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양귀비 재배 금지”…돈줄 포기 의구심

박은하·윤기은 기자
<b>현금인출기 앞 ‘장사진’</b> 탈레반이 28일 성명을 통해 일주일에 최대 2만아프가니(약 23만원)의 현금 인출을 허락하자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카불 은행 앞에 있는 현금인출기 앞에 줄 서 있다. 아프간의 은행 등 금융기관은 탈레반 점령 후 운영이 중단됐다가 지난 25일 다시 문을 열었다.  카불 | AP연합뉴스

현금인출기 앞 ‘장사진’ 탈레반이 28일 성명을 통해 일주일에 최대 2만아프가니(약 23만원)의 현금 인출을 허락하자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카불 은행 앞에 있는 현금인출기 앞에 줄 서 있다. 아프간의 은행 등 금융기관은 탈레반 점령 후 운영이 중단됐다가 지난 25일 다시 문을 열었다. 카불 | AP연합뉴스

정상국가 인정 노린 금지령
2000년 집권 때도 시행했다
농민들 변심 ‘1기 정권’ 몰락

환율·생필품 폭등에 뱅크런
아프간 경제는 ‘붕괴 초읽기’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이 아편 등 마약의 원료로 사용되는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하지만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식료품값은 급등했으며 탈레반 점령 후 금융 거래까지 중단된 아프간에서 양귀비를 대체할 수익원이 없는 상황이라 이번 조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탈레반 지도자들이 최근 아프간의 최대 아편 생산지로 꼽히는 칸다하르주 남부 지역 농민들에게 양귀비 재배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WSJ가 현지 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양귀비 대신 향신료의 원료인 샤프란을 재배하라고 권했다. 양귀비 재배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생아편 가격이 ㎏당 70달러에서 200달러로 3배가량 올랐다.

아프간의 아편 재배는 전 세계적 골칫거리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지난 6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서 불법 유통되는 아편의 83%가 아프간에서 공급된다. 2019년 아프간이 아편 생산을 통해 거둔 수익은 12억~21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비중이 최대 11%에 달했다. 탈레반이 선제적으로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고 나선 것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마약산업이 통제불능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문제는 아프간 농민의 양귀비 재배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도로와 저장시설이 열악하고 수출처의 수가 적은 아프간에서 양귀비는 지역 농민들에게 몇 안 되는 현금화 가능 작물로 통했다. 탈레반은 2000년에도 정상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양귀비 재배를 금지시켰다. 그 결과 생계위기에 빠진 농민들이 아프간 전쟁에서 탈레반의 편을 들지 않았고, 이는 탈레반 1기 정권 붕괴의 한 원인으로까지 지목됐다.

현재 GDP의 42.9%가 국제사회의 원조에서 나왔을 만큼 빈곤한 나라인 아프간은 탈레반 점령 이후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아프간 통화인 아프가니 환율은 카불 함락 전날인 지난 14일 달러당 80.84아프가니였으나 2주 만인 28일 달러당 86.13아프가니에 거래됐다. 도이체벨레는 밀가루, 쌀, 기름 등 생필품 가격이 며칠 만에 10~20% 급등했다고 전했다.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근처에서는 생수 한 병의 가격이 40달러(약 4만6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 운영이 중단됐다가 열흘 만인 지난 25일 재개된 이후 현금인출기 앞에는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테러 관련 연구기관인 ‘극단주의 대항계획(CEP)’의 한스 야콥 쉰들러 연구원은 “몇 주 혹은 몇 달 이내 아프간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원조 중단으로 인해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간의 자금줄은 꽉 막혀 있다. 오마르 자킬왈 전 아프간 재무장관은 “탈레반이 경제 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정치세력과 권력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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