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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은 상사의 기분을 살피는 등 이른바 ‘심기 노동’을, 4명 중 1명은 상사를 위한 ‘사적 수발’을 요구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문화가 성차별적일수록 성폭력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았다. 전문가들은 “성차별적 조직 문화가 성폭력으로 이어진다”며 사내 성폭력을 세대·성별 갈등이 아닌 성차별적 권력 배분에 따른 문제로 읽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22일 ‘성차별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직장 내 성차별 문화,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은 지난달 11~27일 온라인에서 자유 참여 형식으로 이뤄졌다. 20대 이하~50대 이상 여성 482명이 최근 3년(2017년 11월~2020년 10월)을 기준으로 응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중 상당수가 상사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띄우는 등 이른바 ‘심기 노동’을 요구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회사는 상사의 심기를 파악할 것을 여성에게 요구한다’는 문항에 전체 응답자의 39.6%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했다. 여성에게 사내 분위기 조성을 맡긴다는 응답(그렇다·매우 그렇다)도 34.6%에 달했다. 한 응답자는 일터에서 “‘나는 OO씨가 팀장님한테 업무 외적으로 말도 걸고 해서 사무실 분위기 좀 띄워줄 걸 기대했는데 기대 이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픽|이아름 기자

그래픽|이아름 기자

업무와 관련 없는 ‘사적 수발’이 여성에게 강요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회사는 상사를 위한 사적 수발을 여성에게 요구한다’는 문항에 26.4%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여자가 사오는 게 맛이 좋다는 이유로 꼭 음료 심부름이나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고 답했다. ‘상사가 전날 과음하면 아침에 속 풀어줄 음식(라면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 응답도 나왔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성별을 이유로 보조 업무를 맡기는 등 조직 운영이 성차별적으로 이뤄진다는 응답도 많았다. 참여자의 37.6%가 ‘회사에 여성에게 주요 업무가 아닌 보조 업무를 배치하는 관행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남성중심의 비공식적 통로(흡연·술자리)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는 경우가 있냐는 질문에는 전체 52.5%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했다.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시 처리 절차가 제대로 마련된 경우는 드물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창구 및 절차가 있냐고 묻자 절반이 넘는 55.2%가 ‘없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연령이 낮고 고용 형태가 불안할수록, 소속 직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 비율은 높았다.

응답자 중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70.3%, 있는 경우는 29.7%였다. 피해 경험이나 목격 경험 모두가 없는 경우는 42.3%, 피해 경험 혹은 목격 경험이 둘 중 하나라도 있는 경우는 57.7%였다.

특징적인 것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 및 목격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성차별적 조직 문화를 진단하는 문항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는 상사의 기분에 따라 조직 분위기가 좌우되며 여성에게 상사의 기분을 좋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는 문항에 피해 경험이 없는 응답자의 42.2%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경험자의 경우 47.6%가 ‘그렇다(매우 그렇다)’고 했다. 대부분 문항이 같은 양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장주리 연구원은 “성차별적 조직 문화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이 연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안에서 성희롱·성폭력이 묵인·방조·조장돼 노동권 침해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식적으로 이뤄져 실효성이 없는 성희롱 예방 교육에 대해 장 연구원은 “성희롱·성폭력 외에 이를 조장·방조하는 성차별적 직장 문화·구조에 대한 문제를 분석하고, 이 구조와 성희롱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성차별에 대한 경각심 가지도록 교육 내용이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직장 내 성차별·성희롱을 노동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사내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해결을 통한 예방 효과 등도 제시했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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