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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삼프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지난번 어머니 기제삿날의 가족 모임에서도 주식이 화제였다. 전에는 목소리를 높여 경제에 대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단연 매제였다. 그럴 만한 것이 그는 한때 재벌 계열 증권사에 근무했고 데이트레이더로 ‘험하게’ 산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사뭇 달랐다. 공기업에서 박봉 하급 기술직으로 (지금도!) 일하는 매형이 ‘조선해양주’를 소재로 토론(?)을 주도했다. 제빵사 경력이 있으며 손재주가 좋아 화초 키우기와 요리에도 남다른 능력자인 매형은 전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선해양주는 이미 많이 올랐는가? 빅3 조선사의 2022년도 선박 수주 전망은 어떠한가?’ 등을 거의 전문가(내가 듣기엔) 수준으로 풀어냈다. 뇌경색 발병 후 재활 중인 누나도 눈을 반짝이며 신년 주식시장 전망 토론에 ‘참전’했다. ‘삼프로’가 따로 있겠나? 20대인 두 조카들도 물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하지만 토론이 뜨거워 그 MZ들이 혹 무슨 종목에 투자하고 있을지는 미쳐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이런 풍경은 아마도 지난 2~3년 사이 한국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일 테다. 저금리·저성장의 ‘기조’에 디지털 전환, 팬데믹, 부동산 폭등 같은 요인이 겹치고 상호 상승작용했다 한다. 그렇게 ‘선진’ K자본주의와 ‘금융화’가 새로운 단계로 가속 진입하자, 그 문화정치적 효과도 가히 전방위적이며 전 국민적이다.

주식, 부동산, 코인의 삼종 자산은 계층과 세대를 초월한 일상 관심사다. 얼마짜리 집과 무슨 주식을 갖고 있는지? 혹 코인은 하는지? 어떤 수익률을 올렸는지?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나와 남에게 말해주고 비교평가하는 새로운 강력한 지표다.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제자들이 지난 주말 들려준 이야기는 한층 더 ‘아스트랄’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 주식투자 동아리가 번져가고, 중학생들도 투자자로 나서고 있다. 앞서가는(?) 부모들과 헌신적인(?) 교사들은 아이들의 ‘금융 리터러시’를 위해 진짜 주식을 사주며 ‘실전’을 경험하게 한다. 이제 곧 영어 유치원보다 ‘경제 유치원’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는 거 아닐까?

이런 변화는 당연시되던 현대적 개인의 삶과 문화의 양식을 뒤흔들고 많은 것을 유동과 혼돈 앞에 놓을 것 같다. 학부모, 교육자, 인문사회과학자 그리고 개개인들은 당장 답해야 할 어려운 질문들 앞에 서 있다.

- 교육과 앎의 문제. 어떤 정의로운(?) 이들은 조기 교육을 통한 경제지식의 평등화가 그나마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편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들은 투자와 투기의 차이에 대해 교육하고 중등학교에서 ‘균형 있는 경제교육’(그건 뭘까?)을 하면 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 좀 더 근본적인 인간조건과 노동의 문제. 이제 인간의 삶에서 자산과 투자는 과연 무엇인가? 마치 욕망의 문제처럼 투자는 개인의 덕성과 ‘자기계발’의 과제인가? 이제 시민윤리, 직업윤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좋은 직장’ ‘평생직장’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투자와 ‘근로’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미 누군가의 직업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자산을 가진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 개인과 공동체. 이 같은 ‘문화정치경제’ 현상은 생존주의와 욕망의 분리 불가능한 결합 양상의 새로운 버전이다. 그렇기에 K개인주의와 각자도생의 원리를 더 깊게 구현할 것이다. 이 새로운 수준의 ‘금융화’야말로 근대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더 높이 실현한다. ‘투자는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책임입니다.’ 포트폴리오와 시세 그래프 앞의 외로운 존재자인 투자자·투기꾼에겐 어떤 공동체와 공동성이 가능할까?

이는 21세기 자본주의가 ‘외부’도 대안도 없어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차갑고도 허무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 K버전은 ‘멸콩’이 보여준 것 같은 재벌 대기업의 사회 지배와 강남식 교육·소비·세습 등으로 구성된 라이프스타일의 헤게모니가 계속될 것이라는 진단일 것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권은 위선과 ‘내로남불’로써 이 같은 K형 ‘자본주의 리얼리즘’(마크 피셔)의 실현을 크게 앞당긴 공로가 있다.

- 문화와 정동의 문제. 세대와 계층을 넘는 정신질환 유병률과 자살률은 어떻게 될까? 투자와 투기는 본질적으로 느림, 성찰, 연대 따위와는 거리가 있고 고독, 불안, 초조와 가까운 듯하다. 그러니까 각종 종교산업, 심리상담업, 정신약물의 미래는 밝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건진법사들, 신천지들도 이와 함께 계속 호황을 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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