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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명아(가명)는 울 수 없었다. 울면 쫓겨났다. 무엇보다 가족을 잃는 게 무서웠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1년간 학대와 성폭력을 일삼던 아빠는 어린 명아에게는 최고의 존재였다. “아빠는 제일 나쁜 사람이야.” 상담사가 이렇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 안에서 감정이 억눌리면서 표현이 서툴고 자학 증세가 심해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명아는 폭력의 기억을 담담하게 종이에 적어 수화기를 들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처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폭력으로부터 30년이 흐른 뒤였다.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경험을 책으로 써 내려갔다. 그제야 치유의 기록으로 침묵을 깰 수 있었다고 한다. 명아, 푸른나비, 김영서, 민지.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 4명을 지난 13일 만났다. 이들은 각자의 책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은 서로를 바라본다. 또 ‘살아남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유튜브]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 “아버지가 죽어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요”

친족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 명아, 푸른나비, 김영서, 민지(왼쪽부터)는 각자의 책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은 서로를 바라본다. 또 ‘살아남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석예다PD

친족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 명아, 푸른나비, 김영서, 민지(왼쪽부터)는 각자의 책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은 서로를 바라본다. 또 ‘살아남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석예다PD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저는 제 영혼을 차창 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천장에 떠 있는 것처럼 상황과 저를 분리시키려고 했던 거 같아요. 가해자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딸을 대하는 방식은 더군다나 아니고, 사람으로도 대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 저는 ‘난 지금 이 상황에 있지 않아’ ‘나도 사람이 아니면 너도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며 버텼어요.”(김영서)

푸른나비는 집에 있으면 늘 맞는 아이였다고 한다.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폭력을 일삼았다. 여동생은 언니가 마음이 여리니 반항하지 못해서 당한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8살부터 10년간 겪은 고통은 결국 해리 장애로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4년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생존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기억이 삭제된 것도 뒤늦게 알았다.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제일 원망스러웠어요. 스물세 살 정도에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했는데도 ‘그럴 수 있다’며 계속 ‘용서하라’고 했어요. 저는 가해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엄마처럼 외면하지 않을 거야’ ‘엄마처럼 폭력을 취하지 않을 거야’ 다짐하면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족성폭력 생존자 6명이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린 적이 있어요. 4512명이 동의를 해줬는데 그분들이 저한테는 어른이었어요. 주변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어요.”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를 죽일 정도로 힘들게 했지만 그냥 겪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 내가 당하는 일이 뭔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니까요. 이걸 어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김영서 작가는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9년간 자신이 겪은 피해를 기록했다. 석예다PD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를 죽일 정도로 힘들게 했지만 그냥 겪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 내가 당하는 일이 뭔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니까요. 이걸 어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김영서 작가는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9년간 자신이 겪은 피해를 기록했다. 석예다PD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절반이 넘는 55.2%(한국성폭력상담소, 2019년)가 피해가 발생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사회의 1차 안전망인 가족 안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주변의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특히 폭력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들어온 성폭력 상담 중 9.5%가 친족성폭력이었다. 그중에서 7~13세에 피해를 경험한 경우가 33.3%로 가장 많다. 7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민지는 “당시에는 그 일이 범죄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를 죽일 정도로 힘들게 했지만 그냥 겪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 내가 당하는 일이 뭔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니까요. 이걸 어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김영서)

그래서 스스로를 보듬고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 은수연은 2012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통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친족성폭력 피해를 책으로 기록해 펴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0년 은 작가는 필명 대신 자신의 진짜 이름을 세상에 말한다. 은 작가가 바로 영서씨다.

“제 책이지만 필명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못했어요. ‘미투’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제가 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었죠. ‘나만의 미투’를 이어갔어요.”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치유를 기록한 여성들[플랫]

작가이면서 상담가인 김영서씨는 강의장에서 어느 때보다 독자의 응원을 자주 받는다. 그는 “성폭력 피해를 밝히는 것이 더 이상은 피해자의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나비와 명아, 민지를 포함한 12명이 생존 기록을 담은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는 영서씨의 말처럼 이제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밖으로 꺼내놓는 책이다. 푸른나비의 제안으로 쓰기 시작한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혹독했다. 과거를 곱씹으며 분노를 눌러 담았다. “생존자만의 힘으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이뤄냈어요. 많은 사람들이 펀딩에 후원하도록 이끈 힘이 우리 안에 있었어요.” 명아가 글을 쓴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폭력의 기억을 털어놓는 것, 폭력인지 인지하는 것도 힘들었던 이들은 성폭력상담소에 찾아간 뒤에야 ‘유일한 내 편’을 얻었다고 했다. 명아는 내 편이 생기니 우리 같은 사람이 살아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지금 생존자로 얼굴 마주하는 분들 있지만, 어딘가에서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영서 작가님의 책이 큰 힘이 됐어요. 누군지 몰랐지만 쉼터에서도 소식을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작가님 이야기의 힘으로 자기 전에 ‘한강에 뛰어내리는 건 내일 하고, 오늘은 자자.’ 생각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을 내 우상으로 삼고 나도 저렇게 살 거야 하고 살아냈거든요.”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치유를 기록한 여성들[플랫]

이들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기 위한 ‘공폐단단’ 활동도 하고 있다. 뒤늦게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원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죽어도 피해는 끝나지 않아요. 그래서 공소시효부터 폐지해야 해요. 가해자가 처벌돼야 피해자의 치유가 시작되지 않을까요?”(푸른나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가 의료 지원을 받으려면 여가부 지침상 2년 이상 경과된 피해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를 요구하고, 성폭력 후유증이라는 소견서를 써주는 것도 한계적”이라며 “시간이 지난 뒤 심리 상담으로 치유하려 할 경우 오랜 과정이 필요하지만 의료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공폐단단’ 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공폐단단’ 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생존자들은 어디엔가 혼자 있을 친족성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네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힘들었겠다.”(민지) “쉼터로 가자! 집안 식구 다 버리고 가자!”(명아) “부끄러워해야 할 건 하나도 없다. 정말 1도 없어.”(김영서)

누군가 나에게 폭력의 기억을 고백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자들은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같이 있어 주는 것, 그냥 옆에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게 힘이 된다고 했다.

“저는 사실 기 쓰고 애쓰면서 생존해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저희 색깔대로 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하면서 살고 싶어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가해자일 때는 더 이상 그 순간은 가족이길 멈춰야 하는 잔인함도 필요해요. 폭력을 중단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어요.”(김영서)


석예다 PD yeah@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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