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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박찬욱 감독에게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영화 <헤어질 결심>이 팬들 사이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각본집인 <헤어질 결심 각본>은 예약 판매 하루 만에 국내 주요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연출만큼이나 대사와 각본도 사랑받고 있다.

박 감독은 최근작 대부분을 정서경 작가와 공동집필했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까지 박 감독과 함께 만든 정 작가를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속 설정의 의미, 만든 과정과 박 감독과의 호흡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정 작가와의 일문일답.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화 <헤어질 결심>을 공동집필한 정서경 작가가 14일 삼청동 카페에서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화 <헤어질 결심>을 공동집필한 정서경 작가가 14일 삼청동 카페에서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수많은 음식 중 왜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은 초밥을 먹나.

“제가 초밥을 매주 먹는다. 감독님과 저 사이에는 초밥의 정신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썼는데 (작품과) 연결됐다. ‘왜 그 여자한테 초밥 사준 거예요?’라는 수완(고경표)의 질문이 결정적 대사다. 초밥은 해준의 마음을 드러낸다. 해준은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아무 초밥이나 먹기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정안은 아무 초밥이나 먹는 사람이다. 해준은 처음으로 서래를 신문하면서 ‘좋은 초밥’을 먹이고 싶다. 그렇게 흐르는 의미가 있다. 그런 설정들은 우연히 만들어 진다.”

수완(고경표·오른쪽)은 서래(탕웨이)를 심문할 때 초밥을 사준 해준(박해일)을 의심한다. CJ ENM 제공.

수완(고경표·오른쪽)은 서래(탕웨이)를 심문할 때 초밥을 사준 해준(박해일)을 의심한다. CJ ENM 제공.

-해준은 서래에게 얼마짜리 초밥을 사준 건가.

“한 4만5천원짜리. 형사가 지불하기에 5만원은 너무 비싼 것 같다. 예전에 어디서 8만원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각 8만원까지는 안 냈을 것 같다. 서울 강남이 아니라 부산이니까.”

-정확한 화법을 구사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설정하게 됐나.

“그것도 일부러 한 것 같진 않다. 해준이 서래의 세계에 들어가는 신호가 ‘마침내’다. 처음에 서래가 한국말을 잘 못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마침내’라는 표현을 하니까 해준의 표정이 싹 달라진다. 이때 수완은 서래의 말을 안 받아들이지만 해준은 그걸 하나하나씩 배워가면서 다시 사용한다. 두 사람이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서래가 한국말을 못 한다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국가가 새로 생겨서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모국어가 생긴 기분이 든다. 저는 관객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 <아가씨> 때도 그랬지만, 언어를 여러 번 돌려쓰면서 처음 쓸 때, 두 번째 했을 때, 세 번째 쓸 때 의미가 다 달라지게 한다. 그걸 알아챈 관객들이 감상을 말할 때, 또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재밌다.”

-직전에 인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추앙’이 그렇게 쓰여서 아쉬우셨을 것 같다.

“감독님이 그거 보시고 약간 철렁하셨을 거다.”

정안(이정현·왼쪽)은 남편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 뒤 정력에 좋은 자라를 가지고 이 주임(유태오)과 떠난다. CJ ENM 제공.

정안(이정현·왼쪽)은 남편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 뒤 정력에 좋은 자라를 가지고 이 주임(유태오)과 떠난다. CJ ENM 제공.

-정안은 어떤 캐릭터인가.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해준의 개그는 어떻게 나온 건가.

“정안은 딱 ‘한국적인 안정감’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정안은 원전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커다란 위험은 있을 수 있지만 메뉴얼대로 관리하면 이게 끝까지 안전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 사람들을 ‘몇 퍼센트는 어떻고 몇 퍼센트는 어떻다’ 수량적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도라지 말랭이가 있으면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서 담배라는 되게 사소한 위험에 대해서도 엄청 커다랗게 반응한다. 외국인이 본 한국인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안은 사소한 위험을 관리하면서 살지만 정말 커다란 위험은 담배도 원전도 아닌, 자기 남편 마음에 있었지 않은가.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정안에게 비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저는 제 스스로가 영화에 나오는 사람 중 정안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사모님과 저는 정안이를 너무 좋아한다. 유부녀 클럽이라 그런가. 정안이 너무 좋다고 했더니 이정현씨도 놀라는 것 같았다.”

-이정현씨도 정안을 비호감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 건가.

“비호감이라기보단 주인공의 사랑을 어떻게든 막는 역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우리는 해준과 나타날 때 정안을 잠깐 본다. 그래서 비호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정안에게도 자신만의 세계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쯤은 정안이 얘기를 해주길 바랐다. 해준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정안의 인생에서 해준을 ‘아웃’시키는 장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을 쓰고 싶었다. 근데 감독님이 너무 무섭다고 해서 이주임(유태오)과 떠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다시 주장하려고 했지만 이 주임과 같이 떠나니까 너무 웃겼다. 웃긴 거는 (감독님에게) 질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관객들이 유태오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설득된 것 같다. 그래, 떠나야지.

“그러게 말이다. 감독님이 가끔 <헤어질 결심> 2편을 찍자고 하셨다. 정안과 해준을 주인공으로, 서래가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할 만한 얘기가 있나 싶었다. 해준이 파도에서 계속 헤매고 있는데 어디서 무슨 2편을 찍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사모님은 ‘부부는 그런 것도 극복할 수 있다’고 찍을 수 있다는 의견을 주셨다. 안 될 것 같지 않나?”

-안 될 것 같다. 다들 서래가 팜므파탈의 전형성을 벗어났다고 했지만, 저는 팜므파탈의 완성형 같았다. 해준을 영원히 망쳐놓을 것만 같다.

“그렇다. 결국에는 해준을 죽이는 사람이다.”

-해준을 설명할 때 ‘품위’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인간의 품위’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꿰뚫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진짜 안 썼으면 했다. 좀 뻔뻔하지 않나? 제가 감독님이 품위 있는 작품 추구하시는 것 같다고 했는데 해준이 영화에 나와서 자기한테 품위가 있다는 둥, 깨끗하다는 둥…그런데 감독님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더라. 본인과 해준은 전혀 별개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형사 해준(박해일)은 폭력을 지양한다. CJ ENM 제공.

형사 해준(박해일)은 폭력을 지양한다. CJ ENM 제공.

-해준은 형사지만 폭력을 지양한다. 미디어에서 익숙하게 보는 묘사가 아니다.

“범죄 영화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형사님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마다 너무 감탄했다. 사람이 사려 깊다. 범죄자들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그들과 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믿음직하다. 저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받았다. 그런 느낌을 반영하고 싶었다.”

-해준이 산오(박정민)와 옥상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그런 면이 부각된다. 약간의 거짓말도 섞어가며 상대방을 설득한다.

“맞다. 형사처럼 범인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형사랑 범인이 둘 다 폭력적인, 같은 종류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이 많다. 저는 다른 마음이다. 사냥꾼은 사냥감의 마음을 알아야 되지 않나? 사냥감이 도망가면 쟤가 어디로 갈 것이다, 쟤는 뭘 좋아할 것이다, 쟤는 왜 저런 행동을 할 것이다라고 알아야 한다. 형사랑 범인의 관계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형사님들을 실제로 보면 범인 신문을 할 때 되게 인간적이셨다. 범인이 결국은 이 사람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대답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할 때, 웃기거나 귀여워하는 코드가 대중문화에서 많이 반복된다. 서래가 한국말을 하는 건 웃기지도 귀엽지도 않다.

“우리가 외국 나가도 똑같다. 한국에서 멀쩡한 사람인데 영어를 하면 스스로 주눅 들고, 목소리도 약간 어려진다. 사람들이 나를 어린애로 본다. 그게 여행을 간 게 아니라 일상이 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써야 된다. 감독님도 외국에서 그런 체험을 하셨을 거다. 나는 성숙함 등이 이 밖의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는데 언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어린애처럼 느껴지고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넘어서는 순간들이 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해준이 ‘아아~’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간병인도 방수용품 많이 씁니다’ 라든지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막을 순 없습니다’ 라든지.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못해도 인간의 정신은 다를 바가 없구나, 그렇게 느끼는 순간들을 만들고 싶었다.”

-탕웨이 캐스팅도 작가가 제안하셨다. 어떤 각오가 있었나.

“저는 결심을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감독님 만나러 런던에 갔는데 너무 힘들어 보이셨다. 마치 가족처럼 ‘저 사람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뭔가 해야겠더라. 감독님은, 제가 싫어하는 말인데, 시나리오 쓰는 게 제일 쉽고 재밌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시나리오를 쓰면 감독님이 살아날 것 같아서 초고를 가져다드렸다. 실제로 식물에 물 준 것처럼 감독님이 살아났다. 그때 감독님이 멜로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난 진짜 멜로를 못 쓰겠는데 탕웨이면 하겠다고 한 거다.”

-역할 제안할 때는 박 감독이 탕웨이에게 갔나.

“배우를 만나는 건 주로 감독님이 했는데 이번엔 같이 갔다. 아침에 갑자기 전화하셔서 제가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통역이 같이 나왔는데, 탕웨이 배우랑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통역 통해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더라. 갑자기 제가 영어로 말했다. 서래가 한국말 하는 것처럼 못하는데 너무 열심히 했다. 그래서 캐스팅됐나?”

-박 감독과 멜로 감성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감독님과 저 사이에 로맨스를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로맨틱 코미디’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맨틱한 걸 싫어한다고 정정해야겠다. 로맨틱해지는 순간이 이어지지 않는다. <박쥐>를 쓸 때 늘 상현(송강호)한테 답답했다. 정말 태주(김옥빈)는 속이 터졌을 것 같다. 태주는 상현의 말이 옳아서 같이 죽음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너를 사랑하니까 모르겠다, 내가 죽어 줄게’ 이렇게 죽는 거다. 상현은 자기 말이 맞으니까 죽자는 거고. 태주는 사랑인데 그럼 상현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그게 늘 억울했다. 근데 저는 늘 그런 식으로 (박 감독에게) 진다. 아무리 내가 말해봤자 왠지 뭔가가 끝에서 모자랐다. 그래서 ‘안 돼, 그런 걸(멜로를) 썼다가 또 그렇게(<박쥐>처럼) 되고 말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엔 잘 풀렸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뜻이 맞은 건가.

“뜻이 안 맞았다. 이번에도 똑같은 이유다. 상현과 해준은 비슷한 사람이다. 상현에게 죄의식이 있는 것처럼, 해준에게도 마음 속에 얹고 다니는 자기 나름의 윤리의식이 무겁다. 서래는 사랑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데 해준은 자부심, 품위, 이런 거 버렸다고 한다. 자부심 없이 사람이 살 수 있지 않나? 여자는 죽겠다는데 이건 좀 불공평하다. 서래가 좀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했다. 해준이 ‘나는 붕괴됐어요’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핸드폰을 버리라고 하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알겠더라. 어떤 사람은 품위나 자부심을 잃고 살아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버릴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해준은 그런 사람인데도 붕괴됐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 핸드폰을 버리라고 한다. 이 사이에 되게 커다란 계곡 같은 게 있고 그걸 넘어섰구나,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 그걸 이해를 못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금은 이해했고, 만족한 상태다.”

해준(박해일)은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고 말한 뒤 서래(탕웨이)에게 증거인 휴대전화를 바다에 버리라고 말한다. CJ ENM 제공

해준(박해일)은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고 말한 뒤 서래(탕웨이)에게 증거인 휴대전화를 바다에 버리라고 말한다. CJ ENM 제공

-영화를 볼 때 관객이 많이 웃었다. 관객이 웃을 거라고 확신한 한 줄이 있다면.

“초밥! 초고 썼을 때부터 제일 반응이 좋았다. 박 감독님이 쓴 것 같지만 제가 썼다.”

-박 감독은 아이디어 설명하면서 작가 생각이라고 많이 언급하는데, 작가는 유독 개그를 박 감독 몫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정서경 작가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원전 완전 안전’이 박찬욱 감독의 아이디어라고 언급했다.)

“그게 어쩔 수가 없다. 박 감독님과 70%는 같이 쓴다.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감독님이 쓰면, 나도 모르게 대꾸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쓴다. 그래서 뭐를 누가 썼고 뭐를 누가 안 썼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원전 완전 안전’ 같은 것은 저는 싫지만, 건드리지 않는다.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는 것처럼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영역이다. 그래서 얘기한 거다. 남들이 내가 썼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 꼭 짚어주고 싶은 부분이라서 말하는 거고 나머지는 대부분 같이 썼다.”

-작가가 썼다고 알리고 싶은 부분은 없나.

“산에 있다가 바다로 가 죽는 여자의 이야기라서 구조가 쭉 내려간다. 이렇게 내려가는 이야기는 관객들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끝 부분에 산으로 가는 부분을 넣어 봉오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마침 저희 아버지가 30년 전 쯤에 사기를 당해서 산을 샀다. 나도 같이 사기를 당해서 그 산을 사게 됐다. 가본 적이 없는데 알지 못할 이유로 좋았다. 나는 아파트도 없지만. 산이 밤에는 잘 것 같고 아침에 눈을 뜰 것 같다. ‘한국에 네 산이 있다’고 하면 서래가 올 이유가 충분하게 느껴졌다. 동물들의 삶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산으로 보내주는 게 서래가 한국에 온 이유다. 그리고 서래는 바다로 갈 사람이다. 감독님이 초고를 보고 ‘다 좋은데 왜 이야기가 산으로 가?’ 하셨다. 이야기가 끝나야 하는데 주인공들이 산으로 다시 돌아가니까 걱정되셨단다. 근데 모니터해보니 사람들이 다 호미산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냥 뒀다.”

-작가는 (해준과 서래와는 다르게)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건가.

“그렇다. 근데 산을 가지는 않는다. 보는 게 좋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제 남편은 또 바다를 좋아하는데 바다에 가지는 않는다. 틈만 나면 낚시TV를 보고 <도시 어부>를 보고, 나이 들면 낚시하면서 산다고 하는데 안 간다. 저도 등산 문학을 읽고 컴퓨터 바탕화면도 산이다. 휴가를 산으로 가고 싶다. 그런 게 어디서 왔을까? 저는 몇만 년 전 DNA에서 왔을 것 같다. 나는 산에서 살던 뭔가의 후손이고, 남편은 바다에서 물고기 잡다 온 것 같다. 모든 게 웬만하면 DNA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둘이 중간에서 만난 이유가 있겠지? 그걸 상상하는 게 늘 즐거웠다. 나는 왜 산에서 온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바다에서 온 사람을 만날까.”

-서래랑 해준이 같은 종족이라고 표현한 게 생물학적 종족이라는 뜻인지 몰랐다.

“재밌을 것 같았다. 해준이 ‘서래는 어느 시대에서 왔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서래가 그냥 우리랑 동시대의 어느 곳에서 온 게 아니라 지층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DNA를 가지고 살다가 이 시대에 떨어진 사람처럼, 바다에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잘못 산에서 산 사람처럼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그 대사를 썼다. 박 감독님이. ‘뭐야, 갑자기 당나라?’ 싶었다. 그런 ‘로맨틱’한 대사는 전부 박 감독님이 썼다. ‘나 왜 좋아해요?’ 그런 것들. 갑자기 ‘내가 써볼게’ 이러고 쓰셔서 손대지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화 <헤어질 결심>을 집필한 정서경 작가가 14일 삼청동 카페에서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화 <헤어질 결심>을 집필한 정서경 작가가 14일 삼청동 카페에서 경향신문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전에 코미디를 쓰고 싶었다가 포기했다고 한 적이 있다.

“포기가 지속되고 있다. 제가 감독님이랑 다른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신상태가 70%는 유사한 것 같다. 원래는 그걸 몰라서 사람들은 다 이런 줄 알았다. 감독님이랑 만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런데 다른 감독님하고 일하면서 느낀다. 갑자기 설명해야 한다. 왜 이 생각을 했는지.”

-다섯 번째 작품을 함께 했는데 호흡은 점점 좋아지고 있나.

“모르겠다. 감독님은 별로 스트레스가 없다. <헤어질 결심>이 호불호가 있는데, 좋다는 사람들 이야기만 잘 듣고 기억하신다. ‘사람들이 <헤어질 결심> 너무 좋대. 내 작품 중에 제일 좋대’ 이런 식이다. 저는 안 좋다는 사람들 얘기를 더 많이 듣고 기억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도 그랬다. 그때도 우리끼리는 너무 웃기고, ‘이렇게까지 웃겨도 되나’ 싶었는데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감독님은 아직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세계에 있다. 그래서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린 둘 다 망하고 말아’라고 생각한다. 나의 뇌도 부족하지만 박찬욱이 두 명이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마크’한다. 감독님이 ‘모호필름’(박찬욱 감독이 대표로 있는 영화제작사)에서 왔지 않은가. 모호한 건 감독님 담당이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님은 노래 ‘안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렇게 모호한 건 다 감독님 소속이다. 나는 명확한 걸 담당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명확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의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안에서 설명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내겐 중요하다. 나는 ‘명확필름’에서 왔다.”

-차기작은.

“곧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주연의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tvN에서 방영된다.”

오경민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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