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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김엘리 지음
동녘 | 216쪽 | 1만4000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말은 오늘도 온라인의 각종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발화자는 주로 젊은 남성으로 추정된다. 여성이 성평등을 주장하려면, 남성만의 의무인 국방도 똑같이 수행해야 한다는 맥락의 주장이다.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은 권리의 평등을 주장하지도 말라는 속내를 품고 있을 것이다.

책 제목은 직설적이지만, 전개는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누군가와 싸우겠다고 전선을 긋기보다는 여성징병제, 여군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소개하고 분석한다.

2011년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 들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하계입영훈련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 들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하계입영훈련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징병제 논란은 최근의 젠더 갈등 양상과 맞물려 더욱 불거졌지만, 논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먼저 여성징병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등에서 보이는 보수주의의 요지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군사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급진주의자 중에서도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입장이 있다. 이미 가사노동, 양육 책임을 짊어진 여성에게 병역의무는 과잉노동이라는 지적, 여성징병제가 군사주의를 확장시킬 수 있기에 반대해야 한다는 지적 등이다.

반면 남녀공동 병역의무제를 찬성하는 논지도 마련돼 있다. 우수해진 여성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차원, 양성이 국가안보를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차원 등이다.

1974년 7월, 충남 홍성군의 가정집 담벼락에 붉은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병역기피자의 가족들은 수치심에 한동안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4년 7월, 충남 홍성군의 가정집 담벼락에 붉은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병역기피자의 가족들은 수치심에 한동안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남성이 병역의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배경을 알려면, 시대적 변화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성징병제는 1962년 주민등록제도가 시행·확립되면서 안착됐다. 군사정권은 병역을 법적인 동시에 도덕적인 의무로까지 만들었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의 집 대문에 ‘기피자의 집’이라는 명패를 달 정도였다. 군사정권은 병역의무 이행을 산업경제활동으로 대체하거나 연계하는 제도까지 만들어, 국가-남성-경제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는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로 재편되면서 병역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변했다. 무한경쟁 시대의 남성들에게 군복무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회수되지 않는 손실이 된 것이다. 군대 가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공격이 조금씩 늘어난 것도 이 시기다.

여성의 군복무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나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국민이 되기 위해 군대에 간다는 건 “가부장이 지은 국가와 군사의 집에서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기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본, '여자도 군대 가라'는 오래된 말[플랫]

반면 여성들이 금기를 깨고 군사 영역에 진출해 활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임파워링(권한 부여)의 순간이라는 입장도 있다. 여성이 군에 참여한 뒤 군대의 지배적인 문화에 도전하기보다는 남성화된 문화 속에 자신의 여성성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는가 하면, 가혹 행위나 불합리한 관행이 줄어드는 등 인권이 개선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성의 군복무를 검토하기 전에, 군대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과거의 군은 전투와 살상에 특화된 조직이었으나, 현대의 군은 무력분쟁을 관리하고 중재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장교들은 전투 지휘자에서 평화 중재자, 경영자, 기술자, 외교관으로 정체성이 재구성된다. 해외의 연구결과를 보면 특히 여성, 유색인종, 젊은 세대의 군인들이 ‘전사’보다는 ‘평화유지군’이라는 직업적 이미지를 선호한다고 한다. 군이 인권친화적 정책을 도입하고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며, 한국군도 이에 동참하는 데 주저할 겨를이 없다.

군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체력을 이유로 여성을 군에서 배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고도의 체력을 요구하는 것은 특수부대에 한하며, 이는 대부분의 남성 역시 수행할 수 없다. 한국군에 더 많은 여군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성징병제 또한 소모적인 젠더 갈등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에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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