면 어느 정당 후보의 공약인지조차 구분이 모호한데도 공통분모를 모색하기는커녕 ‘튀는 공약’ 장사에 몰두하고 상대 비방에 혈안이 된 선거판을 보면, 혹 청소년기에 시작한 정당 활동이 오히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적인 태도를 너무 일찍 갖게 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비정규직 공정수당,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등 선심성 공약을 단편적으로 쏟아내면서도 정작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재원 마련, 노동시장 이중구조, 에너지 전환 등 구조적 문제들은 외면하는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말하기엔 부끄럽고 초라한 현실이다. 정치권이 엉망이니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대한 학교 교육이라도 제대로 이뤄진다면 다행이지만 입시에 매몰된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학교 교실이 정당 간 대결, 진영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다양한 가치와 사고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한 시대인데, 자칫하면 고등학교 교실 안에서 국민의힘 당원과 더불어민주당 당원 학생들이 패싸움 벌이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만난 한 교육계 인사의 우려다. 토론과 논리가 있고 유권자에 대한 정치인의 책무와 예의, 민주주의와 선거의 의미를 구현하는 정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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