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의 새로운 진화’는 계속된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단막극의 새로운 진화’는 계속된다

KBS 드라마 <사이렌>(사진)이 지난달 국제 영상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텔리상 시상식에서 ‘TV 호러물’ 부문 금상을 차지했다. <사이렌>은 단막극 프로젝트인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지난해 11월 처음 방영된 작품으로, 가상의 소음공해 처리기술을 소재로 한 SF 스릴러다. 거대 중공업 회사에서 개발한 소음공해 처리시설 설치를 두고 마을 주민들과 보상금 협상을 진행하던 오과장(조달환)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후임 직원 태승(최진혁)이 그 죽음에 뒤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을 다뤘다. 방영 당시에도 참신한 스토리와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로 호평을 받은 작품은 지난 3월에는 스톡홀름 필름&TV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에 받은 텔리상 금상은 두 번째 국제상 수상이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사이렌>이 거둔 성취는 단지 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를 넘어 한국 단막극의 현주소와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상파 유일의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 스페셜’은 시청률 지상주의가 강화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020년 10주년을 맞았고, 지난해에는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TV시네마’ 부문을 신설해 90분 분량의 단막극 4편을 방영한 것이다. TV시네마는 KBS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영화 프로젝트로 SF,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등 지상파에서는 실험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형식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 TV시네마 부문에서 네 번째로 공개된 작품이 <사이렌>이다. 오랜 지방 착취의 역사와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사연을 엮은 입체적 구성의 이야기가 장편영화급 분량 안에 밀도 있게 펼쳐졌고, 소음공해 처리시설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소름 돋는 소음과 적막을 오가는 섬세한 사운드 등 SF 장르의 형식미가 잘 구현된 드라마다. <사이렌>의 사례는 ‘TV시네마’라는 호칭이 말 그대로 안방극장에서 영화급 완성도의 드라마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임을 보여준다.

‘KBS 드라마 스페셜’이 시도한 ‘단막극의 진화’는 2020년 MBC가 웨이브,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손잡고 내놓은 SF앤솔로지 시리즈 ‘시네마틱드라마-SF8’(이하 ‘SF8’)의 실험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국 영화감독 8인이 국내 SF 원작소설을 영상화한 이 단막극 시리즈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이른바 ‘K콘텐츠’의 주축이 협업한 융합 프로젝트였다. 플랫폼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드라마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상파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시도 중 하나라 부를 만하다. ‘KBS 드라마 스페셜’의 ‘TV시네마’는 ‘SF8’의 실험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원작 대신 신인 작가가 극본을, 영화감독 대신 신인 PD가 연출을 맡는다는 점에서 단막극의 전통적 미덕을 계승한 프로젝트다.

이 같은 ‘단막극의 진화’는 2022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부터 ‘드라마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단막극을 편성해온 tvN은 올해부터 드라마 프로젝트 ‘O’PENing’으로 이름을 바꾸고 쇼트폼 시리즈를 신설하는 등 다채로운 서사를 추구한다. 지난 5월2일부터 2부작, 4부작 시리즈물을 선보인 ‘O’PENing’은 6월17일부터는 매주 한 편씩, 총 8편의 단막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tvN과 더불어 비지상파 단막극의 명맥을 잇고 있는 JTBC도 지난 2일, 고유의 단막극 브랜드 ‘드라마페스타 2022’를 개막했다. 첫 편성 당시부터 많은 편수 대신 밀도 높은 이야기에 집중한 ‘드라마페스타’는 매해 2편에서 4편 정도의 웰메이드 단막극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방영된 2부작 <아이를 찾습니다>는 서울드라마어워즈 2021에서 대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의 시작을 알린 <불행을 사는 여자>는 2020년 JTBC 드라마 극본 공모 대상 당선작으로, 두 여성의 치밀한 내면 묘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같은 완성도의 심리 서스펜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막극은 상업화된 방송시장에서 드라마의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한 최후의 안전망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험과 다양성이야말로 단막극 최고의 미덕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의 단막극은 기존의 장점은 유지하면서도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게 단막극은, 다시 한번 그 방송사의 경쟁력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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