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적대적 공존에서 단독자로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 민주당, 적대적 공존에서 단독자로

적대적 공존(敵對的 共存)의 전통적 모델은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이다. 국가주의나 진영 논리 등 집단 정체성을 표방한 두 세력이 적으로 대치하는 듯 보이지만, 통치 그룹 차원에서는 그들만의 공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은폐된 동맹을 말한다. 개인 간의 인간관계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자

냉전(冷戰, cold war)은 미·소 중심의 언어다. 이념상의 차가운 적대가 아니라 강대국이 약소국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프로즌 워(frozen war)’ 상태다. 제3세계는 양진영의 대리전, 열전(熱戰)을 치렀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전쟁이 대표적이다. 중공군, 유엔군 등 외국인을 제외하고도 한국인 520만명이 사망하고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낳았다. 미·소 강대국 정치의 가장 큰 희생자는 제3세계였다.

두 번째로 한국현대사가 경험한 적대적 공존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남북 대치 상황이다.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 분단은 남한과 북한의 통치자들에게 최고의 무기였다. 안보 이데올로기는 모든 삶을 압도했다. 남한 통치자들은 4·3과 ‘광주 사태’를 비롯한 내전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 공산당의 도발”과 “미제의 압살”이라는 양측의 스피커는 남북한 사이의 현격한 국력 격차로 예전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지금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무관심하다. 무시하니, 예전처럼 긴장 조성이 쉽지 않다. 이것이 일부 극우 세력이 말하는 “안보위기”다. 분단이라는 적대적 공존의 최대 피해자는 군사주의와 발전주의로 파괴된 한반도의 자연과 우리의 삶이다.

냉전과 남북 대치에 이은 세 번째 적대적 공존은 당대의 거대 양당 체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일당 군사 독재 대신 양당 체제가 자리 잡았다. 군사 독재 정권과 1970년대 개발주의 산물이었던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의 시대는 갔다. 이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적대적 공존을 이루면서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의원 면책특권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3선 초과 연임 금지” 등 정치개혁 의제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듯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법을 입법할 국회의원은 많지 않다. 현재 선거법은 민의를 사표로 만드는 여야 간 합작품이다.

민주당의 선거운동 태업

거대 양당의 최대 수혜자는 국회의원들이고, 피해자는 선거 때만 유권자로 동원되는 국민이다. 냉전과 남북 대치 역시 일상의 정치였지만, 양당 체제의 여의도 정치는 당장 오늘 아침의 미세먼지, 팬데믹, 등교, 물가, 부동산 문제 등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포스트국민국가 시대, 국가와 사회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국민의 삶 사이의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양당이 그러한 고뇌와 지혜를 가진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이번 선거는 독특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탄생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의 공로가 크다. 그는 민주당의 의도(?)였든, 인사 실패였든, 검찰개혁의 전략 오류였든 전적으로 민주당의 산물이다. 당선인 부부가 결혼에 이르게 된 사연과 검찰개혁의 관련성을 아는 이들이 많은데도, 의외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민주당 측에서도 적극적·공식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는 당선인 부인을 문제 삼는 성차별 이슈가 아니다. 검찰 일각의 치부를 젠더로 은폐한 것이다. 공생을 위한 엠바고가 걸린 것일까.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이전 민주당의 정권교체 노력을 상기하면 매우 낯선 일이다. 선거철에 동료 의원의 지역구에 원정 골프 간 의원, 이재명 후보에게 미묘하게 불리한 발언을 하는 친여 성향 시사평론가, “여성에게 덜 모욕적인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글을 쓴 내게 “민주당에 투항했다”고 비난하는 민주당 인사…. 뭔가 이상하다. 심지어 여느 때 같으면 선거 결과에 총책임을 지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도 모자랄 송영길 당 대표는 마치 이순신 장군처럼 “그래도 우리에게는 (범민주)국회의원 178명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민주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 왜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남의 일 보듯 한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후보가 민주당 주류가 아니라서? ‘더러움’을 경쟁한 선거였다지만, 더러움에도 차이가 있다. 이재명 후보의 흠결이 ‘개인적’이라면, 윤석열 후보의 처가 문제나 자질은 구조적인 사안이어서 윤 당선인의 약점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났다. 그럼에도 26만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무효표는 30만표에 이르렀다. 이 정도라면, 이번 선거는 정치인 이재명과 나라 걱정이 많은 유권자들의 승리일지도 모른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당의 대선 승리보다는 다음 총선에서 자신의 공천과 당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다. 이번에 이재명 후보가 패배해야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견제” 논조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의당까지 비난했다. 정의당의 득표가 모두 민주당의 것이라는, 착각이야말로 거만의 정점이다. 내 주변에는 대개 정의당, 녹색당 지지자들이고 국민의힘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 많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영입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부터 무속인에 이르기끼지 온갖 인사들이 야당으로 모여들었다. 보수 세력은 늘 색깔 공세를 펼치지만, 정작 자기 색깔은 없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같은 이상한 색깔(정책)만 있다.

선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은 민주당에 투표한 이들이다. 국민의힘에는 분노할 기력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이준석 등 새로운 보수 인물이 어떤 타입의 정치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간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특별한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반북·반공을 핑계 삼은 단순 부패, 독재, 반인권 세력이다. 즉 언제나 안티 테제로만 존재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선거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고, 국민의힘의 구호는 “무조건 교체, 민주당을 싫어합시다”밖에 없었다.

단독자, 민주당

분명한 점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의 관계에서 적대적 공존을 스스로 깼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에 선당후사의 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마는, 민주당 의원들은 형식적 적대보다 각자 갈 길을 택했다. 이제는 민주당이 A라면, 보수나 지역주의 세력은 A가 아니거나 A에 반대하는 이들이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한국 사회 주류 정치 세력의 교체가 점차 시작되는 징조다.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세력이 한국 정치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이제 민주당은 보수와의 적대적 공존조차 필요 없을 만큼 단독자가 되었다.

단독자는 상대방의 존재도, 적대적 공존도 필요 없는 초월자를 뜻한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단 하나의 자아인 나만 보편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국민이든 타인이든 관심이 없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때 국민의힘 같은 이들은 논외다. 결국 민주당이 결자해지를 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적대적 공존으로 얻을 이익도 성에 차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은 보수 세력과 대생(對生)할 필요가 없다.

적대적 공존은 쌍형상(雙形象)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민주당 스스로 차기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이미 그 균형은 깨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민주당은 공존을 깰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당에 권력이 넘치니, 당 내부 개인들은 굳이 힘을 보탤 필요가 없다. 그들은 각자도생을 택했고, 그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다.

민주당의 모습은 일본의 대중 음식 오야코돈(おやこどん)과 비슷하다. 닭고기에 밥과 달걀을 얹은 덮밥. 이 음식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면 식욕이 떨어진다. 재료를 의인화하면, 부모(닭)와 자식(계란)이 함께 들어간 음식이다. 다른 표현으로 묘사하면, 거대 양당의 모습은 반인반수(半人半獸), 하나의 생명체다. 둘 중 누가 상대를 흡수, 압도하든 중간 지대는 사라지고 시민들은 대립 퍼포먼스에 동원된다.

일상적 인재(人災), 가짜뉴스, 코로나19…. 이 고통은 언제 멈출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5년간 몇몇 진보라는 이들(의원, 장관)의 권력 도취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이들로 인한 피해자들의 줄줄이 소송과 재판 연기를 함께 겪고 있다. 보수 언론 핑계는 그만했으면 한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잘못이 있고, 민주당에는 민주당의 잘못이 있다.

사족.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적대적 공존은 여성과 자연을 볼모로 한 남성 연대다. 이번 선거에서 아주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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