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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여성 부사관이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두고 추가 성추행과 회유·은폐 의혹이 커지고 있다. 공군 군사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군의 성범죄 ‘흑역사’가 단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위계에 의한 폐쇄적 조직문화는 물론, 은폐를 시도하는 등 군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깔려 있다.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호소해도 ‘불문에 부쳐달라’는 주변의 압박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이번 사건은 군의 성범죄 대처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 청사. 서성일 기자

국방부 청사. 서성일 기자

국방부는 2015년 3월 군내 성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성추행·성폭행 가해자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퇴출을 원칙으로 하고 성희롱 가해자는 진급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성인지 교육도 연 1회에서 4회로 늘렸다. 그럼에도 부대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군 성범죄는 계속 발생했다. 2018년에는 육군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 해임됐다. 지난해에는 육군 118건, 해군·해병대 45건, 공군 19건 등의 성범죄가 일어났다.

군내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잘못된 회식문화’ ‘상관의 권력을 이용한 압력’ ‘잘못을 숨기려는 조직 문화’ 등이 꼽힌다. 군내 성추행은 회식을 빙자한 술자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술에 취한 상관에 의한 소위 ‘권력형 성희롱·성추행’이다.

‘원 스트라이트 아웃제’를 적용한 이후 가해자나 부서장들이 “없던 일로 눈감아 달라”며 피해자를 압박하는 사례가 오히려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실제 피해자 이모 부사관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해당 부대에 파견왔던 다른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한 번만 봐달라”는 요청에 문제제기를 포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주변의 조직적 은폐와 회유를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민간법원보다 군사법원이 성범죄에 관대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선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각 군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중 실형 선고는 175건(10.2%)이었음이 드러났다. 같은 기간 민간인들이 성범죄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25.2%)보다 15.0%포인트 낮은 수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군사 범죄도 아닌 성폭력 사건을 왜 군에서 수사하고 군사 재판을 받게 해야 하냐”며 “비군사 범죄는 민간 사법 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 사망’ 보고…‘엉터리’ 수사



군검찰이 이번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함에 따라 사건의 조직적 은폐에 누가 가담했는지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3일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공군 군사경찰은 피해자 사망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단순 사망’ 사건으로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자 발견 경위와 현장감식 결과, 부검·장례 관계 등 기본적 개요만 보고했다. 사망자의 성추행 피해 내용은 없었다.

피의자 장모 중사의 휴대전화 확보도 피해자가 숨진 지 9일 만에 이뤄졌다. 피해 발생 이후 석달 동안 피해 증거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휴대전화를 압수하지 않은 것이다. 휴대전화에는 회유 정황을 입증할 통화 녹음 내용과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관용 원칙’ 세우고도 단절되지 않는 군 성범죄[플랫]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피해자 이모 중사는 지난 3월5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서 받은 최초 조사에서 피해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했다. 유족 측은 사건 차량의 블랙박스도 확보해 군사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같은 달 15일에야 이뤄진 첫 가해자 조사에서 장 중사는 혐의 일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후 이 중사에게 합의를 종용했다. 공군 군사경찰이 장 중사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는 바람에 ‘2차 가해’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족은 이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뒤 차량에서 내려 즉시 상사에게 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군 군사경찰은 하루 뒤 상사에게 알려 준위를 거쳐 그날 오후 9시50분 대대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파악했다. 성추행 피해 보고가 대대장에게 10시간 이상 시차를 두고 이뤄진 것이다.

사건 발생 당시 운전자인 부사관은 유일한 목격자였지만 조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유족들은 진술 자체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공군은 보고 경위에 대한 피해자와 다른 부대 상관들의 상이한 진술에 대해서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방치, 추가 성추행 의혹도



이 중사는 성추행을 당한 이후 부대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에게 22차례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난 4월15일 상담관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2주간 지역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 및 진료를 받았다. 같은 달 30일 성폭력상담소는 “(극단적 선택) 징후가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유족 측은 전투비행단장(준장)까지 사실상 2차 가해를 한 꼴이라며 철저히 수사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엄벌할 것을 촉구했다. 유족 측 대리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3일 CBS라디오에서 공군 측이 축소·회유에만 급급, 사실상 피해자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부대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며 이 중사를 회유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구속된 장 중사 외에 2차 가해를 한 군 간부들에 대해 “두세 명 정도가 직접적으로 2차 가해를 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휘관이 몰랐다고 하지만, 2차 가해자의 범위가 전투비행단장까지 포함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이날 다른 상관에 의한 성추행 피해가 최소 두 차례 더 있다며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족 측이 고소한 3명 중 2명은 이 중사의 최초 보고를 받은 상사와 준위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이들 중 한 명이 과거 피해자를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한 명은 1년 전쯤 다른 회식자리에서 이 중사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다른 부대 부사관이다.

피해자가 지난 5월18일 공군15비행단으로 전속된 뒤 사실상 2차 가해나 마찬가지인 과도한 관심을 받은 정황도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이 중사에게 통상의 절차를 넘어서는 수준의 대면보고, 전입신고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이번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4일 사의를 표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han.kr
박은경 기자 yama@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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