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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A씨는 지적장애인 여성 B씨와 사귀며 2016년 11월부터 부산의 한 여관에서 함께 살았다. A씨는 B씨를 노래방과 유사성행위 업소로 보내 벌어오는 돈을 유흥비로 썼다. B씨가 일하기 싫다고 하면 폭행했다. A씨는 한 달 뒤 B씨를 C씨에게 넘겼다.

C씨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B씨를 모텔에서 지내게 하면서 하루 평균 1~2회씩 성매매를 강요하고 돈을 모두 챙겼다. B씨는 임신을 하고서도 C씨의 압박에 성매매를 그만둘 수 없었다.

법원은 2018년 A씨에게 공갈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C씨에게 성매매알선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들을 성매매 인신매매 혐의로도 구속 기소했지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에 “현금 40만원에 B씨를 거래했다”고 자백했지만 법정에서 “그런 적 없다”고 진술을 바꿨다. 법원은 자백 말고는 사람을 매매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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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고팔아야만 인신매매일까. 정부가 2000년 서명하고 2015년 비준한 유엔인신매매방지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사기·권력 등에 의해 사람을 모집·운송·이송·은닉·인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한국은 유엔의정서를 이행한다고 2013년 4월 형법 제289조 인신매매죄를 신설하며 ‘사람을 매매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인권단체들은 이 규정 때문에 국제 기준상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범죄를 한국에서는 처벌하기 어렵다고 본다.

18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3~2020년 인신매매죄로 입건된 251건 중 기소된 사건은 9건으로 기소율이 3.5%에 불과했다. 2012~2019년 전체 형사사건 기소율(34.6%)의 10분의 1 수준이다. 경향신문이 법원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 지난 8년간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장기 적출 인신매매 예비 3건, 성매매 인신매매 2건 등 5건이었다.

인신매매 개념을 유엔의정서 기준으로 넓히는 법안이 나왔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인신매매·착취 방지와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인신매매를 ‘위계·위력을 행사하거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사람을 모집·운송·전달·은닉·인계·인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인권단체들은 이 법안이 인신매매의 개념은 ‘국제 기준’으로 확장하면서 처벌은 ‘한국 기준’으로 유지했다고 비판했다. 이 법안은 17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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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유감스러운 ‘인신매매 금지법’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9일 검토의견서에서 “이 법률안은 유엔의정서의 인신매매 개념을 국내법화하면서도 인신매매를 국내법적으로 유효적절하게 처벌하는 문제에는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한다”며 “피해자의 자발성을 유도하는 최근 인신매매는 채무관계 등으로 점차 ‘노예적 지위’에 처하게 만들어 형법이 무력하다”고 밝혔다.

특히 지적장애인은 정서적으로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노예적 지위가 되기 쉽다. 법원은 현행 형법에서 삭제된 부녀매매죄의 판례를 인신매매죄에도 적용해 ‘피해자가 계속된 협박이나 폭행의 위협 등으로 법 질서에 보호를 호소하기를 단념할 정도의 상태’여야 인정한다. A씨가 B씨를 집에 보내도 수차례 되돌아온 사실은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가 됐다.

인신매매죄가 아닌 다른 죄명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은 가해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C씨는 B씨에게 성매매를 시키다 2017년 8월 경찰에 적발돼 잠시 범행을 그만뒀지만 12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C씨가 당시 받은 처벌은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었다.

법무부는 현행 형법으로도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형법 제31장에는 사람을 약취·유인·매매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고 성매매처벌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선원법, 근로기준법 등에도 인신매매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며 “이 법안에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신매매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은 상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이수진 의원도 지난 10일 국회 공청회에서 “인신매매 관련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이유는 처벌법이 없어서라기보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인식 부족이 문제”라는 취지로 말했다.

인권단체는 ‘인신매매는 인신매매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모임인 인신매매특별법제정연대회의는 지난 6일 유엔 인신매매 특별보고관에게 이 법안의 처벌조항 문제 등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인신매매죄가 아니어도 어떤 법으로든 처벌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유엔 특별보고관, 인신매매법안에 우려 표명…“정부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


허진무 기자 imagin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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