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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많은 세계인들이 꽃과 초콜릿으로 사랑을 기념하는 발렌타인데이에 케냐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AFP통신, 가디언, 알자지라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나이로비대학 광장에는 검은 옷을 입고 촛불과 빨간 장미를 든 여성 수백명이 모였다. 많은 이들은 스와힐리어로 “관 위의 꽃은 아름답지 않다”고 적힌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이들은 범죄로 희생된 여성을 애도하고 정부에 젠더 기반 폭력과 여성살해(페미사이드)가 급증한 현실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여성살해 무관용 원칙 선언 등 대응책을 마련하라 요구했다.

2월 14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대학 광장에서 여성 살해에 반대하는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이 촛불과 꽃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2월 14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대학 광장에서 여성 살해에 반대하는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이 촛불과 꽃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1000개 이상 사회운동 조직과 개인으로 구성된 ‘엔드 페미사이드(여성살해종식) 케냐’가 조직한 이른 바 ‘다크 발렌타인’ 집회는 이날 나이로비를 비롯해 케냐 6개 도시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젠더 기반 폭력과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살해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다크 발렌타인 데이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비정부기구(NGO)인 ‘페미사이드 카운트 케냐’에 따르면 2016년 이후 50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지난해 총 152건이 집계됐는데, 이는 최근 5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이다. 대부분 남편이거나 파트너인 가해자를 당국이 기소하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하면서 폭력을 키운다는 우려가 커져 왔다. 그러한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16건의 여성 살해 사건이 보고됐다.

특히 2건의 잔혹한 사건이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줬다. 데이트앱을 이용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보고된 지 2주 만에 숙박앱을 이용해 임대아파트를 빌린 여성이 이 아파트에서 만나기로 한 남성에게 살해돼 시신이 토막 나 버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만연한 가정폭력에 더해 데이팅앱을 사용하는 여성을 겨냥한 계획범죄까지 나타난 것이다.

2월 14일(현지시간) 여성들이 케냐 나이로비대학 광장에서 열린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월 14일(현지시간) 여성들이 케냐 나이로비대학 광장에서 열린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1월 27일 전국에서 수천명이 모여 정부에 여성살해 문제를 국가 비상사태로 지정하고 대응책 마련을 요구하는 행진 시위를 벌였다. 이는 케냐 역대 최대 규모의 페미사이드 규탄 집회로 기록됐다. 다크 발렌타인 집회도 이날 시위의 연장선상이다.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 참석한 학생이자 인권운동가 데보라 모마니는 “사랑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면 무엇을 축하할 수 있겠느냐”고 아프리카뉴스에 말했다.

엔드 페미사이드 케냐에 따르면 여성살해 사건에 대한 당국과 정치인의 대응은 피해자 비난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들에게 낯선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촉구하는 잘못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엔드 페미사이드 케냐는 다크 발렌타인 집회에서 논평을 내고 “파트너나 가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비극적인 희생은 선정적인 언론 헤드라인으로 바뀌었다”고 규탄했다.

1월 대규모 시위 이후 케냐 당국도 대처에 나섰다. 가디언에 따르면 경찰은 여성살해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과 여성살해 수사를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특별팀을 만들었다. 마사 쿰 대법원장도 ‘젠더 기반 폭력 전문 법원’ 설치를 제안하며 이것이 “국가를 휩쓸고 있는” 여성살해 위협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케냐의 수사, 사법당국은 여전히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비판이 만연하다. 경찰은 가정폭력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기며 때로 범죄자의 도주를 도와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의사의 진단서를 떼는 일부터 뇌물이 필요한 현실 등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도 범죄 피해 여성을 짓누른다.

집회를 조직한 무토니 마인기는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여성의 현실은 항상 두려움의 깃발 아래 살고 있다”며 “최근의 불꽃이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말하는 것은 비역사적”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 박은하 기자 eunha999@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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