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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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라이트’는 무대 위 오직 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추는 조명을 뜻합니다. 핀 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이 열기를 즐기며, 또 감내하며 자신의 걸음을 만들어가고 있을 이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핀라이트#장영란



“우리가 보통 9시간 찍어서 15분씩 나가잖아요. 진짜 추울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제작진이 준비한 게 있어요.”

지난달 30일 유튜브에 공개된 웹예능 <네고왕2> 마지막 화. 마무리 멘트를 하던 장영란(43)에게 제작진이 깜짝 선물을 건넸다. 그동안 인터뷰한 시민들 얼굴을 모자이크해 만든 장영란의 사진.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에게 제작진이 전한 감사 인사였다. “이렇게 주인공 된 게 처음이라서…” 장영란은 왈칵 눈물을 쏟았고, 제작진은 그런 장영란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장영란의 ‘롱런’엔 이유가 있다.

장영란은 전쟁터 같은 연예계에서 큰 구설이나 긴 공백기 없이 20년 넘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방송인이다. 유튜브 ‘달라스튜디오’ 제공, 장영란 인스타그램

장영란은 전쟁터 같은 연예계에서 큰 구설이나 긴 공백기 없이 20년 넘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방송인이다. 유튜브 ‘달라스튜디오’ 제공, 장영란 인스타그램

<네고왕2>는 장영란에게도 제작진에게도 도전이었다. 장영란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진행자로 나선 데다, 광희가 진행을 맡았던 시즌1의 흥행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나이 43살에 이보다 좋은 기회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장영란은 과감히 도전했다. 결과는? 시즌2 10개 회차 모두 100만 조회수를 넘기며 화제성을 이어갔다. 데뷔 후 처음으로 광고도 찍었고, 고정 프로그램도 두개나 늘었다. 새롭게 깔린 ‘유튜브’라는 판에서도 그는 자신 앞에 달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냈다.

돌이켜보면 그는 전쟁터 같은 연예계에서 20년 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방송인이다. 큰 구설이나 긴 공백기 없이 꾸준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용불안’이 일상화된 연예계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선택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는 증명이다. 하지만 메인 MC보다는 패널이나 게스트로 활약해온 탓에, 방송인 장영란의 역량이나 면모는 제대로 조명받은 적이 없다.

“장영란씨를 캐스팅한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가 워낙 넘치시기 때문이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인 진행 능력까지 갖춘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하고요. 장영란씨는 프로그램 타깃인 중장년층부터 젊은층까지 두루 호감을 주는 이미지예요. 첫 촬영 때도 120을 기대했는데 150을 해주셔서 저는 정말 감사했어요.”

<네고왕2>은 장영란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진행자로 나선 프로그램이다. 광희가 진행을 맡았던 시즌1의 흥행도 부담이었지만 “나이 43살에 이보다 좋은 기회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에 과감히 도전했다. 유튜브 ‘달라스튜디오’ 제공

<네고왕2>은 장영란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진행자로 나선 프로그램이다. 광희가 진행을 맡았던 시즌1의 흥행도 부담이었지만 “나이 43살에 이보다 좋은 기회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에 과감히 도전했다. 유튜브 ‘달라스튜디오’ 제공

26일 처음 방송되는 tvN Story <돈 터치 미>의 정종선 PD가 밝힌 장영란의 캐스팅 비화는 그의 롱런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에 영민하게 적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능란하게 수행해내며, 동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프로페셔널. 방송인 장영란의 20년을 돌아봤다.

비호감, 전략적 선택



사실 장영란의 원래 꿈은 연기자였다. 대학에선 연극영화를 전공했고 국립극단 연수단원으로도 활약했다. 2001년 우연히 본 엠넷 VJ 공채에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데뷔 후 첫 프로그램이었던 <쇼킹일기>에선 음악방송 직전 스타들과 짧은 인터뷰를 하는 일을 했다.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며 VJ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던 그는 데뷔 2년 만인 2003년 SBS <한밤의 TV연예> 리포터로 지상파에도 진출한다.

2005년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는 대중에게 장영란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였다. 연예인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그는 남자 출연자들에게 들이대고 여성 출연자를 질투하는 ‘푼수 캐릭터’를 맡았다. “본래 내숭 떨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면을 처음에 자연스럽게 보여줬더니 반응이 좋아 제작진도 그걸 계속 살리자고 했다.”(2005년 중앙일보) ‘무반응 아가씨’라는 별명이 생기고 다른 출연진과의 관계성까지 더해지면서 장영란의 인기는 올라갔다.

2005년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는 대중에게 장영란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였다. 연예인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그는 남자 출연자들에게 들이대고 여성 출연자를 질투하는 모습으로 ‘무반응 아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SBS 제공

2005년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는 대중에게 장영란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였다. 연예인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그는 남자 출연자들에게 들이대고 여성 출연자를 질투하는 모습으로 ‘무반응 아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SBS 제공

이는 당시 방송 트렌드를 반영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연적으로 출연한 여성 출연자에게 ‘비호감이야’라고 했는데 맞은편에 있던 남성 출연자가 ‘네가 더 비호감이야’라고 했죠. 그때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2006년 일간스포츠) 장영란은 그렇게 발견한 비호감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셀링 포인트’로 발전시킨다. 완벽하지 않아도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에 시청자들의 호응이 커지던 때였다. 박명수, 노홍철, 천명훈, 현영 등과 묶어 ‘비호감 연예인들의 인기 비결’을 분석한 기사도 여럿이다.

하지만 장영란은 이런 이미지가 오래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06년 뮤지컬 <씨저스 패밀리>에 출연하며 단역 배우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은 정극 배우의 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SBS <진실게임>에서 일반인 출연자로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부터는 ‘무반응 아가씨’라는 캐릭터의 붕괴가 본격화했다. 비호감 이미지로 인한 시댁의 결혼 반대, 알게 모르게 쌓인 내면의 스트레스와 피로…. 장영란은 다른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영란이 축적해온 과거의 시간은 20년을 돌고 돌아 그의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오버한다’는 시선을 받았던 트로트 가수 경력은 TV조선 <미스트롯>의 심사위원 제의로 이어졌다. TV조선 제공

장영란이 축적해온 과거의 시간은 20년을 돌고 돌아 그의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오버한다’는 시선을 받았던 트로트 가수 경력은 TV조선 <미스트롯>의 심사위원 제의로 이어졌다. TV조선 제공

“TV에 나와도 더 보여드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서른 넘어서 남자 연예인들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것도 싫었고요,”(2010년 서울신문) 2009년 트로트 가수 ‘라니’로 변신한 것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방송 수명을 늘리기 위한 그만의 생존 전략이었다. ‘행사를 뛰려고 가수 데뷔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싫어 이 악물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는 “신비주의 콘셉트로 다양한 전략을 세워뒀지만 생각보다 빨리 정체가 들통나는 바람에 무산됐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종편 시대를 타고 날다



<해피투게더> <세바퀴> <스타골든벨> <사이다> <스펀지> <비타민> <X맨> <마이리틀텔레비전>…. 방송 3사의 간판 예능을 누비던 장영란의 주무기는 ‘자학 개그’였다. 프로그램을 위해 망가짐을 불사했지만 이미지 소진은 불가피했다. 피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늘어났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개국은 그의 방송 인생에 또다른 분기점이 됐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즐겨 보는 예능프로그램 출연 기회가 늘어난 것. 장영란은 결혼·육아·출산이라는 경험을 녹여내며 가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의 전환에 성공한다. 남편과의 연애 스토리, 시부모님과의 관계, 워킹맘의 고충 같은 일상을 보여줄수록 시청자 호응은 커졌다. 그가 고정출연을 했던 <백년손님:자기야> <가족의 품격:풀하우스> <아내의 맛>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모두 엄마이자 아내인 장영란의 면모가 강조된 프로그램이다.

리액션과 공감능력이라는 장영란의 강점은 3인 이상 패널이 나오는 토크쇼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프로그램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공격수’ 역할을 하면서도 게스트나 다른 패널들 컨디션을 살피며 방송 흐름을 이끄는 ‘미드필더’ 역할도 능숙하게 해낸다. TV조선 <아내의 맛>에 함께 출연한 방송인 이하정의 인터뷰에선 이러한 장영란의 면모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녹화를 마친 후 언니가 힘들었지라고 먼저 말을 건네주더라고요. 내 맘을 읽은 것 같아 감동이었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 언니는 저의 ‘멘붕’ 상태를 이미 눈치 채고 제 멘트를 다 받아주는 등 챙겨주고 있었더라고요. 그 후 언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요.” (2020년 여성조선)

그는 <아내의 맛>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사적 일상을 방송에 자주 드러낸다. 하지만 타인이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연기하지는 않는다. TV조선 제공

그는 <아내의 맛>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사적 일상을 방송에 자주 드러낸다. 하지만 타인이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연기하지는 않는다. TV조선 제공

장영란은 가족과 함께하는 사적 일상을 방송에 자주 드러내지만, 타인이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연기하지는 않는다. <아내의 맛>에서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장영란 부부를 보며 다른 패널들은 “무리수 설정”이라고 타박한다. 그럼에도 장영란은 “설정이 아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고 꿋꿋하게 제 할 말을 한다. 자기자신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장영란 특유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만든 일등 공신이다.

일·육아의 병행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다. 장영란은 2014년 고정출연하던 KBS <풀하우스>에서 둘째 임신과 함께 하차했다가 출산 후 석 달 만에 복귀했다. 당시 그는 “둘째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돌아다녀도 되는 거냐”는 MC 이경규의 걱정에 “모유수유를 하다 나왔다. 박지윤·장윤정씨가 너무 빨리 방송에 복귀를 해서 그렇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처럼 던진 이 말 속에는 ‘경력단절’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기혼 여성 계약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녹아 있다.

‘주인공’ 장영란의 다음 장



연극배우에서 VJ로, 가수에서 방송인으로…. 장영란이 축적해온 과거의 시간은 20년을 돌고 돌아 그의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오버한다’는 시선을 받았던 트로트 가수 경력은 TV조선 <미스트롯>의 심사위원 제의로 이어졌다. 데뷔 초 유명 가수들에게 끊임없이 거절당해야 했던 VJ 경력은 즉석으로 시민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네고왕2>의 단독 진행자라는 기회로 연결됐다.

토크쇼에서 늘 타박을 당하는 캐릭터였던 그는 유튜브 세상에서 오히려 자유로워 보인다. 자신을 모르는 60대 여성에게 ‘언니 나 미스트롯! 미스트롯!’이라고 넉살을 떨거나 재수생에게 떡볶이를 사먹으라고 용돈을 쥐여주는 모습에선 장영란 특유의 밝고 따뜻한 성품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상 아래엔 “장영란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시청자 댓글이 이어진다.

“사실 저 방송하는 평범한 주부였어요. 고정 프로그램 하나에 너무 너무 감사하며 열심히 아이들 키우고 내조하고 살림하는, 방송은 하지만 평범한 주부였어요.” 데뷔 후 첫 광고를 찍게 된 장영란은 지난달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하지만 정신없이 변화하는 연예계 한복판에서 우직한 생명력을 발휘해온 그의 내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20년 넘게 단단하고 밝은 자아를 간직해 온 장영란의 진심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마흔 셋 ‘주인공’ 장영란의 다음 장을 기대한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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