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옛날에 팀스피릿이라는 한·미 합동훈련이 있었다. 남한강 지류의 어느 지역에 부대가 도착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 며칠간 못 자고 걸으며 피곤했던 부대는 얼른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아침 녘에 시끄러운 다툼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았다. 늙은 농부가 우리 부대의 책임 있는 부사관에게 따지고 있었다. 봄마다 군대 훈련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밭을 뭉개놓으면 어떡하느냐, 훈련도 좋지만 농사는 지어야 너희들도 반찬 해먹을 거 아니냐, 농사 다 망쳤으니 어떡할 거냐. 보니, 마늘밭이라고 했다. 야밤에 들이닥친 부대로서는 공터가 있길래 얼른 지휘용 텐트를 쳐버린 것이었다. 부사관이란 분들은, 그 시절 농촌 출신이 많아서 척하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더 미안한 일이었다. 부사관이 고개를 연신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게 어린 병사였던 내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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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은 농촌에서 돈 되고, 저장하기도 좋고 해서 많이 심어왔다. 나는 요리사이니 시장에서 마늘 시가를 늘 가늠하는데, 이게 좀 특이하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마늘값이 별로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늘 먹는 양이 줄어서 가격이 별로 안 오른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 마늘이 싸고 생산량이 엄청난데도, 가공용은 수입을 많이 한다. 마늘 값이 조금만 올라도 얼른 수입 마늘을 시장에 푸는 당국도 문제다. 중국과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 양 많이 나오는 마늘 종자를 수입해서 심은 까닭도 있다. 마늘이 늘 풍성하게 쏟아져 나와서 농민 처지에서는 마늘을 심어도 돈 될 리가 없다.

한국인은 마늘을 엄청 먹는다. 많은 통계에서 2등과 큰 차이로 1등을 차지한다. 중국이 더 많이 먹는다는데, 마늘종 같은 부산물을 더한 통계라 한국이 1등이 확실하다는 말도 있다. 한국인은 1년에 6~7㎏ 이상 먹는다. 왕년에 소고기, 돼지고기 소비량이 연간 2~3㎏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마늘은 양념이 아니라 채소라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이탈리아도 마늘을 많이 먹는 나라인데 통계상 우리의 30분의 1 정도다. 그들이 마늘 먹는 습관은 잘게 다져 쓰기도 하지만, 기름에 지진 후 꺼내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순수하게(?) 먹는 통계를 잡으면 차이가 더 클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마늘을 익히지 않고 먹는 양을 통계낸다면 어떨까. 마늘 많이 먹는다는 이탈리아, 스페인도 생마늘은 극히 조금 먹는다.

한국이 마늘 왕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깐 마늘이다. 예전엔 마늘 까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에 불리고, 작은 칼을 쓰고 손톱으로 그 껍질을 까는 게 큰일이었다. 깐마늘이라는 신기술이 생기면서 더 많은 마늘을 음식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마늘 탈피기라는 게 나온 것도 한국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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