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구조조정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저녁시간, 배민앱과 오토바이 시동을 켰다. 5분이 지나도 콜을 주지 않자 상점이 많은 곳으로 움직였다. 3㎞를 달려도 콜을 주지 않았다. ‘콜사’다. 배달이 없을 때 콜이 사망했다며 부르는 은어다. 단체대화방에는 영정에 ‘콜’을 합성한 사진이 올라왔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장송곡처럼 울린다. 곡소리도 비용이 들어 기름을 더 먹기 전에 재빨리 시동을 껐다. 해고다. 취업을 위해 쿠팡이츠 앱을 켰다. 콜을 주긴 주는데 2㎞ 넘는 거리의 단건 배송을 3000원에 갔다 오라 한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아스팔트 농사 따위 엎어버리고 싶지만 이 시기를 견뎌야 여름이 온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기업이 라이더를 직접 고용했다면 회사가 견뎌야 할 고통이다. 주문이 줄어드니 넘치는 인력을 정리해야 하는데 퇴직금이나 해고예고수당을 부담해야 한다. 운행을 멈춘 오토바이 보관과 감가도 감당해야 한다. 임금이 아까워 최저임금 미만으로 지급한다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주문이 느는 여름·겨울에 다시 사람을 늘리려고 해도 돈이 든다.

알고리즘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배민쿠팡은 자영업자에게 배달료 6000원을 고정으로 걷고 라이더에게는 계절, 날씨, 동네에 따라 최저 2500원에서 7000원 정도까지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정한 금액을 지급한다. 정확한 배달료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언론은 배달료가 비교적 높은 여름·겨울에 광고를 해주는데 ‘라이더 연봉 1억’ 기사를 보고 수십만의 시민이 앱에 로그인한다. 봄·가을 배달 수요가 줄면 일감에 목마른 라이더는 낮은 금액이라도 배달을 하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로그아웃을 한다. 계절로는 1년의 절반인 봄·가을, 요일로는 월~목, 하루로는 오전과 오후마다 알고리즘이 칼을 휘두른다. 알고리즘으로 공장 설비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수도 있다. 배민은 실거리 요금제를 도입하면서 거리 계산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앱이 계산한 거리와 내비게이션 기준 거리에 차이가 나 회사에 항의했더니 업데이트 중이라고 한다. 해고와 새로운 기계 도입 과정에서 기업이 감당했던 구조조정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알고리즘을 인간의 말로 바꾸면 사태가 분명해진다. “일감과 배달료는 회사가 정한 대로 받아라. 거절해도 되는데 많이 하면 콜도 안 주고, 계정도 정지될 수 있다. 일감이 없다고 해고하는 악덕 회사는 아닌데, 배달료는 최저로 주니 잘 견디길 바란다.” 이 말을 사람이 하면 악덕 사장이 되고, 앱이 말하면 4차 산업혁명이 된다. 아마도 노동자가 못살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그 실태가 세상에 알려질 때쯤 폭염과 태풍이 오고 ‘배달 1건 1만원’이라는 기사가 다시 보도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결정한 배차와 배달료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므로, 노동자의 절규는 언제나 과거의 문제가 된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목표값을 설정하는 기업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극단적인 노동 유연화에 맞선 대항 알고리즘을 이미 가지고 있다. 노동법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업이 정한 규칙에 따라 일하다 죽었다. 그때마다 격렬한 갈등과 합의로 노동법 조항이 하나하나 만들어졌다. 알고리즘 역시 기업 비밀로 보호받아야 할 게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통제받아야 할 공장의 기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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