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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토피카 스쿨
벤 러너 지음·강동혁 옮김|문학동네|428쪽|1만6500원

페미니스트 심리상담사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어머니 제인,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친절한 심리상담사 아버지 조너선, 전국토론대회 챔피언이며 시를 읽고 쓸 줄 아는 모범생 아들 애덤. 이들은 진보적이고 지성적인 미국 가족의 이상적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면은 이렇다. 제인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걸어온 전화에서 “쌍년” “페미나치”라는 욕설을 듣는다. 조너선은 아내가 자신보다 더 잘나간다는 이유로 ‘거세당한 남성’의 기분을 물어오는 질문에 시달린다. 아들 애덤은 상대방이 반박하지 못할 만큼 많은 내용을 빠르게 쏟아내는 ‘발라버리기’ 기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토론대회에서 승승장구하고, 한편으로는 또래 ‘마초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가운데 갈등을 겪으며 극심한 편두통을 앓는다. 동전의 서로 다른 앞뒷면처럼 이상적인 가족의 이면에는 혼란과 분열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이미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백인 남성성’의 지각변동 아래 소년에서 성인으로 이행해야 하는 애덤의 성장서사가 있다.

이미지컷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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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목받는 소설가 벤 러너(43)의 장편소설 <토피카 스쿨>은 진정한 소통 대신 ‘발라버리기’식 말하기가 일상이 되어가고, 혐오와 분노가 들끓는 미국 사회의 자화상을 미국 중부의 보수적인 캔자스주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벤 러너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작가로 ‘천재 예술가 그랜드슬램’으로 알려진 풀브라이트 장학금, 구겐하임 펠로십,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십을 모두 수혜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 속에 녹여내는 ‘오토픽션(autofiction)’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이 소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러너의 어머니는 미국의 유명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해리엇 러너로 저서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러너는 고등학교 시절 토론대회에 나갔으며, 토피카 스쿨을 졸업했다. 애덤은 작가의 분신 같은 존재로, 러너가 성장기에 겪었던 혼란과 분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토피카 스쿨>은 2019년 미국 출간 당시 화제가 되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로스앤젤레스 북어워드를 수상했다. 뉴욕타임스 등 유수의 언론사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TOP10’에 선정됐다. 그만큼 소설은 미국 사회가 뜨겁게 분열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낸다.

말로 상대를 ‘발라버리는’ 혐오의 시대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남자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나



인상적인 것은 이 책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발라버리기’다. 미국의 고교생 토론대회는 논리의 치밀함, 촘촘한 근거와는 관계가 없는 일방적인 언어폭격의 장이 되었다. “‘발라버리기’란 상대편이 할당된 시간 내에 응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주장을 하고 더 많은 근거를 갖다붙인다는 뜻이다.”

‘발라버리기’는 비단 토론대회에서만 쓰이는 기술이 아니다. 정치인들과 기업들이 쓰는 언어가 ‘발라버리기’다. “기업도 늘 일종의 발라버리기를 활용”했으며, 그것은 약물의 위험성에 대한 광고, 금융기관과 의료보험회사에서 받는 ‘작은 글씨’로 나타난다. “그 수천 개의 단어로 절대 못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남자들'의 목소리 사이 분열하는 소년들[플랫]

‘발라버리기’는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이십사 시간 뉴스와 몰아치는 트윗, 알고리즘 매매, 스프레드시트, 디도스 공격이 일어나기 전부터 일상적으로 ‘발렸다’.” 정치인의 말하기는 말할 것도 없다. ‘발라버리기’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현대 정치인들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 방식을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발라버리기’는 남성성이 요구하는 폭력성과도 맥을 같이한다. 소설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목소리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는 ‘남성성’의 요소인 공격성과 폭력성, “모든 적을 발라버려야” 한다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쓰인다. 애덤은 또래 남성문화의 일원이 되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자신의 언어적 능력을 적극 활용한다. “자신을 진짜 남자로 보이게 해야 한다는 부담 (…) 지속적인 웨이트트레이닝과 말로 하는 결투” 때문에 극심한 편두통을 겪는다.

제인은 페미니스트로, 보수적 미국 중부 도시에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제인이 남녀 임금차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남근 선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인은 굴하지 않는다. 집으로 전화를 건 남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잘 들리지 않으니 다시 말해주세요”라고 요구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소리 높여 욕설을 하다가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라 전화기 뒤편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전화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듣고, 길에서 제인을 노려보거나 적대적 말을 하는 남자들을 옆에서 지켜본 애덤은 마트에서 ‘남자들’의 환청을 듣고 놀란다. 애덤이 어린 시절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자, 제인은 “나는 나쁜 아내, 나쁜 엄마, 나쁜 딸이고, 가정파괴범이에요” “애덤이 괜찮다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어요”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제인의 무의식 속에서 애덤의 뇌진탕이 주변의 ‘남자’들이 자신에게 퍼부은 저주와 관련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제인이 그 뒤로 정말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조너선은 온화하고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훌륭한 심리상담사이며, 환자로 찾아온 부유한 백인 남자아이들을 보며 의아해한다. “그 애들에게는 냉장고 가득 음식이 있고 에어컨과 TV도 있다. 또한 낙인이나 국가적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들에게 뭐든 고통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고통의 결핍이었다”며 “일종의 신경장애, 존재론적 통풍”이라고 말한다.

조너선은 유대인으로 백인 가운데서도 소수자에 속하는 위치에 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권위 있는 아버지, 남편의 모습은 아니다. 조너선은 성장기에 아버지의 외도를 지켜보고 성적 일탈을 통해 ‘남성성’을 획득한다.

혐오와 분노, 내용보다는 형식과 승리를 위한 ‘발라버리기’식 소통 방식, 왜곡된 남성성의 요구와 그 사이에서 분열하는 소년들,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엄마·아내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등 소설 속에 그려진 세계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과 자꾸 겹쳐 보인다. 상세히 묘사되는 미국적 상황이 다소 낯설 수 있고,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학 용어,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서술이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이 소설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현실임이 분명해진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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