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게 물어봐

김진우 정치에디터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너도나도 챗GPT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느라 무아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신년사를 챗GPT에 써보도록 했더니 “몇 자 고치면 그냥 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정말 훌륭하더라”고 소개했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김진우 정치에디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챗GPT의 등장이 “인터넷만큼 중대한 발명”이라고 말했다. 챗GPT 열풍이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AI가 전 인류의 지적 능력 합계를 능가하는 ‘특이점’이 머지않았다는 섣부른 예측도 나온다.

이런 얘기를 귀동냥하다 보면 아찔해진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따라잡기 버겁다.

다른 의미에서 현기증 나는 곳이 있다. 정치권이다.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역변’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챗GPT가 지구촌을 사로잡은 지난 2개월여 동안 여권에서 횡행했던 말들을 보라. 윤심, 김장연대, 반윤 우두머리, 간신배, 학폭(학교폭력)…. 주요 7개국(G7)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나라에서 이게 실화냐.

핵심 키워드는 윤심(윤 대통령의 뜻)이다. 윤심의 시퍼런 서슬에 당권 주자로 거론된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이 차례차례 나가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18년간 유지해온 전당대회 규칙을 뒤집고, 대통령실 참모와 윤핵관들은 전방위 여론전과 이지메를 벌였다. 나 전 의원 출마를 막기 위해 초선 의원 50명이 집단행동에 나선 장면이 압권이다. 그래 놓고선 나 전 의원에게 지지해달라니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학폭 가해자가 하는 일”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

이쯤에서 멈추면 ‘윤심열차’가 아니다. 당권 선두주자로 나선 안철수 의원이 ‘윤안연대’(윤석열·안철수 연대) 표현을 썼다고 집중 공격했다. 안 의원이 과거 신영복 교수 조문을 가서 덕담한 것까지 문제 삼았다. 경쟁주자인 김기현 의원 측에선 안 의원이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할 수 있다고 을러대더니 대통령 탄핵 가능성까지 흘렸다. 색깔론에, 공갈 협박에, 진흙탕이 따로 없다.

무리수를 써가면서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유는 하나다. 친윤 대표를 만들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 막힌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승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항변도 있다.

그런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 대통령 리더십의 정당성과 여당의 존재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자가당착 상황을 만들었다. 여권에서조차 혀를 차는 노골적 당무개입은 윤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을 또렷이 각인시켰다. 자신의 생각에 어긋나면 적으로 규정하고 찍어내는 검찰 출신 대통령의 모습이 반복됐다.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AI 시대에 ‘주군’이 나오고, ‘간신’이 언급된다.

일전에 만난 여당 중진 의원이 해준 ‘간신’ 얘기다. 중국의 첫 통일 왕조인 진나라를 망하게 한 황제 호해가 “다들 어디 갔냐”고 시종에게 묻자 “충신은 네가 다 죽였고 간신은 다 도망갔다”고 욕을 하더란다. 그 호해는 대신들이 아방궁 공사를 만류하자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황제가 됐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일축했다.

집권여당의 모습은 더욱 실망스럽다. 보수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나 정당의 자율성이 훼손되는데도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윤심열차를 굴리기 바쁠 뿐이다. 윤심이니 김장연대니 하다 “마마보이 당대표냐”는 핀잔을 듣던 한 당권 주자는 가수 남진씨가 자신을 응원하더라고 ‘남심’까지 끌어들이다 빈축을 샀다. 억울하게 소환된 남진씨. 한 건강식품 광고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아주 좋아” “일일이 말하기는 그렇고”.

이런 요지경 행태는 3·8 전당대회 때까지, 아니 총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윤심으로 각색된 무대에서 누가 연기하느냐만 달라질 뿐이다.

윤심이 지배하는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자기혁신을 위해 노력한 정치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챗GPT에 물어봤다. ‘윤석열 대통령을 설명해달라.’ “죄송하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윤심’은.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도”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챗GPT가 2021년까지의 데이터에 기반한 탓인 모양이다. 그래도 계속 버전업 된다고 하니 답을 해줄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때 과연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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