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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② “저출산 주범, 너희가 좋다”

‘모성 페널티(Motherhood Penalty)’

모든 여성 노동자 뒤에 드리운 불평등

휴직 쓰기도 쉽지 않지만

무자녀·비혼들도 공백 메우느라 지쳐

결국 노동자끼리 내부 갈등만

이 구조에서 손해보지 않는 건 ‘자본’

“너네는 저출산 주범이야, 근데 변수가 없으니까 (너네 같은) ‘딩크’가 좋아.”

50대 남성 팀장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그는 14년째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오누리씨(35·가명)의 직장 상사다. 오씨가 속한 팀에는 여성 6명이 있는데 한 명만 아이가 있고 다들 ‘딩크(맞벌이 무자녀 가정)’다. 아이가 있는 유일한 직원이 아이가 아파 갑자기 병원을 가겠다고 하면 팀장은 일단 “들어가라”고 한 뒤 돌아서서는 “왜 맨날 아프냐”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남은 팀원들에게는 ‘남자들 입장’이라며 너희가 저출산 주범이지만 변수가 없어서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가부장적인데,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에 위치한 한 건물 창문에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 드문드문 불 켜진 창문 뒤로 한 여성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준헌 기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에 위치한 한 건물 창문에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 드문드문 불 켜진 창문 뒤로 한 여성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준헌 기자

경향신문 플랫팀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정규직 6명, 비정규직 7명의 20~30대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15~16일 4시간씩 초점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FGI)을 실시했다. FGI는 심층 집단 인터뷰를 통해 개인별 의견을 넘어 참여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발견해내는 질적 연구방법이다. 이들은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모성 페널티(Motherhood Penalty)’를 경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모성 페널티는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 여성의 생애 과정 전반에 미치는 불평등 효과를 말한다.

대기업·공공기관에 다니는 정규칙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겪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그로 인한 가부장제의 압박을 호소했다. 비정규직 참여자들은 그에 더해 여성이 몰려있는 직종 자체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이 많다고 했다. 만족도를 떠나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직종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지적했다. 이러한 ‘모성 페널티’의 구조는 2030 여성들이 점점 ‘가족’보다 ‘일’ 중심의 생애계획을 세워나가도록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자녀·비혼 여성들의 ‘모성 페널티’

‘모성 페널티’는 기혼 유자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기 전, 직장을 구할 때부터 작동한다.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했던 류고은씨(28·가명)는 “시작 단계인 필기시험을 볼 때는 여성이 많은데 최종면접으로 가면 남성 5명, 여성 5명으로 동률이 되는 게 미심쩍다”고 했다. 최근 한 방송사 최종 면접시험에 올라간 응시자 3명 모두가 남성이었다는 소식이 언론사 지망생 사이에서 ‘뉴스’가 되기도 했다. 이제 면접에서 아이를 낳을 거냐, 일과 가정 중 뭘 선택할거냐 등의 노골적인 성차별 질문은 줄어들었지만 여성들은 미래에 결혼과 출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벌점, ‘모성 페널티’를 받는다.

자녀가 없거나 비혼인 여성의 ‘모성 페널티’는 자녀가 있는 여성이 휴직할 때 생긴다. 여초 직종에서 이런 구조는 더욱 도드라진다. 대체 인력을 마련해야 할 기업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그들은 기혼 유자녀 여성의 ‘빈 자리’를 메우면서 늘어난 업무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누리씨처럼 ‘출산율 하락의 주범’이라는 사회적 비난까지 받는다.

[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 “저출산 주범, 너희가 좋다”…‘모성 페널티’로 이익을 얻는 자는[플랫]

결혼하기 전 누리씨는 휴직자의 공백을 메우느라 몇 달 만에 거의 10kg이 빠진 적이 있다. 동료 한 명은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육아휴직에서 막 복귀한 동료는 업무에 대해 숙지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회사는 ‘인력 공백’을 채워줄 생각이 없었다. 그 후에도 회사는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대체인력이 없다’ ‘1년만 버텨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 동료는 그렇게 일하다 임신 여덟 달째 유산했다. 누리씨는 임신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주변에서 여럿 봤다. “회사에서는 대체인력 예측이 어렵다며 ‘우리도 죽겠다’는 식으로만 말해요. 13년간 얘기했는데 안 바뀝니다.”

회사가 뒷짐 지고 있는 사이, 여성들끼리 서로 ‘피해봤다’는 분위기가 생긴다. 누리씨는 결혼 전 한창 힘들 때 인사부에 전화해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든 구조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사부에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힘들지 않나. 애 키우는 분들이 더 힘들다”고 답했다. “눈물이 났어요. 아이 키우며 일하는 게 힘들단 걸 알지만, 동료들의 공백은 커지는데 영업점에 일을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8년간 면세점 판매 노동자로 일한 황미진씨(29·가명)는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서 동료가 임신해도 온전히 축하해주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몇년 전 사장이 육아휴직 중 둘째를 가진 한 직원의 인사를 몇 달 동안 받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업장이다. “연차도 쓰기 힘들기 때문에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그 기간 어떻게 하느냐’는 말부터 나와요. 여성들이 모여 있어 임신과 출산에 열려 있는 분위기여도 피해 봤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걸 느꼈어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그 몫을 감당하는 건 힘드니까요.” FGI 자문을 맡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체 인력이 없어서 여성이 여성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구조에서 출산은 조직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FGI참여자

비정규직 FGI참여자

“회사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거예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김민서씨(38·가명)도 동료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평소의 3배 가량 일을 받은 적이 있다. 민서씨는 “직원이 임신하면 육아휴직 시작 시점이 어느 정도 예측되는데 대체 인력을 미리 뽑으면 된다”며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원망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서씨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기에 육아기단축근로제 등 다양한 모부성보호 제도를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는 두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 그는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아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체 인력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도, 공백을 메워야 하는 사람도 힘들어지지만 회사, 곧 자본은 손해볼 것이 없다. 신 교수는 “회사가 뒷짐 지고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는 동안 노동자들이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 키우고 내 삶을 돌볼 시간을 내놓으라고 힘을 합쳐 회사와 국가에 얘기해야 합니다. 회사는 적극적으로 대체인력을 마련하고, 정부는 그런 기업을 지원해야죠.”

육아휴직 쓰는 남성은 ‘승진 누락’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려면 승진에서 누락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금융업계에서 10년간 일한 배유진씨(29·가명)는 회사 인사팀에 ‘남성 육아휴직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자 육아휴직까진 오케이, 남자 육아휴직은 안 된다고 해요. 실제 남성 동료가 육아휴직을 썼는데 승진에서 누락됐어요. 원하는 곳으로 발령도 안 된다고요.”

유진씨 회사에서는 1년 휴직하면 승진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남성들은 승진 연차일 때 아이가 태어나면 우선 ‘일’을 택한다. 여성들은 주로 출산 후 육아휴직을 사용하다보니 승진 연차까지 고려하기 힘들다. 유진씨는 “이런 구조도 차별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보조 양육자’에도 못 미치는 ‘양육 조력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남성이 동등한 양육자가 되기 위해 어떤 개인적, 가족적, 조직적,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지 ‘젠더 전환’의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인사 담당자인 민서씨는 최근 육아휴직 사용자를 인사고과 대상자에서 제외해왔던 ‘제도 차별’을 시정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육아휴직으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기관 내부 규정으로 명시화하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올해부터 육아휴직자도 고과 대상자로 포함됐다. 민서씨는 “공공기관이라 ‘제도 차별’이 적지만 ‘인식 차원의 차별’이 없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임신출산 양육 관련 제도

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임신출산 양육 관련 제도

남성의 양육이 ‘예외적 상황’이 되다보니 여성들은 가정에서 남편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 “아이가 아팠을 때 연락을 받는 것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이모님이 못 오신다고 하면 그 공백을 메우는 것도, 휴가 쓰는 것도 저예요. 불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한킴벌리에서 일하는 유란씨(36)의 말이다. 그는 최근 일부러 남편을 유치원 설명회에 보냈다. 아빠가 온 경우는 남편이 유일했다. “남편이 유치원에 연락하면 원에서는 ‘아버님이시냐’며 놀라기도 해요.”

이런 갈등은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 돌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의 문제지만 결국 서로에게 화살이 간다. 문화예술 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임신하면서 퇴직한 이수민씨(36·가명)는 같은 업계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남편의 상황을 이해한다. “남편도 고충이 있고요. 일자리를 잃고 육아를 도맡아야하는 제게도 고충이 있어요.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미워하기도 합니다.”

‘낮은 진입장벽’ 직종을 찾는 이유

‘양육은 엄마 책임’이라는 사회의 가부장적 압력은 여성들의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립대 시간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김인정씨(37·가명)는 어린시절 성취지향적인 아이였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위해선 여성에게 수용적인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지금은 공대에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딩크로 살 계획이다.

16개월 아이를 키우는 수민씨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에서 양육은 내 책임이라고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남성이 밖에서 일하고 여성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관념을 깨기가 어려워서 좌절했어요. 대학 나오고 사회생활했는데도 우리 엄마 세대처럼 살고 있습니다.”

한 여성이 콜센터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여성이 콜센터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용형태가 불안정한데다, 돌봄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압박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들은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저임금 업종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비정규직 참여자들은 FGI를 진행하는 동안 ‘사회적 분위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신 교수는 “육아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구조적으로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된다”며 “여성들이 ‘진입장벽이 낮은’ 일자리를 찾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되는데, 출산·육아를 일과 병행하기 어려운 비정규직이 여성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참여자들은 ‘가부장적’이라는 언술이 정규직 참여자들보다 많았다. 특히 ‘가부장적 가족 내 성차별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졌다. 참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원가족의 가부장성에 대해 털어놓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프리랜서 교육 강사로 일하는 강원희(35·가명)씨는 “부모님이 가부장적이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오빠와 원희씨를 차별했고 늘 원희씨에게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했다. 임신했을 때 부모님은 “귀한 집 대 끊으면 안 된다”며 첫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했다. 원희씨는 ‘아들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은 건데 아이 낳는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비정규직 참여자들의 인터뷰에서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원 부족, 부부 관계 내 발언권 제한 등이 눈에 띈다”며 “이런 가족 구조가 이들의 도전을 제약하고, 다시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과 경제적 조건이 가족 내에서 발언권을 제한하는 면이 있다. 젠더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구조”라고 말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문제의 핵심”

지금 2030 여성들은 ‘가부장 자본주의’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신 교수는 “현재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자는 자본과 ‘오부남(50대 부자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경제·사회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50대 이상의 남성들은 지배적인 남성성을 무기로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기존의 젠더 규범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여성, 청년, 저소득층의 비주류의 입장에서 고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주요 과제로 두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진국들도 여성의 고용률이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여성의 고용 유지에 방점을 두고 젠더중립적으로 가족 정책과 일·생활 균형 제도를 재편했으며 노동시장 차별구조를 완화했다. 그결과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이 함께 올랐다. 2022년 기준 프랑스의 출산율은 1.79명, 독일은 1.46명이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온전하게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출산율이 오르는 건 그 이후의 문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주요 목표로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의 실마리도 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 “저출산 주범, 너희가 좋다”…‘모성 페널티’로 이익을 얻는 자는[플랫]
2024년 현재, 당신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나요? 경향신문 플랫팀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와 함께 “플랫 아파트-자기만의 방”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독자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직접 자신의 공간을 꾸며 보고, 여기엔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입주자들은 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② 방을 꾸미고, ③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기록하고 ④ 플랫 아파트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꿈꾸는 삶에 대한 해시태그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방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방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감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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