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식탁, 윤석열의 식탁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에이브러햄 링컨이 좋아했던 음식은 소박했다. 사과, 생강과자, 양배추, 콘비프(소금에 절인 소고기), 옥수수 케이크같이 평범한 음식이다. 링컨의 소박한 식탁은 고단한 유년시절에서 비롯됐다. 인디애나주 개척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도와 일을 해야 했고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다. 청년이 된 후에는 우편배달, 상점 점원, 측량기사 등의 일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다. 그는 1834년 주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정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평생 상·하원 의원, 부통령 경선 등에서 모두 9번이나 낙선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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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링컨을 기다린 것은 끔찍한 내전이었다. 노예해방을 신념처럼 강조해온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주들이 연방에서 탈퇴했다. 취임 뒤 한 달 만에 남북전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1865년 북부가 승리했다. 남북전쟁으로 군인 62만명이 죽었다. 이는 1차(11만7000명), 2차 세계대전(40만7300명)에서 사망한 미국군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하지만 링컨은 전쟁이 끝난 후 남부의 정치인과 군인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런 통합의 리더십 덕분에 미국은 다시 하나가 됐고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링컨의 첫 취임식 만찬 메뉴는 수프, 고기, 감자, 블랙베리 파이로 수수했다. 대통령 재임 시에도 거북이 수프처럼 미식 메뉴도 있었지만 양배추와 콘비프 같은 소박한 음식이 주로 올랐다. 디저트로는 남부식 화이트 아몬드 케이크를 즐겼다. 링컨의 부인인 메리는 남부 켄터키주 은행가의 딸이었다. 메리 가문은 흑인 노예를 고용해왔으며 남부 핵심사업인 면화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남부식 케이크는 메리 집안의 레시피였고 링컨의 백악관을 대표하는 디저트가 됐다. 음식에서도 통합이 강조된 셈이었다.

링컨의 식탁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오바마는 2009년 취임 오찬 때 해산물 수프, 체리 소스를 곁들인 꿩·오리 요리, 애플파이를 준비했다. 모두 링컨이 즐기던 요리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당선된 오바마는 인종뿐 아니라 계층까지 통합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링컨의 식탁은 벤치마킹할 만한 것이었다.

링컨의 식탁에 관심이 가는 것은 한국의 20대 대선 때문이다. 대선은 0.7%차로 승부가 갈렸다. 이번처럼 비방과 폭로로 점철된 대선은 없었다. 선거 뒤에도 양쪽 진영의 앙금은 여전하다. 링컨이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까닭이다.

윤석열 당선인도 링컨처럼 직접 요리를 할 만큼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김치찌개, 짬뽕, 곰탕 등 당선 이후 행보에 등장한 메뉴도 소탈하다. 적어도 구중궁궐에서 샥스핀 같은 산해진미를 놓고 그들만의 식사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또 1년에 한두 번쯤 야당 대표를 불러 조선시대 탕평채를 닮은 오색 비빔밥을 내놓고 상생과 소통을 외치지도 않을 것 같다. 링컨의 화이트 아몬드 케이크처럼 윤 당선인의 식탁에 오를 화합의 음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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