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부처님의 발바닥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걷기가 내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20년쯤 전이었다. 당시 내가 몸담았던 지식인 공동체에서는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 함께 밥을 해 먹고는 꼭 떼로 산책에 나섰다. 중간에 제기차기에 열중했던 적도 있고,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 중단’ 같은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걷기도 했지만 대개는 동료 연구자들과 온기 어린 대화를 나누며 특별한 목적 없이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앎과 삶의 일치를 꿈꾸던 제도 밖 연구공동체의 실존방식이었는데 그것으로부터 공부, 밥, 산책이라는 내 삶의 기본 스타일도 형성되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마음이 지옥이어서 무작정 걸었던 때도 있었다. 엄마와 합친 후 나는 독박 부양의 여러 난관에 부딪혔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평불만과 자기연민의 양극단을 오가는 엄마의 감정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나는 지쳤고 우울했다. 엄마로부터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 걷고 또 걸었다. 엄마를 버리고 싶다는,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걸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리에 무지근하게 통증이 오면서 감각이 하체에 집중된다. 또 그러다 보면 비로소 바람도 느껴지고 주변의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번뇌가 잦아들고 슬픔이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걷기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비우는 행위라면 그것은 명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10주간 멍때리고 걷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물론 발터 베냐민처럼 산책길에 마주치는 꽃집, 카페, 버려진 집기, 우동가게 등을 관찰하며 우리 시대의 공간적 무의식을 탐색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고독한 걷기를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팍팍하고 우리는 근근이 버티며 산다. 세미나에서 각 잡고 이야기하는 말 너머의 고단한 일상과 누추한 마음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 연대의 걷기였다.

걷기에도 계급이 있음을 알고 놀라

골다공증 진단을 받은 작년부터는 뼈 건강을 위해 걷는다. 처음 장만한 가볍고 밑창이 두꺼운 값비싼 운동화를 신고 오래 걸어도 편안한 탄천 길을 주로 걷는다. 특히 요즘 탄천은 야생화가 지천이어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햇볕 좋은 날 걷다 보면 엔도르핀, 세로토닌 등이 마구 분비되어 기분도 좋아진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길에는 두 발로 보행이 가능한 비장애인이거나 나와 비슷한 거주환경을 지닌 중산층들만이 걷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잠시 뉴욕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숙소는 뉴욕의 변두리인 퀸즈 지역에 있었는데 당시 나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맨해튼으로 나가 뉴욕공공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면 도서관 바로 옆 공원에 나가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사람 구경을 했다. 그런데 내가 숙소 근처의 거리나 지하철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유색인이었던 반면,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라는 브라이언 파크에서 주로 샐러드를 먹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레깅스에 요가가방을 메고 뉴욕 도심을 빠르게 걷는 여성들, 일몰을 배경으로 커다란 개와 함께 조깅을 하는 남성들도 백인이 많았다. 나는 그때 샐러드나 요가도, 산책이나 조깅도, 심지어 반려견도 계급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처님에게는 서른두 가지 신체적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중 첫 번째가 부처님의 평평한 발바닥이다. 난 위대한 인물의 첫 번째 특징이 이목구비가 아니라 인체의 가장 아래에 있는 발, 그것도 발바닥이라는 사실에 늘 감동한다.

부처님은 “평등한 발로 땅을 디디고 평등하게 들어 올리고 발바닥의 모든 부분으로 평등하게 땅을 딛는다.”(<디가니까야>) 전생을 포함한 부처님의 온 삶이 중생의 구도에 바쳐졌고, 그것을 위해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발바닥이 평평해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5월에는 꿰매는 걷기를 하련다

내가 꽃이 만발한 탄천에서 오로지 내 뼈의 밀도를 생각하며 걷는 동안 누군가는 휠체어 바퀴-발이 다닐 수 있는 보행의 권리를 위해 오체투지로 길바닥을 기고 있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평화가 아니라 누구나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는 것이 평화라면서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의 투쟁 현장을 찾아갔던 평화바람 활동가들의 순례도 있었다. 리베카 솔닛은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라고 했다. 부처님이 오신 계절, 5월에는 찢어진 곳을 꿰매는 걷기를 해야겠다. 팽목항부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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