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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스러운 거미 포스터 . 판씨네마 제공

성스러운 거미 포스터 . 판씨네마 제공

한 여성이 호텔로 들어와 예약한 방을 달라고 한다. 안내데스크에 있는 남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기혼인지 미혼인지 묻는다. 여성이 미혼이라고 답한다. 남성은 다른 직원과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예약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며, 방이 없다고 한다. 여성은 기자증을 내민다. 여성은 테헤란에서 온 저널리스트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다. 남성은 다른 직원과 다시 상의한다. 문제가 해결됐다며 방을 준다. 이곳은 성스러운 도시니 히잡을 제대로 쓰라고 경고한다. 이 장면은 이란 최대 종교도시인 마슈하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에서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취재한다. 판씨네마 제공.

영화 <성스러운 거미>에서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취재한다. 판씨네마 제공.

라히미는 이곳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을 취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성매매 여성 16명이 이곳에서 ‘거미 살인마’라고 불리는 이에게 연달아 살해됐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2000년대 초 벌어진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라히미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좇는 유일한 인물로 등장한다. 약에 절은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을 누구도 추적하지 않는다. 유족들조차 피해자가 가족의 일원임을 숨기고 싶어할 뿐이다.

살인마의 정체는 영화 초반에 드러난다. 이후 ‘가해자 서사’가 영화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를 알수록 그가 끔찍해 보인다.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중년 남자다. 전쟁에 참여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그는 전쟁에서 순교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의미 없이 끝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는 ‘신의 뜻에 따른다’는 사명감으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그는 ‘사회악’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찾아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범행을 직접 지역 언론에 제보한다. 그는 살인을 한 다음날이면 매일 신문을 확인한다. 자신의 뜻을 기자가 알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의 연쇄 살인마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는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다. 판씨네마 제공.

영화 <성스러운 거미>의 연쇄 살인마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는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다. 판씨네마 제공.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사이드가 잡히기 전과 후다. 라히미의 취재로 그가 구속된 후, 가족들은 물론 많은 이들이 사이드를 지지한다. 사이드의 아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부정한 여자들을 처리했다”며 “알라가 지켜주실 것”이라 말한다. 과일가게 사장은 사이드의 아들에게 “아버지는 훌륭한 일을 하셨으니 기죽지 말라”며 과일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사이드가 재판을 받는 날이면 그를 석방하라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법원 앞에 몰려들고, 법정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아버지의 범행에 의구심을 가지는 듯하던 아들은 주변의 반응에 점점 의기양양해진다. 그가 여동생을 멍석에 말며 카메라 앞에서 범행 방식을 재현하는 장면은 아무도 다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이다. 여성들을 죽인 것이 과연 사이드 혼자인가. 영화는 묻는다.

영화는 사람이 목이 졸려 죽는 장면을 여러 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이드가 여성들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과, 그가 교수형 당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비춘다. 모두가 합심해 사이드를 지켜주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가 죗값을 치르기 바라던 관객도 사이드가 죽는 장면에서는 ‘이게 옳은가’ 다시 질문하게 된다.

📌[플랫]고국에는 전해지지 않은 이란 배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소감’


2022년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자흐라 아미르 에므라히미, 알리 아바시 감독, 메흐디 바제스타니가 거룩한 거미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라히미를 연기한 에브라히미는 이란에서 박해받다 2006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이드 역의 바제스타니는 이란 대표 배후였지만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작진의 보호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2022년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자흐라 아미르 에므라히미, 알리 아바시 감독, 메흐디 바제스타니가 거룩한 거미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라히미를 연기한 에브라히미는 이란에서 박해받다 2006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이드 역의 바제스타니는 이란 대표 배후였지만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작진의 보호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란의 사건을 다뤘지만 덴마크 출품작으로 아카데미 예비후보에 올랐다. 영화를 연출한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에서 자라 덴마크에서 영화활동을 하고 있다. 라히미를 연기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이란에서 박해받다 2006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이드 역의 메흐디 바제스타니는 이란 대표 배우였지만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뒤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제작진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영화로 제75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브라히미는 “이 영화는 여성에 대한 영화다.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얼굴, 머리, 손, 발, 가슴, 섹스 그리고 이란에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8일 개봉.

▼ 오경민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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